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올 한 해 북한과의 협상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 독자 제재 등을 통한 대북 압박을 유지했습니다. 반면, 북한은 불법 환적 등을 통해 제재를 회피하며 미국을 향해 지속적으로 제재 완화를 요구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연말 시한'을 앞두고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유엔에 제출하는 등 대북 제재 이행과 관련한 안보리의 전열에 균열이 생기는 모양새입니다. 대북 제재를 둘러싼 지난 1년의 움직임을 오택성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올 한 해 미국의 특징적 대북 제재 전략은 ‘신중한 압박’입니다.
올해 미 재무부의 추가 대북 제재 명단 지정은 총 5차례 이뤄졌는데, 이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가장 적은 숫자입니다.
‘화염과 분노’ 시절인 2017년 독자 제재 건수는 8차례였고,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해 미국의 대북 제재는 11건에 달했습니다.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급격히 경색된 미-북 관계 속에서 필요 이상으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입니다.
실제 지난 3월 21일 재무부가 올해 첫 조치로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중국 선박 회사 2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트위터를 통해 추가 제재의 철회를 지시했습니다. 새라 샌더스 당시 백악관 대변인입니다.
[녹취: 샌더스 전 대변인(지난 3월)] “Like I said, the president likes him, they want to continue to negotiate and see what happens.”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하며, 두 정상은 협상을 이어가길 원한다는 겁니다.
이후 재무부는 4차례 더 추가 대북 제재 대상을 지정했고, 시기적으로 봤을 때 모두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 성격으로 이뤄졌습니다.
지난 5월 4일과 9일 북한은 올 들어 처음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약 한 달 뒤인 6월 19일, 재무부는 대북 제재를 회피해 국제금융체계에 접근하려는 북한을 위해 은행계좌를 개설해 준 러시아 금융회사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나머지 3건도 이와 유사합니다.
재무부는 7월 29일과 8월 30일, 9월 13일, 각각 추가 제재 대상을 지정해 발표했고, 이는 북한이 지난 7월 25일부터 집중적으로 미사일과 방사포 등을 쏘아올린 시기와 일치합니다.
미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제재로 대응한 것과 동시에 주목되는 건 압박 수위입니다.
총 5차례에 걸친 재무부의 추가 제재 대상 지정에서 북한을 직접 겨냥한 것은 군수공업부 소속 해외 파견 북한인 1명에 대한 지정(7월)과 `라자루스' 등 북한 해킹그룹에 대한 지정(9월) 등 두 차례입니다.
지난해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정경택 국가보위상, 박광호 노동장 부위원장 등 김정은 정권의 핵심 인사 3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북한과의 불법 환적 등 제재 회피 활동에 연루된 인물과 해운사, 선박(3월, 8월), 그리고 해외 금융기관(6월) 등 제3국의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제재입니다.
다만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개인도 제재하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의 성격을 강화해 대외적으로 대북 제재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평가입니다.
이런 가운데 제재를 회피하려는 북한의 활동도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가장 두드러졌던 건 선박 간 불법 환적과 사이버 활동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불법 환적 활동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핵심 자금줄이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며 지속적으로 이를 경고했습니다.
안드레아 톰슨 전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보입니다.
[녹취: 톰슨 전 차관보(지난 6월)] “Whether it’s coal and petroleum products or luxury goods getting to Chairman Kim’s regime, it doesn’t go to the people of North Korea. It goes to the regime in turn goes to his nuclear program and his missile program.”
석탄이든 유류든 사치품이든 북한 주민들 손에 들어가지 않고 김정은 정권에 들어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전용된다는 겁니다.
미국은 지난 6월, 영국과 프랑스 등 26개 나라와 함께 유엔 안보리에 서한을 보내 북한이 불법 환적을 통해 연간 수입 한도인 50만 배럴 이상의 정제유를 수입했다며 이를 중단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북한의 제재 회피 수단은 사이버 활동입니다.
유엔 안보리 전문가패널은 지난 9월 제출한 중간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 등 최소 35차례에 걸친 사이버 공격으로 20억 달러를 편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이런 활동이 올 들어 나타난 새로운 양상이라며 적극 대응할 뜻을 밝혔습니다.
에린 조 국가정보국 사이버위협 정보통합센터 국장입니다.
[녹취: 조 국장(지난 5월)] “It is a relatively new thing. It comes with variety of issues we need to learn more about and figure out so that we can stop malicious behavior related to cryptocurrency.”
북한의 활동은 비교적 새로운 수단으로, 가상화폐와 관련된 악의적 행동을 막기 위해 더 알아가야 할 사안이 있다는 겁니다.
북한은 또 올 하반기부터는 제재 완화와 관련한 대미 압박 수위를 높였습니다.
특히 지난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미-북 실무 협상이 결렬된 뒤 북한은 하루가 멀다고 담화를 발표해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가 없는 한 대화는 없다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유엔 안보리 내에선 대북 제재 전선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지난 16일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제안하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했습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입니다.
[녹취: 겅솽 대변인(지난 17일)] “The third is to decide to lift some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in accordance with North Korea’s compliance with the resolution.”
미국은 현 시점에서 제재 완화를 고려할 시점이 아니라며 중국과 러시아의 제안을 일축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후원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앞으로 미-북 비핵화 협상에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재 문제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줄다리기가 오랫동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이 국제사회의 제재 전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오택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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