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세계적으로 애창되는 민요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미국 민요를 많이 작곡한 스티븐 포스터는 1826년 7월 4일 미국 동부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 포스터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천성적으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악기를 혼자서 익혔고, 어떤 곡이든 한 번만 들으면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14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한 그는 23살 때인 1849년 첫 번째 큰 인기를 끈 노래 "오 수재너"를 발표했습니다.
포스터는 1840년대와 50년대, 200곡이 넘는 노래를 작곡했습니다. 그가 작곡한 노래 중에는 사랑에 관한 것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갈색머리의 지니(Jeannie With Light Brown Hair)’입니다. 한국에서는 ‘금발의 제니’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포스터 곡 중에는 민스트럴쇼를 위한 것도 약 30곡이 있습니다. ‘민스트럴쇼(minstrel show)’란 남북 전쟁 전후에 유행했던 것으로 얼굴을 검게 칠 한 백인들이 무대에서 춤과 음악, 촌극 등을 공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쇼는 미국의 거의 모든 큰 도시에서 유행했지만 특히 동북부 지방에서 성했습니다. 이 쇼를 위해 포스터가 작곡한 노래 중 하나로 ‘캠프타운의 경주(Camptown Races)’가 있습니다.
1850년 포스터는 잘 나가는 민스트럴쇼단의 단장인 E. P. 크리스티와 단독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크리스티의 민스트럴은 포스터가 작곡한 새로운 곡은 모두 독점 공연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계약을 체결하고 난 다음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곡 ‘스와니강을 따라(Way Down upon the Swanee River)’가 나왔습니다. 1935년 이 노래는 미국 남부 지방인 플로리다주의 공식 노래로 지정이 됐습니다.
포스터는 옛날의 추억과 살던 집을 묘사하는 노래도 여럿 작곡했습니다. 포스터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모든 재산을 날리는 바람에 한집에서 오래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핏줄이 다른 식구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내 집에 대한 그리움이 컸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런 노래의 하나가 ‘켄터키 옛집(My Old Kentucky Home)’입니다. 이 곡은 켄터키주의 주가가 됐습니다. 켄터키주에서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켄터키 더비와 같은 경마 대회를 포함해 주요 행사가 있을 때는 다 같이 이 노래를 부릅니다.
포스터는 미국에서 작곡만으로 생활하는 최초의 전업 작곡가였습니다. 그러나 작곡에는 뛰어났지만 돈벌이에는 재주가 없어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딸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1860년 포스터는 뉴욕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그의 노래가 전처럼 인기를 끌지 못하던 때여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결혼도 파탄이 났습니다. 알코올 중독과 부채, 고독 등으로 시달리던 포스터는 나이 불과 37살이던 1864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가 숨졌을 때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은 몇 푼 안 됐습니다.
포스터가 사망한 뒤 그에게는 여러 가지 영예가 주어졌습니다. 포스터는 위대한 미국인 명예의 전당에 음악인으로서는 맨 처음 헌정됐습니다. 미국 작곡가 중 작품 모두가 한꺼번에 모아 출판된 것도 포스터가 처음이었습니다. 매년 그가 사망한 날은 많은 사람이 피츠버그에 모여 예배, 음악 공연 등 추모 행사를 열고 묘지를 참배하고 있습니다.
포스터는 세상을 하직하기 불과 2주 전 마지막 곡을 남겼습니다. 마치 자신의 종말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한 이 노래는 그가 남긴 곡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꿈꾸는 아름다운 그대(Beautiful Dreamer)’입니다.
“꿈꾸는 예쁜 그대여 깨어나 내게 오라
별빛과 이슬들이 그대를 반기며
낮에 있었던 거친 이 세상의 잡음들이
이젠 모두 달빛의 자장가에 잠들었으니
꿈꾸는 예쁜 그대여, 내 노래의 여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