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주된 원인인 영변 핵 시설은 양측의 향후 협상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영변은 지난 1994년 이래 미-북 핵 협상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한반도 현안을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는 `뉴스 해설’, 윤국한 기자와 함께 합니다.
진행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는 제재 문제와 함께 영변 핵 시설이 핵심 쟁점이었지요?
기자) 네. 양측의 설명이 차이가 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은 영변 핵 시설 전면 폐기에 `플러스 알파’를, 북한은 영변 폐기에 따른 제재 해제를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노후한 영변 시설의 일부만 폐기하는 방안을 주장하면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해 회담이 결렬됐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북한은 자신들은 영변의 전면적인 폐기와 민생과 관련한 제재의 완화를 요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기자) 영변은 1960년대 이래 북한 핵 개발의 심장부 역할을 해왔습니다. 당시 소련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들여오면서 핵 개발이 시작됐는데요, 핵무기 제조의 원료인 플루토늄은 이 곳에서만 생산됩니다. 지난 2010년 이 시설을 방문했던 미국의 핵 과학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영변 핵 단지를 폐기하면 플루토늄과 (수소폭탄에 필요한) 삼중수소 생산이 중단되고,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심대한 지장을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폐기 절차를 밟기 시작한다면 가장 중요한 비핵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진행자) 일부에서는 영변 핵 시설이 노후화 해서 가치가 별로 없다는 주장을 펴는 것으로 압니다.
기자) 시설이 노후화 한 것은 사실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또 근래 들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플루토늄 외에 고농축 우라늄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영변 핵 시설의 의미를 평가절하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영변이 북한의 핵 개발에서 차지하는 몫을 적어도 50%로 보고 있습니다.
진행자) 미국과 한국 정부는 영변 핵 시설의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기자) 두 나라 모두 북한의 핵 개발에서 영변이 차지하는 비중을 중시하는 건 분명합니다. 한국 정부는 영변 핵 시설을 북한 핵 시설의 `근간’으로 파악하고 있는데요, 미국도 같은 판단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4일), 영변 핵 시설이 전면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이 관심을 모으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북한의 비핵화가 “20%에 이르면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라며, 이 시점에 제재를 완화할 수 있음을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기자) 영변에 어떤 핵 시설들이 있는 건가요?
기자) 확인된 시설만 약 4백개에 달하는데요, 일반에 알려진 것 보다 그 수와 규모가 방대합니다. 이 중 핵심은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5메가와트 원자로와 사용후 핵 연료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 핵연료 가공 공장, 연료봉 제조 공장, 우라늄 농축 시설, 그리고 현재 건설 중인 실험용 경수로 등입니다.
진행자) 북한은 영변 지역 이외에도 핵 개발 시설을 갖고 있지 않나요?
기자) 미국 정보당국은 영변 이외 지역에도 우라늄 농축 시설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영변뿐 아니라 북한 내 모든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폐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폼페오 국무장관에게 북한 내 모든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의 폐기를 약속했습니다.
진행자) 영변은 그동안 미-북 핵 협상에 따라 이미 몇 차례 폐기 절차가 반복됐던 시설이지요?
기자) 폐기는 아니었고, 동결과 불능화에 합의한 적이 있습니다. 영변에서도 핵심은 5메가와트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인데요,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핵 활동이 동결됐고, 2007년에는 6자회담 2.13 합의로 불능화 조치가 이뤄졌었습니다. 당시 불능화의 일환으로 원자로의 냉각탑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폭파됐습니다. 폐기와 달리, 동결이나 불능화는 영구적으로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조치는 아닙니다.
진행자) 그런 점에서, 폐기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신고와 검증 아닌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검증을 거쳐야 실제 폐기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북한 핵 활동의 내역과 핵 능력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영변의 경우 이미 시설과 활동이 공개돼 있기 때문에 신고가 없더라도 전모를 파악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검증이 없을 경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때처럼 북한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한반도 현안을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는 `뉴스 해설’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