매주 월요일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보름 남짓 남은 가운데 미국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북측과 2박3일 간 실무 협상을 벌였습니다. 비건 대표와 북한의 김혁철 대표는 이 자리에서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놓고 치열한 수 싸움을 벌였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비건 대표에 대해 최원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평양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협상을 마친 스티븐 비건 특별대표가 8일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미군 수송기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오후 6시 30분께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습니다.
앞서 비건 대표는 2박3일 간 평양에 머물면서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와 북한의 비핵화 이행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문가들은 평양에서의 이번 실무 협상을 계기로 비건 대표가 미-북 핵 협상의 전면에 등장했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민간연구소인 국가전략연구원의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입니다.
[녹취: 문성묵] ”이번에 본격 협상에 돌입한 것인데, 그 전에 김영철, 김혁철을 만났고, 스웨덴에서 최선희를 만났고, 그 전에는 한-미 워킹그룹을 만들고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한반도 문제에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담당자가 됐다고 봐야죠.”
비건 대표가 등장한 것은 지난해 8월이었습니다. 당시 국무부에서 오랫동안 북한 문제를 담당해온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물러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포드자동차 부회장이던 비건 씨를 새로운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한 겁니다.
백악관이 비건 씨를 특별대표로 임명하자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건이 누구야’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여태까지 잘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걱정은 곧 기우로 밝혀졌습니다. 올해 56살인 비건 특별대표는 한반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상당한 외교안보 분야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의 참모로 근무했고, 2008년 대통령선거 때는 사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의 외교안보 고문으로 일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8년 봄 트럼프 대통령이 H.R.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교체하려 할 때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외에도 비건 대표에게 다른 장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남다른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비건 대표의 전임자인 조셉 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해 8월 `VOA'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녹취: 조셉 윤] "It’s very good appointment. I think two most important qualities.."
조셉 윤 전 대표는 대북정책 특별대표 자리에 적합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자질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 또 국무장관과 얼마나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느냐 여부라며, 그런 점에서 비건 씨 임명은 아주 훌륭한 결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에는 비건 대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남다른 신임을 보여주는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월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집무실에서 비건 대표와 엘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는 사진을 올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로서 비건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1차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상응 조치’를 주장해왔습니다. 먼저 북한이 핵 신고를 하고 이를 검증, 사찰하고 폐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 북한이 과거 비핵화 약속을 어기고 핵 개발을 한 것을 감안해 제재 완화 등은 비핵화가 이뤄진 다음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주장해왔습니다. 비핵화를 여러 단계로 쪼개고 모든 단계마다 미국이 상응하는 안전보장과 정치적 대가, 그리고 제재 해제 등을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또 지난해 미-북 관계는 주로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주도해왔는데 두 사람은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맞섰습니다.
예를 들어 폼페오 장관은 1차 정상회담 다음 달인 7월 6일 평양을 방문해 1박2일 간 총 9시간에 걸쳐 김영철 부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폼페오 장관이 평양을 떠난 직후 북한은 미국이 아무 것도 내놓지 않고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를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폼페오 장관은 미국이 강도라면 전세계가 강도인 셈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녹취: 폼페오] "If requester as gangster world is gangster…"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0월7일 이뤄진 폼페오 장관의 방북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당시 폼페오 장관은 백화원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5시간30분가량 만나 비핵화와 2차 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사찰과 검증, 그리고 상응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다음 달인 11월 초 뉴욕에서 이뤄질 예정이었던 폼페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고위급 회담은 막판에 무산됐습니다.
이렇듯 미-북 관계가 갈등과 진통을 거듭하는 통에 비건 대표는 지난해 단 한번도 자신의 협상 상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비건 특별대표 임명 직후 폼페오 장관은 비건 특별대표와 북측 대표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북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어 비건 대표는 지난해 10월 폼페오 장관과 함께 방북했지만 평양에서 자신의 상대역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당시 최선희 부상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 등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세 나라는 이 자리에서 비핵화 협상이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방식이어야 한다”며 당사국 간 조치와 상응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행태는 북한이 기본적으로 검증과 사찰 등 비핵화 문제를 다룰 실무 협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지적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연구원] “Honestly I think a lot of people are going to see this as a sign of further resistance by North Korea to effective working level engagement.”
이렇듯 지난 하반기 내내 미-북 관계는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물밑에서 상당한 파열음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노력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주고받은 친서 등으로 파탄이 나지 않고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비건 대표의 최근 연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비건 대표는 지난달 31일 미 서부 스탠포드대학에서 북한 문제를 주제로 연설을 했는데, 여러 측면에서 기존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과는 차이점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건 대표가 포괄적인 대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최대 압박전략을 통해 이를 달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비건 대표는 미-북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강조했습니다. 비건 대표는 연설에서 미국의 목표는 단순히 비핵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의 근본적인 관계 개선과 한반도의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그리고 궁극적으론 더 합법적인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비건 대표] “What we’re talking about is simultaneously looking at ways to improve relations, looking at ways to advance a more stable and peaceful,.
비핵화의 핵심인 검증과 사찰에 대해서도 비건 대표는 유연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의 2인자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해 11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는 핵 신고와 폐기, 사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가능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대북 압박과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펜스] "Pressure campaign will continue and sanction will remain in full.."
그러나 비건 대표는 한 발 물러섰습니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사찰과 검증이 필요하지만 그 것이 ‘어느 시점’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해 검증이 비핵화의 첫 단계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시사했습니다.
[녹취: 비건 대표] “We’ll get that at some point through a comprehensive declaration. We must reach agreement on expert access and monitoring mechanisms of key sites to international standards.”
또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고수해온 ‘선 비핵화 후 상응 조치’에 대해서도 유연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비건 대표는 제재는 유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모든 것을 하기 전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비건 대표] “We say we will not lift sanctions until denuclearization is complete. That is correct. We didn’t say we won’t do anything until you do everything.”
비건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대북 접근을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핵화, 인권, 제재 등 개별 사안별로 접근했다면 이제는 모든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포괄적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겁니다.
1990년대 미-북 핵 협상에 참여했던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동시병행적으로’ 조치를 취하겠다는 비건 대표의 접근법은 과거 미국이 시도했던 단계적, 포괄적 합의와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세이모어 전 조정관] “I thought his formulation for simultaneous and parallel is the right way to approach to take and that’s very similar to what we have tried to do past with a comprehensive agreement that is implemented in stages.”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반응입니다. 비건 대표가 보다 유연한 대북 접근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이 생각하는 상응 조치와 북한이 생각하는 상응 조치 간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시간도 문제입니다. 베트남에서 열릴 2차 정상회담까지는 이제 보름 남짓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비건 대표와 북한의 김혁철 대표는 정상회담 합의문은 물론 비핵화와 상응 조치, 미-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상당히 빠듯한 일정이라고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시간이 촉박한 측면이 있는데, 비건이 평양에서 모든 것을 다 합의하고 돌아오긴 어렵지 않겠나, 일단 조율은 하고, 합의가 안된 것은 공란으로 남겨놓고, 돌아와서 필요하면 다시 비건과 김혁철이 다시 만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나.”
미-북 핵 협상 전면에 등장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북한의 김혁철 대표가 어떤 해법을 마련할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