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에는 미국의 대학들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 있는 명문 사립대학교인 '에모리대학교(Emory University)' 두 번째 시간입니다.
에모리대학교는 조지아주의 주도이자 최대 도시인 '애틀랜타시' 근교의 630ac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1836년, 기독교의 한 분파인 감리교 교단이 세운 학교인데요. 에모리라는 이름은 당시 조지아주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다 목숨을 잃은 존 에모리라는 감리교 목사의 이름에서 따온 겁니다.
에모리대학교는 부족한 자산과 남북전쟁의 여파로 한때는 폐교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조지아주에서 탄생한 세계적인 탄산음료 기업인 '코카콜라' 창업주를 비롯해 여러 지역 유지들이 힘을 보태 오늘날 남부를 대표하는 명문 사립대학으로 우뚝 섰습니다.
"엄격한 규율"
에모리대학교는 설립 초기, 엄격한 규율을 갖추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규율이 꽤 엄격한 편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38년간 대학 진학 상담과 교육을 해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가 들려주는 이야기 들어보시죠.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1839년에 발간된 에모리칼리지의 학교 안내 책자에 따르면 모든 재학생은 학기 중 반드시 교내에만 거주해야 했고, 마을로부터 1mi(약 1.6km) 밖으로 나가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총장의 승인을 얻어야 할 만치 엄중한 규칙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1891년에 발간된 대학 안내서에는 학생들이 술집, 영화관, 말 경주, 카드 놀이하는 것이나 총기를 소유하는 것, 하인을 거느리거나 개나 말을 소유하는 것도 금지되었으며, 교내를 떠나 이웃 마을로 여행할 때도 반드시 교수진이나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방탕하고 자유분방한 사회 분위기를 고쳐나가려는 대학 선각자들이 엄중한 교칙을 세워 이를 실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몰래 학칙을 어김으로써, 징계나 퇴학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에모리대학교는 심지어 다른 대학들과의 스포츠 활동조차 금지된 시절도 있었다고 하네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1890년대 총장이었던 워렌 캔들러 박사 재임 기간, 에모리 대학은 타 대학들과 벌이는 스포츠활동에 참여하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 대학 간 스포츠 시합을 하는 것이 건전한 스포츠 문화를 손상시키고 사행심을 조장하며, 학생들이 공부에 좀 더 몰두하지 못하게 만드는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에모리 대학이 이에 참가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고 생각했던 캔들러 총장의 정책이 강력하게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을 자랑하는 남부의 명문"
그런가 하면 에모리대학교는 지난 시간에도 소개해드린 것처럼 1888년, 첫 외국인 유학생으로 구한말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윤치호를 받아들인 학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흑인 학생들은 조지아주의 법에 따라 1960년대에 들어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해요.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설명입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19세기 백인 노예 지주들에 의해 설립된 대학으로서 초기에는 조지아주 법에 따라 흑인들의 입학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지만, 1962년 조지아주 대법원에서 승소함으로써 이듬해 처음으로 유색인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21세기 '인류에 봉사하는 지혜로운 마음을 품은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에모리대학교는 인종 분포도에서 전국 평균을 웃도는 다양성을 자랑하고 있고요. 외국 학생들의 비율도 매우 높은 편입니다.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3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유학 중인데요. 특히 중국, 한국, 인도 학생들이 많습니다. 에모리에서 공부한 외국인 학생들의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시죠.
[녹취: 중국 여학생] "저는 중국 우한에서 왔어요. 음악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유럽에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결국 미국을 택했죠. 미국은 학교들이 더 많았고 대학을 선택할 때 먼저 전공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큰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에모리대학교에 승마클럽이 있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그래서 개인 훈련도 받고 승마도 배우고 있는데, 이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녹취: 페루 여학생] "저는 페루에서 왔습니다. 대학원 과정 중이죠. 전에 아시아와 중남미 지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지만 미국이나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한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제 전공과 함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길 원하고 있는데요. 에모리는 저같이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발음 교정 등 1대1 교습도 해주고, 많은 지원을 해줍니다."
에모리대학교는 또 1학년과 2학년은 의무적으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에모리대학생 4명 중 3명이 20개가 넘는 기숙사 건물에서 생활하면서, 에모리대학교의 학풍과 문화를 익히고 있습니다.
"학교 현황"
에모리대학교는 2018년 가을학기 기준, 학부생 약 8천 명, 대학원생은 7천300여 명입니다. 교수대 학생의 비율은 1명당 9명꼴입니다. 2018년 신입생 입학 현황을 살펴보면, 2만7천여 명이 지원해 5천100여 명이 입학허가를 받으며 19%의 입학허가율을 보였는데요. 2019년에는 3만 명 넘게 지원해 2018년보다 9% 높은 지원율을 보였습니다.
"에모리의 구성"
에모리대학교는 4개의 학부 대학과 7개의 대학원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설명입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현재 에모리대학교 학부 대학은 4개로 인문학대학과 옥스퍼드칼리지, 경영대학, 간호대학이 있습니다. 에모리대학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학문 연구에 정진하고 있는 석학 교수들의 강의와 연구, 그리고 후배들에 대한 지극한 헌신이 초석이 됨으로써, 오늘날 남부의 명문을 넘어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비교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대학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중 옥스퍼드칼리지는 독특하게도 2년제 과정이라고 하는데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다른 어느 명문대학들에 비해서 에모리대학이 특징이 있는 점이 있다면 에모리대학에는 2년제 과정의 옥스퍼드칼리지(Oxford College)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2년간 에모리 인문학대학과 똑같은 수업을 받고 나면 준학사(AA degree)를 받고, 본인이 희망하면 4년제 학부 과정의 3학년으로 편입이 가능합니다. 에모리대학교의 2018년 학부 과정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공으로는 경영학, 생물학, 간호학, 경제학 그리고 심리학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에모리대학교의 재정 지원 정책"
이번에는 에모리대학교의 재정 지원 현황 한번 살펴볼까요?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더 많은 인재를 흡수하려는 에모리대학교는 신입생 선발에서 성적 우수 장학생들을 별도로 등용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소득이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높은 자질과 성적을 가진 지원자들은 인문계열의 경우, '에모리 장학생프로그램(Emory Scholar Programs)'에서, 경영학부는 '고이주에타 경영대학 장학생프로그램(Goizueta Scholars Program)'을 통해 지원하는 식입니다. 매년 175명에서 200명 정도 규모의 이 영광스러운 장학생 자리를 놓고 8천 명에서 1만 명의 지원자들이 응시하고 있습니다."
에모리대학교는 일단 입학한 내국인 학생에 대해서는 근로 장학금 등 다양한 형태의 장학 제도를 통해 학생들이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지 않도록 100% 지원한다는 방침인데요. 2018년도 학기 에모리대학이 학부생들에게 지원한 장학금은 2억 900만 달러가 넘습니다.
"신입생 선발 과정"
에모리대학교는 신입생 선발에 있어 구속력이 있는 조기 지원(Early Decision)은 2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2019 학년도의 경우, 11월 1일 원서가 마감돼 12월 15일에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1차 조기지원과 1월 1일 접수 마감되고, 2월 15일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2차 조기 지원이 있습니다. 정규 지원(Regular Decision)은 1월 1일 접수가 마감돼 입학 여부 결정은 4월 1일을 전후로 통보받게 됩니다.
네, 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됐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미국의 또 다른 명문대학으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