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으로 미-북 협상과 관련한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자력갱생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에 대한 강경 발언이나 핵 관련 언급 등이 없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큰 틀의 변화는 없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이연철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자립적 경제 토대와 자력갱생을 강조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1일 전했습니다.
[녹취:조선중앙TV]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 하에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감으로써...”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과 자립적 민족경제는 우리식 사회주의 존립의 기초이고, 영원한 생명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는 것이 확고부동한 정치노선이라는 것을 재천명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도 긴장된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자력갱생 등을 바탕으로 새 전략노선을 관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의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것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김정은 위원장의 자력갱생 이야기는 근본적인 노선이라기 보다는 제한적인 대외개방을 통해서 경재발전의 자원을 확보하려고 했던 기본계획이 어그러지면서 나오는 일종의 고육책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조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강조하는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 해제와 남북경협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하노이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김 위원장으로서는 자력갱생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현재 김 위원장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협상 국면을 파기하거나 도발적인 행동에 나설 경우 미국의 제재가 더 강화되고 남북경협의 가능성이 없어지는 등 김 위원장의 입지가 더 약화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은 미-북 대화가 단절되고 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나온 김 위원장의 자력갱생 강조와 관련해 국내적 요인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더 더욱 자력갱생을 강조함으로써 경제가 위기 상황에 도달하기 않고 나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겠다는 생각에서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신 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체제 유지 차원에서 주민들을 독려하기 위해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주장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의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비핵화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미-한 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설득하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국가전략연구원의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김 위원장의 자력갱생 발언을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북 제재 장기화를 대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했습니다. 미국과 두 번이나 정상회담을 했지만 빠른 시일 안에 제재가 해제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장기전에 대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문 센터장은 북한이 큰 틀에서 전략적 변화를 모색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문성묵 센터장] “비핵화 협상에 대한 새로운 길에 대한 모색이라든지 협상을 중단하겠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또 트럼프나 미국을 향한 비방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화의 판을 완전히 깨고자 하는 그런 뜻을 보인 것은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문 센터장은 북한은 미-한 정상회담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안이 나오면 관심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