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경험한 일과, 탈북 또는 정착 과정에서 얻게 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국의 한인 심리학자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녹취: 글로리아] “저 인생에서는 비즈니스가 돈이 아니에요, 시간이에요. 9년 동안 20대를 최선을 다해서 회복하고 싶어요. 시간은 한 번 가면 절대로 돌아오지 않아요.”
탈북 후 인신매매를 당한 이 여성은 중국 남방 지역의 한 돼지사육장에서 3년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벙어리처럼 살았습니다.
유타주에 살고 있는 사라 최 씨는 북한에서 남편이 던진 기왓장에 머리를 맞고, 그 후유증으로 현재까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김 씨는 중국에서 가까스로 성폭행 위기를 모면했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녹취: 김 씨] “밤에 칼을 가지고 와서 자자고 하더라고요. 칼을 쥐고서, 죽겠다고 댔는데, 그래도 오는 거에요. 그래서 피가 솟더라고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도 평생 안고 갈 마음의 짐 입니다.
미국에는 난민으로 입국한 탈북민 218명과 다른 나라를 거친 200여명을 포함해 대략 400여명의 탈북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는 북한, 중국, 제3국을 거치며 받았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인한 상처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했다고 해도 방치한 채 살아 가고 있습니다.
8년 전 미국으로 건너와 심리상담학을 공부한 버지니아 크리스찬대학교의 조윤정 교수는 한국의 탈북민 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에서 탈북민을 대상으로 의사소통 강의를 했었습니다.
조윤정 교수가 미국에서 알게 된 것은 미국 내 탈북 난민을 위한 지원 환경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원에서 탈북민과 인연을 맺고 미국에서 심리상담을 공부한 조 교수는 이를 계기로 탈북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게 됐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상처치유 프로그램, “용서에 이르다(REACH Forgiveness)”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미국 내 탈북난민에게 적용하고 연구한 내용으로 지난 5월 연구논문 “북한이탈주민의 워딩턴의 용서 피라미드 모델에 대한 영향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는 탈북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심리 상태 연구, 그리고 용서의 종류와 효과 등을 적었습니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에버릿 워딩턴 박사의 상처 치유와 회복 프로그램 “용서에 이르다”는 참가자의 형편에 따라 스스로 진행하는 2시간 DIY 워크샵, 또 6주 단계별 그룹 워크샵 과정이 있습니다.
조 교수는 이 프로그램을 탈북민을 위한 4주 과정으로 수정했습니다.
프로그램은 기독교 신자와 비기독교 신자로 구분되며 내용은 ‘상처의 회상’, 2단계는 ‘공감’, 그리고 ‘이타적 선물의 공감’, ‘공개적 용서’, ‘용서의 지속’ 단계로 이뤄집니다.
상처를 받은 상황을 다시 떠올리는 과정을 시작으로, 상처를 준 대상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용서받은 경험을 떠올려 가해자를 용서하려는 자신의 노력에 상을 주고, 용서를 하기로 결심하는 선포문을 작성해 용서에 이르며, 이를 반복해 ‘용서’ 상태를 유지합니다.
조 교수는 미국 내 탈북 난민의 수가 많지 않고, 그룹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1대1 면담 방식으로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30대 탈북 남성은 VOA에, 프로그램의 접근방식 때문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들어주기에 국한되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 단계와 기독교적 접근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인이 고안한 프로그램을 탈북민들에게 맞게 수정한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공감, 선포문 작성 단계는 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북한은 사회구조적으로 ‘공감 능력’을 가질 수 없게 하는 나라이기 때문인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공감이 무엇인지 깨닫고 가해자의 상황을 공감하면서 공감 전과 후의 차이가 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용서 선포문’을 쓴다고 해서 북한의 지도자가 달라지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갈등이 많았지만, 적어도 지도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인들도 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너머 미국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지 않냐며, 기도해주는 건 좋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교수는 앞서 프로그램에 참가자들 가운데 남성이 특히 북한 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더 꺼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한 명의 참가자인 30대 여성 김영희 씨는 상처를 회상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느낀 모든 감정, 상황, 언어들이 여전히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회상의 단계에서 더 이상 충격과 공포, 배신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 대상을 공감하고 상을 주고, 용서를 선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조윤정 교수는 용서의 수혜자는 바로 자신이라며, 그 것이 프로그램의 의미라고 말합니다.
[녹취: 조윤정 박사] "결국은 이 이걸 가장 기본은 용서는 내가 편하려고 하는 거지 상대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요, 상처를 준 사람 제가 상처를 준지도 모르잖아요. 근데 결국은 그 사람이 주려고 했던 의도가 있던 없던가는 나의 어떤 부분이 찔리면 상처가 되고 그게 고통이 되고 자체가 나한테 너무 소모라는 거죠. 이렇게 붙들고 있는 그날 그 감정적인 암 덩어리는 이제 나한테 독이 된다는 걸 깨닫지를 못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서 그냥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용서에 이르기” 프로그램은 현재 홍콩, 콜럼비아, 인도네시아,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 가나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에 필요한 워크샵 교재는 에버렛 워딩턴 교수의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고안한 버지니아연방대학교(VCU)의 에버릿 워딩턴 교수는 VOA에 ‘용서’를 ‘가해자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 달라지는 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용서는 의지적 용서와 정서적 용서로 나뉘며, 의지적 용서가 선행되고 정서적 용서가 뒤따를 수 있다며, 용서는 단번의 사건이 아닌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살해 당하고, 상처 입은 가족이 자살하는 경험을 한 워딩턴 박사는 자신은 범인을 용서할 결심을 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직접 실천했던 ‘공개 선포문’은 의지적인 용서 후에 찾아오는 감정들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용서를 결심하고 ‘분노’가 다시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용서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 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에버릿 워딩턴 박사] “My body is still going to respond with anger and with hurt. And with anxiety and fear, because that's the way our bodies..”
우리 몸에 조절된 반응으로 화가 나는 것이며 이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는 자기 방어라면서도 화를 폭발시키는 것 보다 다스리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명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워딩턴 박사는 탈북민의 트라우마에 대해 “자신이 매우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 인식을 하는 것, 그리고 이 상처는 단번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용서’의 과정은 트라우마 치유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녹취: 에버릿 워딩턴 박사] “If I wash my wound with soap that that will help it, not get infected and that will help it, you know, heal…”
신체에 난 상처도 감염없이 치료하려면 먼저 상처부위를 씻고 소독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씻기 과정이라는 설명입니다.
워딩턴 박사는 그러면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의 치유 과정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주변 사람들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윤정 교수는 워딩턴 박사의 “용서에 이르다” 프로그램을 미국과 한국의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과정에 참가한 탈북민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발전, 진행시킨다면 탈북민들의 트라우마 치유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