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직 관리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의미 있는 조치’ 없이 제재 완화 등 더 많은 양보를 내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권 문제를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활동했던 리처드 존슨 ‘핵위협방지구상(NTI)’ 선임 연구원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를 비핵화로 향하는 좋은 시작점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존슨 선임연구원] “If you're shutting down Yongbyon which by the way...”
존슨 연구원은 22일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영변은 5MW(메가와트) 원자로 이외에도 훨씬 많은 시설이 있는 곳”이라며 이 곳의 일부를 폐기하면 핵 물질 생산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핵 시설 폐기는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면서,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진정한 검증’이 포함된 합의가 도출된다면 이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은 합의문에 들어갈 문구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존슨 선임연구원] “I think when you're talking about technical issues, you want specificity...”
과거 북한과의 합의들은 애매하고 모호한 문구로 인해 서로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가 잦았고, 외교가에선 이런 문구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서만큼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존슨 연구원은 6자회담 당시 당사국들이 ‘검증’ 부분을 뒤로 미뤘는데, 이런 실수가 반복돼선 안 된다며 검증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백악관 NSC 한국담당 보좌관이었던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과도한 것을 요구할 수 있다며 일부 시설에 대한 폐기 논의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습니다.
[녹취: 테리 석좌] “I do think that there’s couple things that North Korea...”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위성발사장, 영변 핵시설의 폐기 등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올릴 조치들은 공동성명에서만 좋아 보일 만한 것들이라는 겁니다.
반면 북한은 이에 대한 대가로 평화협정이나 일부 제재 완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 면제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테리 연구원은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3개 시설 폐기 외에 추가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고, 이들 시설을 폐기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북한의 게임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NSC 아시아 담당 국장을 지낸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녹취: 차 석좌] “From our practical perspective...”
차 석좌는 북한이 앞서 언급한 것들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대가로 무엇을 내줘야 하는지 질문해 봐야 한다며, 과도하게 많은 걸 건네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제재 완화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이 확고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제재는 확산 문제와 인권 유린 때문에 가해진 것이기 때문에, 이들 분야에서 어떤 행동이 있을 때만 제재 완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차 석좌는 미국이 성공을 간절히 추구해 북한의 협상 전략에 걸려들 때가 있다며 종전선언을 예로 들었습니다. 전쟁이 없는 상황에서 왜 제재가 필요하느냐는 북한의 논리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겁니다.
국무부 한국담당관과 NSC 중국·한국 담당 보좌관 등을 역임한 로라 로젠버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동맹’ 국장도 제재 해제 문제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로젠버거 국장] “I would be fine with relaxing some of the more economic focused...”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관련 조치를 취할 때 경제 분야에 한해 제재를 완화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조치’가 아닌 ‘의미 있는 조치’가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현 제재 체제는 경제 분야에만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제재의 실질적인 핵심은 ‘확산 방지’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핵 물질의 반입과 반출을 막는 게 제재의 주 목적이며,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제재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로젠버거 국장은 미-북 정상회담 이후 실무 차원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로 지적했습니다.
[녹취: 로젠버거] “Those conversations weren’t as...”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 이후 양측은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추가 회담을 사실상 하지 못했으며, 이후 열린 회담들도 2차 정상회담 개최를 준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2차 정상회담 이후에는 이런 일이 재발해선 안 되며, 정상회담이 끝난 즉시 실무급 회담을 열어 합의사항들을 이행해야 한다고 로젠버거 국장은 덧붙였습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북한 인권 전문가들도 참석해 미 행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로베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미국이) 정상적이지 않은 정권과 관계 정상화를 논의하고 있다”며 “관계 정상화에 성공하려면 인권 문제를 셈법에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거듭돼온 미국인 억류 문제를 논의하고, 노동자와 사유재산 보호 문제 등을 해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경제적 투자를 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북한 주민들의 정보자유 문제를 거론하며 VOA 등 대북방송에 대한 북한 정권의 전파 교란 시도 또한 미국이 나서서 압박을 가할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트럼프 행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Unfortunately this administration...”
트럼프 행정부는 인권 문제를 북한을 때리고, 미국 쪽으로 관심을 유도하는 도구로 사용했지만 안타깝게도 북한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이자 더 이상 인권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정 박 한국 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북한의 인권 개선이 없이는 투자가 이뤄질 수 없는 만큼, 이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