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핵실험 유예 공약을 무효화할 수 있음을 내비치면서 풍계리 핵실험장의 현 상태와 추가 시설 존재 여부에 관심이 쏠립니다. 올리 하이노넨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 사무차장은 17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에서 관측되는 숱한 폭발들을 고려할 때 제2의 핵실험장이 예비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1, 2차 북 핵 위기 당시 영변 핵 시설 사찰을 주도했던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은 ‘핵동결’은 비핵화의 첫 단계로도 미흡하다며 복구에 시간이 걸리는 추가 불능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이 미-한 군사 훈련을 문제 삼으면서 핵실험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는데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현장까지 공개한 만큼 원칙적으로는 실험할 장소가 없어야 정상 아닌가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았을 겁니다. 북한 어딘가에 핵실험 목적의 또다른 터널이 있다고 해도 놀랄 게 없습니다. 몇 년 전에도 제2의 핵실험장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지만 정확한 위치를 지목할 순 없었습니다. 이런 터널을 뚫기 위해선 많은 폭발이 필요하고, 이를 근거로 북한이 또다른 대규모 굴착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던 전문가가 있습니다.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기구가 바로 그런 움직임을 추적하죠.
기자) 지진파 등 누적된 폭발 기록만 조사해도 장소를 좁힐 수 있지 않을까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물론 그런 폭발은 핵실험에 비하면 강도가 낮습니다. 하지만 터널은 매우 깊기 때문에 폭발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게 됩니다. 특정 장소를 지목할 순 없지만 북한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발들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북한에 있는 많은 광산에서도 굴착 작업과 폭발이 이뤄지기 때문에 주의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기자) 북한에 풍계리 핵실험장 말고도 다른 실험 장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시는 거군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북한 관점에서 봐도, 다시 말해 내가 북한 사람이라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이후에 사용할 수 있는 추가 시설을 갖고자 할 겁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나중에 핵실험을 위한 새 터널을 뚫느라 또다시 1년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가능성을 열어놔야 합니다.
기자) 풍계리 핵실험장이 완전히 폐기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또다른 측면을 봐야합니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다고 해도 중요한 건 현장에 있던 검측 기기들이 어디로 갔느냐는 겁니다. 핵실험을 하려면 폭발력 등 실험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많은 전자 장비와 탐지기 등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이런 장비들이 보내는 신호를 분석하는 관제실도 있어야 하고 터널 바깥에 있는 건물 중 하나가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장비들이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 다른 장소로 옮겨졌을 수 있습니다. 제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직후에 터널 뿐 아니라 모든 기반 시설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한 건 이 때문입니다.
기자) IAEA도 그런 우려를 하고 있습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IAEA는 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2주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회의에 참석했는데 풍계리 핵실험장과 관련해서는 주로 핵실험을 어떻게 포착하고 감시하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이 나왔습니다. 핵실험장을 어떻게 불능화하고 이를 어떻게 검증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고 유엔의 모니터링 기능 측면에서의 접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핵실험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기자) 그럼 풍계리 핵실험장을 여전히 가동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그렇지 않을 겁니다. 직전의 대규모 핵실험 당시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물론 38노스 등은 풍계리 핵실험장 일부는 온전한 상태라는 위성사진 분석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지만, 저는 현장의 터널들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미-북 간 실무협상이 재개된다면 기술적으로 어떤 비핵화 조치를 요구해야 합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비핵화의 첫 단계로서 ‘동결’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1994년 제네바합의, 6자회담, 그리고 이란 핵합의를 통해 얻은 교훈은 동결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동결 보다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가령 풍계리 핵실험장의 경우 터널 뿐 아니라 관련 특수 기기들도 폐기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일부 기기는 수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실험하기 어려워지는 거죠. 북한이 2008년 폭파한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도 좋은 예입니다. 북한이 이미 2007년 시리아에 건설한 원자로는 인근 강물을 연결해 냉각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냉각탑이 필요 없었고, 그 직후 북한 원자로도 구룡강 물을 끌어다 쓰게 됐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설계를 갖춘 상태에서 영변 냉각탑을 폭파한 건 결국 돈이 목적이었던 겁니다.
기자) 자칫 이미 쓸모 없게 된 것을 동결시키는 우를 또다시 범할 수 있다는 뜻이군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생산을 중단시키기 위해 추가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신중히 계획해야 합니다. 과거에 이뤄졌던 것보다 불능화가 더 깊게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한 동결보다 더 들어가 핵심 기능을 불능화시킴으로서 재가동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도록 말입니다. ‘동결 플러스’라고 부르겠습니다.
기자) 그런 합의를 해도 영변 외 추가 핵시설이 있다면 검증할 길이 없을 텐데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그렇긴 합니다만, 북한과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합니다. 너무 빨리 합의를 체결해선 안되고요. 1994년 제네바 합의는 우라늄 농축이 아니라 플루토늄 재처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그 해 가을 파키스탄에 미사일 기술을 넘겨주는 대가로 우라늄 관련 기술을 얻었고 이런 사실은 몇 년이 지나서야 알려졌습니다. 결국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체결 초기부터 이미 위반했던 겁니다. 따라서 북한과의 합의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별 의미 없는 온갖 세부사항이 담긴 이란 핵합의와 달리 너무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방식이 돼야 합니다. 커다란 주제에 집중하고 (불능화에) 보다 깊게 들어가 뭔가 잘못됐을 때 바로 드러나도록 말입니다.
올리 하이노넨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 사무차장으로부터 북한 핵실험장에 대한 의문과 실무협상에서 요구해야 할 비핵화 조치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