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간 경고성 발언이 오가고 ‘무력 사용’ 표현까지 재등장하면서 미 전직 관리들 사이에선 불안하게 유지돼온 미-북 간 ‘안정기’가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제재 요구를 앞세운 북한의 ‘연말 시한’ 제안은 미국의 양보 대신 강력한 맞대응을 유도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우려입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연말 시한’을 재확인하고 상호 발언 수위가 높아지면서 워싱턴에서는 불안하게 유지돼 왔던 ‘수면 위의 고요함’이 깨지고 미-북 관계의 맨 얼굴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는 VOA에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북한은 일종의 ‘안정기’를 가져왔다”며, 이런 상태를 오래 끄는 것은 미국보다 북한에 불리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 “It seems to me that we have been on a plateau with the North Koreans since Singapore. We restrict military exercises, but continue sanctions, they restrict long range ballistic missile and nuclear weapons tests, but continue short range rocket tests. This is not a good long term arrangement for either of us, but in the short term it has been more painful for the Chairman than the President.”
“미국은 군사훈련을 제한하면서도 제재를 유지했고, 북한은 핵과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유예한 채 단거리 로켓 실험을 계속한 이런 상태는 장기적으로 두 나라 모두에 좋지 않지만 단기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더 고통스러웠다”는 설명입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협상에 복귀시킬 만한 모종의 행동을 함으로써 새해에는 판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고, 제재 완화를 맨 앞에 내세운 것”이라고 갈루치 전 특사는 말했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 “He has been clear about changing things in the new year, presumably by doing something he believes will encourage the President back to negotiations, but with a new willingness to remove painful sanctions up front.”
그렇다 해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했던 ‘연말 시한’은 정상 국가 간의 외교 공식을 벗어난 비합리적 요구라는 게 북한과 협상 경험이 있는 미 전직 관리들의 견해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서라지만 미국의 양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연말 시한을 설정해 놓고 기한 전에 진전을 이루기 위한 미국과의 실무협상에 응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 “It is unreasonable for North Korea to set an end-of-year deadline and then refuse to engage with the United States at the working level to try to achieve progress before the deadline. It is unclear why the North has adopted such an uncompromising position.”
북한이 이처럼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는 건데, 워싱턴에서는 미국에 신호를 보내면서 미래의 도발에 대한 복선을 깔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룹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그들이 지어낸 ‘시한’은 제재 완화라는 양보를 얻어내고, 미국이 응하지 않을 경우, 어차피 실시하려 했던 (핵.미사일) 실험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The deadline they concocted is aimed at getting concessions i.e. sanctions relief and blaming the US when we don’t cave in so they can then justify their testing, which they would do anyway.”
그러나 미국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조건과 시한을 제시한 일종의 최후통첩에 미국의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지고 있다는 게 북한의 ‘벼량끝전술’에 익숙한 전 협상가들의 지적입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는 “북한이 스스로를 과신해 너무 심한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미국이 양보를 하는 대신 오히려 대응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 “The danger here, of course, is that the North will overplay its hand and make a move so provocative that the US could not respond with a concession, and might even feel compelled to "up the ante," starting a process of reciprocal escalation instead of negotiating reciprocity.”
결국 “상호 이익을 협상하는 대신 상호 긴장을 고조시키는 수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지적으로, 이는 ‘필요하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무력에는 무력으로 맞대응하겠다’는 박정천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의 즉각적 반응으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북 대화가 시작된 이후 북한 군 차원의 경고성 담화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애당초 “북한은 합의에는 관심이 없고 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훼손시키는데 협상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이유가 무엇이든 북한의 행동은 역내 위기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 “Or perhaps it is not interested in reaching agreement and has only been using the negotiations to erode international support for sanctions. Whatever the explanation, its behavior may be plunging the region into crisis.”
여기에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미 정치 현실도 비핵화 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스티븐 노퍼 코리아 소사이어티 선임연구원은 이같은 미국의 정치 환경을 “위태로운 시기”로 규정하고 “국내 문제로 산만해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원하는 합의를 안겨줄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이 깨닫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티븐 노퍼 코리아 소사이어티 선임연구원] “This is a precarious time, but also signals that the NKs realize Trump is distracted domestically and cannot give them the accommodations they desire.”
협상 재개를 위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워싱턴에서는 북한의 향후 포석과 관련해 엇갈린 분석이 나옵니다.
랄프 코사 전 태평양포럼 석좌는 “북한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전망했습니다.
[랄프 코사 전 태평양포럼 석좌] “I think it is highly likely the North will resume ICBM testing first and eventually nuclear testing as well if they don’t get what they want. I would also prefer a resumption of testing to sanctions relief or a bad deal that lets them continue their ICBM and nuclear programs.”
그러면서 “제재 완화나 나쁜 합의를 통해 북한이 계속 ICBM과 핵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허용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들이 실험을 감행하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미-북 간 대결구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쑨윤 스팀슨센터 동아시아·중국 담당 국장은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제재 완화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도발을 이용하는 것이지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닌 만큼, 고조된 위기가 당장 충돌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쑨윤 스팀슨센터 동아시아·중국 담당 국장] “We all know that DPRK is using provocations to try to get the US to concede on the easing of sanctions. We also know that DPRK’s goal is not to have a war. So while I’m concerned that we might return to the escalation of crisis, I don’t believe a conflict is in the immediate future.”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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