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만 확인한 채 끝난 이번 미-북 실무협상은 외교적 절차나 목표도 실종된 비관적 결과라고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적했습니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를 지낸 힐 전 차관보는 6일 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협상의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회담이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적 무능과 북한의 어리석은 전략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힐 전 차관보를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국무부는 이번 실무협상을 ‘좋은 논의’였다고 한 반면 북한은 ‘역겨운 회담’으로 일축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힐 전 차관보) 협상에서 첫번째 해야할 일은 협상을 마무리할 때 무엇을 발표할 것인지 파악하는 겁니다. 양측이 말을 맞추는 과정이죠. 그런데 이번엔 양측이 각각 다른 회담에 참석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엇을 합의했고 무엇을 합의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고요.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신호여서 우려스럽습니다. 무엇인가로 향하는 절차조차 아니어서 더욱 그렇고요. 비관적인 결과입니다.
기자) 북한이 이런 결과를 만들려고 사전에 계획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힐 전 차관보)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중요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았으면 합니다.
기자) 미국 측이 ‘창의적인 방안’과 ‘많은 새 계획’들을 협상장에 들고 들어갔다는 게 국무부 설명인데, 창의적이라고 부를 만한 방안들이 뭐가 있을까요?
힐 전 차관보) 추측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창의적’이라고 표현하면서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 건 좀 이상하네요. 비밀리에 진행하는 건 이해합니다만,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분명히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걱정스러운 징후입니다. 다만 ‘창의적인 방안’이라는 건 일부 제재를 일시 유예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미국은 이게 북한에 매우 중대 사안이라는 걸 알고 회담장에 들어갔을 테니까요. 하지만 추측일 뿐이고, 너무 앞서가지 않겠습니다.
기자) 앞서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방안’ 언급에 기대감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북한이 실제로 미국 접근법의 변화를 기대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힐 전 차관보) 미국은 북한 문제를 내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 조용하게 끌고 가려고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북한도 지금까지는 그런 의도에 동조하는 듯 행동했고요. 이번 회담이 이렇게 극적으로 마무리된 건 그래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기자) 미국은 2주 뒤에 재협상을 하자고 했고 북한은 2주 동안 미국 셈법이 바뀔 리 없다고 거부했는데요. 실제로도, 조건을 재정비하고 접점을 찾는 데 너무 짧은 기간 아닌가요?
힐 전 차관보) 미국이 부처간 논의를 통해 새 접근법을 마련하기에 매우 짧은 기간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양측 발표에서 상호주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북한과 미국의 말이 따로 놀고 있다는 건데, 특히 국무부 대변인은 미-북 협상의 어려운 역사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까? ‘설명은 고맙지만 그걸 누가 모르냐’라는 게 제 대답입니다. 그보다는 회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절차상의 문제를 봅니다. 그리고 이 절차상의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라는 것을 아직 정립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기자) 북한이 이제 더 이상의 실무협상을 거부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정상 간 논의를 선호했으니까 말이죠.
힐 전 차관보) 북한이 정상회담을 선호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스웨덴 회담이 아무 결과도 없이 하루 만에 끝나버린 걸 보면, 북한은 전혀 진지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 협상단에 있었다면 북한에 ‘이 문제에 진전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선 정상회담을 자꾸 요구하지 말라, 어차피 불가능하니까’라고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추가 정상회담 일정을 잡는 것과 이번 협상의 내용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기자) 전문가들은 미-북 정상회담이 실패한 이유는 사전 실무협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해왔지만 이번 회담 결과를 보면 실무급 대화도 안 통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동의하시는지요?
힐 전 차관보) 트럼프 행정부는 ‘실무급’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런 회담을 ‘실무급’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과거 6자회담 때도 차관보급이 나갔고 누가 무엇을 해야할지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김명길 대사,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 모두 실무급이라기 보다는 고위 관리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들은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외교팀을 갖고 있습니다. 비건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이런 팀으로는 그게 북한이든, 이란이든 실패라는 게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국무부라는 조직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기자) 김명길 대사는 이번 협상을 끝낸 뒤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여부가 미국에 달렸다고 경고했습니다. 북한의 추가 무기 실험도 가능하다고 내다보십니까?
힐 전 차관보) 북한이 그런 입장을 밝히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는 건 스스로의 결정이지 트럼프 행정부에 달린 게 아닙니다. 그저 북한이 이 모든 절차에 진지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뿐입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카드로 내세우려고 했다면 진작에 미국을 제대로 설득했어야 합니다. 미국에게 ‘깜짝 놀랄 제안이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협상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짓일 뿐입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로부터 스웨덴에서 열린 미-북 실무회담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