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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동서남북] 최고인민회의 김정은 이름 빠진 까닭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2년 4월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투표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2년 4월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투표하고 있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에서는 최근 한국의 국회에 해당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뽑는 선거가 실시됐습니다. 그런데 공개된 대의원 명단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름이 빠져서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그 배경과 의미를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에서는 지난 10일 전국적으로 실시된 선거를 통해 제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687명을 선출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중방] ”선거자들은 사회주의 내 조국을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려갈 보답의 일념을 담아 찬성의 한표를 바쳤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은 선거 이틀 뒤인 12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선자 687명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 명단에 김정은 위원장의 이름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입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그동안 최고인민회의에 당연직 대의원으로 있었습니다. 1948년 북한의 1기 대의원 선거가 실시된 이후 70년 간 최고 지도자가 대의원에 당선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1994년 7월 사망 때까지 제1기에서 9기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후계자 시절인 1982년 7기 대의원에 당선된 후 2011년 사망할 때까지 대의원직을 유지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집권 후 처음 치른 2014년 3월 제13기 대의원 선거에서 111호 백두산선거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었습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독재국가 이미지를 희석하고 정상국가로 가려는 신호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이후에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바꿨거든요, 국방위원회는 비상기구였는데, 그렇게 보면 김정은식 정상국가 일환으로 볼 수 있죠.”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한국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미 당,정,군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의원이 되지 않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강인덕] ”국무위원장 아닙니까, 자신은 이미 국가 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 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사전에 계획한 것 같아요.”

5년 만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김정은 정권에서 새롭게 등장한 실세들과 또 밀려난 사람 등 북한 권력판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김일성 일가를 뜻하는 이른바 ‘백두산 줄기’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대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김여정은 5년 전 실시된 13기 선거에서는 대의원에 오르지 않았는데, 이번에 평양 만경대구역 갈림길선거구에서 당선됐습니다.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제5호 갈림길 선거구 김여정…”

올해 31살인 김여정은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데다 노동당 제1부부장으로 권력서열이 높습니다. 따라서 대의원이 된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김여정은 이미 정치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정치의 전면에 나섰고, 김정은 시대의 최고 엘리트들이 최고인민회의에 포진했으니까. 김여정도 그 일환이죠.”

미-북 핵 협상과 정상회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북한의 외교 관료들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새로 진입했습니다.

당선자 명단을 보면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대의원이 됐습니다. 리수용 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김성남 당 국제부 제1부부장, 김성 유엔주재 대사 등도 새롭게 포함됐습니다. 또 원로 외교관인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도 대의원직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그만큼 대미 협상 인력을 중시한다는 의미라고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부상 이런 사람들이 대의원이 됐는데, 외교라인에 힘을 실어주고, 입법부에서도 외교라인이 힘을 쓸 때 비핵화 협상에도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남한과의 관계를 담당하는 대남 분야 인사들도 여러 명 대의원이 됐습니다. 대남, 대미관계를 총괄하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13기에 이어 이번에도 대의원에 든 것으로 보입니다.

이밖에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강지영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강수린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등도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김정은 체제를 이끄는 당·정·군의 새로운 실세들도 대의원에 포함됐습니다. 정경택 국가보위상을 비롯해 김능오 평양시 당위원장, 리일환·최동명 당 부장, 박광호 당 선전선동부장과 장룡식 부부장 등이 대의원이 됐습니다. 다시 안찬일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정경택 보위상을 비롯해 장정남 전 인민무력상, 조경철 인민군 보위사령관이 당선됐는데, 힘을 실어줄 사람을 실어주되 군부 기득권 세력은 힘을 빼서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반면 한때 권력을 누렸다가 밀려난 사람들은 대의원 명단에서 사라졌습니다. 황병서 전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한때 2인자 소리를 듣던 실세로, 13기 대의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 말 실각한 황병서는 이번 대의원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국가보위상을 지냈던 김원홍도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소리를 듣던 실세였습니다. 그러나 2017년 1월 해임된 이후 이번 대의원 명단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또 나이가 많은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최영림 전 내각총리, 곽범기 전 당 부위원장 등 원로그룹도 대의원에서 제외됐습니다.

경제관료들이 대거 기용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안찬일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오수용 당 부위원장, 로두철 국가계획위원장, 연합기업소 지배인, 김책공대 총장 등이 되면서 경제관료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경제관료들의 이 같은 등용은 김정은 위원장이 추진하는 경제발전 총건설 노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지난해 4월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고 ‘핵-경제 병진 노선’ 대신 경제건설 총력 노선을 채택했습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평양에 돌아온 뒤에도 연일 경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일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은 10일 평양 김책공대에 마련된 선거장에서 투표하면서도 관계자들에게 경제 활성화를 당부했습니다.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 나라의 과학교육과 경제건설을 견인하는 기관차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 나가도록 앞으로 일을 더 잘하기 바란다.”

북한 당국은 최고인민회의가 입법권을 가진 국가의 최고 주권기관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와 대의원 선거는 김정은 정권의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한 정치적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강인덕 전 장관은 지적했습니다.

[녹취: 강인덕] ”투표자의 100% 투표에 99.9% 당선되는 것이 최고인민회의니까, 국회라고 할 수 없죠, 모든 것을 당이 하고, 거수기에 불과하고, 정치적 쇼에 불과하죠.”

외부 세계가 최고인민회의를 그렇게 낮춰보는 이유는 이번에 실시된 대의원 선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 일본 같은 민주국가에서는 정당이 여러 개입니다. 따라서 각 당은 선거에서 보다 많은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해 각자 좋은 정책을 개발해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합니다. 그러면 유권자들은 마음에 드는 정당과 후보를 선택해 표를 던집니다.

그러나 북한은 노동당 일당독재체제입니다. 따라서 이번에 선출된 대의원 687명 전원이 노동당이 선정한 후보입니다. 북한 주민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겁니다.

투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선거장에 가서 한 명뿐인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를 받고 수령의 초상화에 절을 한 뒤에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습니다. 만약에 반대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투표용지에 가로줄을 긋고 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공개투표나 다름없습니다.

평양 현지에서 이번 대의원 선거를 지켜본 `AP' 통신은 “선거가 주민들의 충성심을 감시하는 수단”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한국, 유럽 같은 민주국가에서 실시되는 선거에서는 100% 찬성이 있을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수 십 년 간 전체 주민의 99.7%가 선거에 참여했으며 찬성률이 100%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전세계 190여개 나라 중 가장 정치적 자유가 없는 나라로 꼽히고 있습니다. 국제 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는 매년 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정치적 자유가 없는 최악의 국가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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