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현재 한반도 정세는 남북한을 둘러싼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미-북 비핵화 협상이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한 가운데, 한반도에서 머잖아 2017년과 같은 위기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VOA는 연말을 맞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주요 움직임을 되돌아보는 기획물을 준비했습니다. 다섯 차례로 나눠 보내드리는 특집보도,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논란과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견해차 등으로 긴장이 높아진 미-한 동맹에 관해 전해 드립니다. 김영권 기자입니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미-한 관계의 최대 화두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를 꼽습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미·한·일 3각 안보 협력의 중요한 상징으로 여기는 지소미아의 종료를 전격 발표했고, 이로써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고조됐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한국 청와대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표입니다.
[녹취: 김유근 청와대 안보실 1차장(지난 8월 22일)] “정부는 한-일 간 군사비밀정보보호에 관한 협정,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하였으며, 협정에 따라 연장 통보 시한 내에 외교경로를 통하여 일본 정부에 이를 통보할 예정입니다.”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지난해 말 배상 판결에 지지 입장을 밝히자,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 등 국가 간 외교 협정을 위반했다며 한국에 경제 제재를 가했고, 청와대가 지소미아 종료 발표로 대응한 겁니다.
한-일 모두 서로에 대한 ‘안보상 신뢰 문제’를 이유로 강조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 등 미 고위 관리들은 잇따라 한국 정부의 발표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한 동맹관계에서 적잖이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이런 반응은 앞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 고위 관리들이 서울을 방문해 지소미아는 “북한에 대한 공동방어의 핵심”이라며 설득했음에도 한국 정부가 종료를 결정한 데 대한 불만의 표시였습니다.
[녹취: 폼페오 장관] “We're disappointed to see the decision that the South Koreans made about that information sharing agreement. We were urging each of the two countries to continue to engage, to continue to have dialogue.”
이후 한국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고 재고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왔고, 미 의회도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철회와 미-한-일 연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등 전문가들은 VOA에,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강하게 우려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룩스 전 사령관] “Not just because of the actions of China in the East and South China Seas, but also because of the essence of North Korea in continuing to find ways to work around the Economic Sanctions limiting the flow of oil transfers that are being done now at sea.”
지소미아는 한반도 방위뿐 아니라 해양안보까지 포함해 전반적인 인도태평양 안보 구조의 핵심으로,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북한의 석유 환적 차단 등 포괄적 대응에 필수적이란 겁니다.
아울러 8개 정찰위성을 통해 대북 정보를 수집하는 일본의 역량과 남북 경계선에 집중된 북한 군사력에 대한 한국의 정보력 공유를 포기하는 것은 “자해 행위”로, 미·한·일 공조에 균열을 내려는 북한과 중국에만 도움을 준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이에 한국 외교부가 이례적으로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불러 한국에 대한 공개 비판 자제를 요청하고, 한국군이 독도(일본명 다케시마) 방어훈련까지 강행하자 미 국무부는 “비생산적”이라며 비판 수위를 더 높였습니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들이 잇달아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미국은 북·중·러가 미·한·일 동맹체제를 분열시키려는 의도라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 재고를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동맹관계를 약화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VOA에, 트럼프 행정부의 부실한 외교력을 우려한다며, “문제 해결 대신에 오히려 문제를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힐 전 차관보] “I think the problem is the United States has never had such a weak diplomatic team as it does in the State Department…I’m concerned with the ability to solve problems because instead of solving them we seem to be creating them.”
미국의 동맹인 한-일 두 나라의 관계는 당사국 의지에 달렸지만, 미국이 과거처럼 적극적인 외교를 통한 촉진자 역할에 미온적이어서 이런 사태를 부추겼다는 겁니다.
지소미아는 결국 일본이 수출 규제 철회를 위한 대화에 나서기로 합의하면서 한국의 연장 결정으로 한숨을 돌렸지만, 연초부터 논란이 커진 방위비 분담금은 1년 내내 미-한 동맹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방위비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 2월 각료회의에서 한국이 50억 달러 비용이 드는 미국의 한국 방어에 대해 5억 달러 정도만 지출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증폭됐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But South Korea is costing us $5 billion a year. And they pay - they were paying about $500 million for $5 billion worth of protection. And we have to do better than that.”
이후 미 당국자들이 미-한 방위비분담협정(SMA) 협상 등에서 실제로 한국에 기존의 4~5배에 달하는 50억 달러를 청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이 고조됐습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대선 유세에서 동맹의 ‘안보 무임승차론’과 “동맹의 갈취”, 미군 철수까지 거론했던 점을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국력 신장과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따라 미군의 한국 방위에 대한 분담금을 한국이 훨씬 더 부담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양국 간 기존 합의를 강조하면서, 50억 달러는 “근거 없이 과도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민 대다수는 여론조사에서 주한미군을 감축하더라도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과 `가치 동맹' 보다 방위비 분담금에 더 관심이 크다는 우려는 한국뿐 아니라 미 전문가들과 의회에서도 제기됐습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 10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한반도 철수를 주기적으로 언급하고 동맹의 가치를 비판하면서 미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한국의 의구심을 더 키웠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평화연구소의 패트리샤 김 연구원은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에서 한국의 공정하고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딜레마 등으로 미-한 동맹이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패트리샤 김 연구원] “The US-ROK Alliance is also under a lot of stress…the first one I think it's over South Korea's fair and appropriate role in the US-ROK Alliance and the greater US-led Alliance system.”
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국력 신장으로 안보와 대북 정책에 더 주도권을 행사하기 원하는 문재인 정부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 견해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미-한 방위비분담협상은 끝내 해를 넘기게 됐고, 한-일 갈등은 여전히 불안하며, 전시작전권은 전환 조건의 충족 여부를 놓고 미-한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미국과 달리 북한에 대해 좀더 유연한 조치를 선호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법과 미-한 연합군사훈련 축소 역시 오랜 안보동맹의 결속을 해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세 차례 만나 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했지만, 미-한 동맹은 과거보다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한 동맹은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에 다소 경색된 관계를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도 동시에 나옵니다.
수전 손튼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행은 VOA에, 미-한 정부의 정치적 양극화로 약간의 ‘빛샐틈’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동맹관계에서 흔한 일로 두 나라 관계는 여전히 견고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손튼 전 대행] “I do think that we shouldn't overhype the problems either things that are kind of normal for alliance relationships and negotiation is something that will be worked out and I think that the underlying logic of the relationship is still, you know, fundamental and solid.”
동맹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개 이상의 국가가 외부의 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맺는 군사 연대입니다.
내년에 상호방위조약 체결 67주년을 맞는 미-한 동맹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방위비 분담금 등 산적한 현안을 원활하게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2019년 연말을 맞아 VOA가 준비한 연말 특집보도, 내일(26일)은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한 남북관계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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