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은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내년 국방수권법안에는 대북 제재 강화를 골자로 하는 ‘웜비어법’이 포함됐고, 미국 정부가 제재 위반 혐의로 압류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 호의 매각 대금은 웜비어 유가족에게 전달됐습니다. 또 그의 사망을 계기로 미 국무부는 미국인들의 북한 여행을 금지했습니다. 2016년부터 지난해 중순까지 국무부 북한과에서 인권과 인도주의 분야를 담당하며 웜비어 씨 석방을 추진했던 아니카 베튼코트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조은정 기자입니다.
기자) 국무부에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을 담당하셨지요? 웜비어는 2016년 북한에서 체포된 뒤 17개월 만에 풀려나 미국에 돌아온 지 6일 만에 숨졌는데요, 억류 당시 상황이 어땠습니까?
베튼코트 연구원) 다른 미국인 억류자 사건과 달리 웜비어의 경우 그가 어디에 있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정보가 거의 없었고 소통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을 대신해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는 스웨덴 측이 웜비어가 재판을 받을 때만 방문하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억류된 순간부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제 선임자도 북한에 계속 웜비어에 대한 접근과 상황 파악을 요구했었는데, 제가 이 사건을 담당한 뒤에야 북한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대화가 시작된 직후 우리는 그의 상태를 알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아무 것도 몰랐죠.
기자) 북한이 웜비어 사건에 대해 미국과 처음 대화하기 시작한 때가, 2017년 5월 경이었습니까? 당시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당시 미국국장과 웜비어 씨 문제를 협상했었죠.
베튼코트 연구원) 그렇습니다. 여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웜비어의 상태를 알기 전에도 국무부는 인도주의적 고려에서 그를 석방해 줄 것을 줄곧 북한에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상태를 안 뒤에는 더욱 강하게 요구했죠. 결국 북한은 국무부가 북한에 가서 웜비어를 데려올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기자) 북한은 어떤 동기로 웜비어를 석방했을까요?
베튼코트 연구원)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한대로, 북한 외무성은 웜비어 석방이 미-북 간 다른 분야에서의 대화도 촉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 것 같습니다. 북한 외무성도 그 때 가서야 웜비어의 상태를 파악하게 된 듯이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웜비어의 매우 신속한 석방을 촉발한 것입니다.
기자) 당시 국무부는 상황을 얼마나 급박하게 받아들였나요?
베튼코트 연구원) 우리는 그의 상태를 알게되자 마자 매우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북한을 압박해 그를 석방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알았죠. 웜비어는 매우 오랫동안 억류돼 있었지만, 그의 석방은 수 주 만에 이뤄졌습니다.
기자) 웜비어 석방 이후 미국 의회와 언론에서 북한에 대한 여행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직접 정부 정책으로 이어졌습니까?
베튼코트 연구원) 미국인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북한으로 여행하는 데 대한 우려는 항상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재판도 없이 오랜 기간 억류되는 사례가 계속 생기자 국무부 내 여러 부서에서는 미국인들에게 북한 여행에 따른 위험을 알려야 한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북한 여행 금지 조치는 미국인들이 북한을 방문할 경우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 웜비어가 석방된 이후에도 미국인 3명이 더 억류돼 있었습니다. 이들 세 사람의 석방도 베튼코트 연구원이 담당했는데요. 당시는 미-북 1차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이들의 석방이 어떻게 이뤄졌나요?
베튼코트 연구원) 그 때는 폼페오 장관이 새로 취임했을 때입니다. 폼페오 장관은 북한과 어떤 움직임이나 진전을 내기 위한 모든 종류의 기회에 매우 관심이 컸습니다. 미국인 억류자들 석방에 대한 북한과의 논의는 이미 수 개월 전부터 진행 중이었습니다. 북한 문제에 매우 적극적인 국무장관이 새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동력이 생겼었습니다. 북한은 아마도 협상 절차를 시작하기 위해 미국인 석방이라는 선의의 제스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 웜비어와 김동철, 김학송, 김상덕 씨 등 3명의 억류자의 사례는 어떻게 달랐습니까?
베튼코트 연구원) 웜비어가 심각하게 아팠다는 점이 매우 다르죠.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들 중에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었고, 이미 만성 질환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웜비어의 경우는 훨씬 심각했습니다.
기자) 웜비어가 석방됐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베튼코트 연구원) 억류자들과 가족들을 재결합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매우 안도합니다. 하지만 웜비어 경우는 극도로 충격적이었죠. 끔찍했습니다. 그런 모습의 웜비어를 맞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가슴 아팠습니다.
기자) 국무부 북한과에서 2년 간 근무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베튼코트 연구원) 여러 다른 나라들과 북한 관련 다양한 주제에 협력할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시아와 매우 떨어져있고, 아시아에 대한 집중적인 정책이 없는 나라들이 있죠. 그런 나라의 외교관들이나 비정부기구 요원들이 북한 인권이나 인도주의 문제, 트랙-2 민간 대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적극 개입할 때 저는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는 문제, 대북 지원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서 매우 폭넓은 공감대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중순까지 국무부 북한과에서 미국인 억류자 석방을 담당했던 아니카 베튼코트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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