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에서 식량난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엔은 북한이 10년만에 최악의 식량난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대북 식량 지원이 왜 문제가 되고 있는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의 지난해 식량 생산량이 200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유엔 기구가 밝혔습니다.
지난 3월 말부터 보름간 북한 현지에서 식량 실태를 조사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는 3일 북한 주민들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 주민 40%에 해당되는 1천 10만명이 식량이 부족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유엔에 따르면 북한은 136만t의 식량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북한 주민들이 굶지 않으려면 576만t의 식량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난해 곡물 생산량은 417만t으로 159만t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외부에서 수입하려는 식량 20만t과 국제기구의 지원이 예정된 2만1천200t을 제외하면 그런 계산이 나온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또 올해 북한의 1인당 하루 식량 배급은 300g으로 목표치인 550g에 훨씬 못 미친다며, 이는 전년보다 22%P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북한 주민들이 올해 힘든 보릿고개를 겪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5월에서 9월 기간이 춘궁기인데다 봄에 비가 적게 내려 보리, 감자 농사가 잘 안될 것이란 겁니다.
실제로 북한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식량이 떨어진 ‘절량세대’가 발생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일본 아시아 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가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전한 내용입니다.
[녹취: 이시마루 지로, RFA] “분배된 것을 다 소비해 버리고 먹을 곡식이 없는 세대가 많아졌습니다. 그것을 북한에서는 '절량세대'라고 부르는데요. 절량세대는 해마다 생깁니다. 하지만, 그건 6월 말이나 7월부터 생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금년은 4월 초부터 발생하면서 농장관리위원회에서도 많이 당황하고 있다는 정보가 많은 지역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노동신문도 식량 문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신문은 지난달 29일 정론을 통해 “금보다 쌀이 더 귀하다”고 주장했습니다.이어 노동신문은 3일 ‘새 땅을 대대적으로 찾아 경지면적을 늘리자’ 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기도 했습니다.
북한 외교관도 식량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지난 2월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국제기구들에게 ‘식량 지원’을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식량 부족 상황이 본격적인 식량난으로 커질 경우 이는 김정은 정권이 처음 겪는 식량 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서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절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 사태를 겪은 북한 당국은 2012년을 기해 분조제를 도입했습니다.
포전담당책임제 또는 분조제라고 불리는 이 제도의 핵심은 농민들에게 일한 만큼 그에 따른 보상을 주는 겁니다.
과거에는 협동농장에서 10t의 쌀을 생산하면 국가에 토지 사용료와 물, 전기, 비료, 농약 대금조로 5t을 납부하고 나머지를 ‘평균주의’ 원칙에 따라 농민들에게 현금으로 분배했습니다.
따라서 농민 입장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든 적당히 하든 소득이 비슷해 근로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북한 돈의 가치가 떨어져 몇 만원을 받아도 장마당에서 물건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조제는 15t을 생산할 경우 국가에 5t을 납부하고 나머지 10t은 분조원들의 실적에 따라 자율적으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 분조에서 생산한 알곡 가운데서 국가가 정한 일정한 몫을 제외한 나머지는 농장원들에게 그들이 번 노력 일에 따라 현물을 기본으로 하여 분배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분조제 도입 이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에 따르면 1990년대 말 300만t 수준이었던 곡물생산은 2012년 465만t, 2013년 492만t을 기록하다가 2014년에는 503만t으로 늘었습니다. 그 후 2017년에는 515만t 을 기록했으나 2018년에는 417만t으로 다시 줄어 든 겁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북한의 곡물 생산이 100만t가량 감소한 것은 여러 원인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선 북한이 분조제를 한다고 하지만 당초 당국이 약속한 분배 비율을 지키지 않는데다 농민들에게 높은 생산 목표량을 강요한다는 겁니다. 북한 농업과학원 출신 탈북자 이민복씨는 북한 당국이 약속대로 분배를 안해 농민들이 새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이민복] “사람들의 신뢰가 없고요. 단위를 높이 책정하니까. 게다가 비료도 없고 해봤자 단위는 높여놨지. 그러니까 농민들이 뭐 신경 쓸 거 있냐.”
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한 농업전문가인 권태진 GS& 인스티튜트 북한 동북아연구원장은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대북 제재로 농자재 투입에 제한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권태진] “특히 원유 수입량이 줄고 가공된 원유인 휘발유, 디젤유의 수입도 통제를 받는데 (이것은) 북한이 트랙터를 움직이는 원료입니다. 원료 수입이 줄면 트랙터 가동이 줄 수밖에 없으니까 사실 제재 때문이라는 주장이 어느 정도 인정은 됩니다.”
이 밖에도 지난해 발생한 가뭄과 농사에 필요한 화학비료 공급이 제대로 안된 것도 소출 감소의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올해 식량 사정이 나쁘지만 그렇다고 해서 90년대 같은 최악의 식량난을 겪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북한 주민 대다수가 배급보다는 장마당에 의존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입니다.
[녹취: 강인덕]”과거와 다른 것은 고난의 행군 기간 중 북한 주민 80%가 배급을 받지 않고 장마당에 의존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생활 능력이 생겼으니까…”
실제로 식량난 소식에도 불구하고 북한 장마당 쌀값은 1kg당 4천원 선으로 큰 변동이 없습니다.
주목되는 것은 북한의 식량 부족 소식이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북 관계가 교착된 국면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미-북 관계 중재를 모색하고 있는 한국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을 통해 대화의 물꼬를 트려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대북 식량 지원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통화에서 대북 식량 지원에 긍정적인 언급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백악관의 사라 샌더스 대변인은 8일 미국의 초점은 북한 비핵화라며 한국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한다면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샌더스 대변인] “Our focus is denucrization. If South Korea moves forward on that front, we’re not going to intervene.”
미-한 정상의 전화 통화 다음날인 8일 한국 통일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통일부 이상민 대변인입니다.
[녹취: 이상민] “국제기구가 북한 식량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 같은 동포로서 인도적 차원에서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식량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연달아 무력시위를 했습니다. 북한은 4일 강원도 원산에서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한데 이어 9일 평안북도 구성에서 또다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9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발사가 대화와 협상 국면을 어렵게 만든다며 유감을 표했습니다.
[문재인/KBS] ”북한의 이런 행위가 거듭 된다면 지금 대화와 협상 국면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북한 측에 경고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대북 식량 지원 문제는 북한의 연이은 무력 시위로 인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가 되버렸습니다. 한국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