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은 사그라들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요구는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특히 급변사태를 가정한 북한 핵 프로그램의 안전 확보와 폐기 방안에 관심이 쏠립니다. VOA에서는 핵 사찰과 검증 경험이 있는 북한 핵 전문가들로부터 유사시 북 핵 프로그램의 해체 절차와 범위에 대한 설명을 두 차례에 걸쳐 들어보는 특집 인터뷰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이 폐기 대상으로 제시하는 북 핵 프로그램과 해체 방안을 전해 드립니다.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 핵 프로그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폐기 계획을 세우는 데 여러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북한 핵 폐기 계획을 미리 세우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누가 그 작업을 하든 북 핵 프로그램의 실체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5MW 원자로나 재처리시설의 경우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미국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이미 여러 차례 확인한 적이 있어서 폐기가 그리 복잡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외부 관리들 가운데 영변 원심분리기 시설을 들여다본 사람이 없고, 현지에 새로 들어선 건물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릅니다. 핵연료 생산을 하는 곳인지, 삼중수소 같은 방사성 물질을 분리하는 추가 장소인지, 가동은 되는지,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먼저 현장을 방문한 뒤 폐기 전략을 짜야하는 겁니다. 다른 나라의 선례가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북 핵 프로그램 전체를 폐기하는 게 목적이라면 무엇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큰 어려움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폐기하기 위해 미리 계획안을 준비해 놓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북한의 협조도 필수 요건 아닙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IAEA는 조사와 모니터링을 담당하지 폐기 작업은 하지 않습니다. 폐기는 결국 몇몇 나라의 기술과 자금 지원을 받아 북한이 맡아야 합니다. 이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건 북한의 문제입니다. 플루토늄과 무기급 우라늄은 북한 바깥으로 반출해야겠지만, 원자로에서 나온 핵폐기물 매립 장소를 찾고 관리하는 것은 북한의 책임입니다.
기자)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이어서 각국의 역할 분담도 중요할 텐데요.
올브라이트 소장) 미국이 단독으로 나서진 않을 것이고, 각국이 6자회담과 비슷한 형태의 컨소시엄을 형성해 참여하는 다자체제가 될 겁니다. 북 핵 신고나 검증까지 가지도 못했기 때문에 우선은 무엇이 있는지부터 조사해야 합니다. 영변 외 어떤 시설이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아울러 누가 자금을 댈 것인가라는 민감한 문제가 남습니다. 미국은 많은 부담을 꺼릴 것이고, 한국은 (제네바 합의의 결과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지원 사업에 거금을 지원한 데 대해 아직도 유감스러워합니다. 100억 달러나 제공했지만 얻은 건 없었기 때문에 (자금 지원은)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분명한 건 북한이 돈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고, 중국이나 러시아도 이런 프로젝트에 자금 지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지켜볼 일입니다.
기자) 핵무기 생산 라인 자체를 해체하기 위해선 이 분야에 가장 경험이 많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올브라이트 소장)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 영국도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고 중국, 프랑스도 어느 정도 그렇습니다. 핵보유국 모두 핵무기 생산 시설 해체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다만, 미국과 한국 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폐기가 될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북한에 더 이상 필요 없는 노후 시설을 외부의 도움을 받아 제거하는 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북한은 비밀시설에서 운영하는 무기급 우라늄 핵 프로그램만 남겨놓은 채 오래된 5MW 경수로와 재처리시설만 없애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한국과 미국은 그런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기자) 먼저 폐기해야 할 핵심 시설들부터 설명해주시죠.
올브라이트 소장) 우라늄 광산에 대한 결정부터 해야 합니다. 폐쇄할지, 아니면 향후 우라늄 판매를 허용할지 말입니다. 또 광산에서 채취한 천연 우라늄을 핵 연료로 전환하는 다양한 시설이 있습니다. 우라늄을 우라늄 정광(옐로케이크), 우라늄 산화물, 금속 우라늄 형태로 차례로 전환해 5MW 원자로에서 연료를 생산하는 시설들입니다. 그리고 우라늄 산화물을 우라늄헥사플루오라이드 가스로 바꾼 뒤 원심분리기로 돌려 농축하는 시설들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 사용되는 최소 3개 시설에 대해 이해하고 폐기해야 합니다.
기자) 원심분리기는 은닉하기 쉽기 때문에 영변 외 별도의 비밀 시설이 있을 가능성이 의심되고 있지 않습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원심분리기 시설도 폐기해야 하는데 1개만 있는 게 아니라 2개, 심지어 3개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위치도 모르고요. (원심분리기와 별개로) 실험 공장(pilot plants)들도 1~4개가 있습니다.
기자) 폐기 대상 중 원자로에 대해선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고 봐야겠죠?
올브라이트 소장) 보다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5MW 원자로와 경수로가 있는데, 폐기 작업 시 경수로의 가동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북한은 (저농축) 우라늄을 경수로 원료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기 때문에, 가동 중이라면 우라늄 광산과 전환 시설을 폐쇄해 연료 통로를 막아야 합니다. 북한이 영변에서 우라늄을 농축하도록 놔둬선 안 될 것이고, 따라서 전면에서 가동되는 연료 사이클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경수로 가동을 승인한다면 연료는 외국에서 수입하도록 조처해야 합니다. 그 밖에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 재처리시설은 영변에만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 이렇게 생산된 핵연료가 핵무기 제조 시설로 넘어가는 건데요. 어떤 시설을 어떻게 폐기해야 합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영변에서 금속 형태로 가공된 플루토늄은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제가 만난 북한 기술자들은 이 금속 플루토늄을 어디로 옮기는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주조 용광로와 각종 기계설비를 갖춘 다른 시설에서 핵탄두로 제작되죠.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해 비슷한 작업을 하는 시설도 있습니다. 플루토늄 핵무기 시설은 우라늄 기반 시설에 비해 폐기할 때 오염이 굉장히 심해서 복원 작업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이외에도 고성능 폭약과 전자 부품 시설들이 있는데 핵무기 제작용 여부를 파악해 역시 폐기해야 합니다. 이런 부품의 안정성을 시험하는 시설과, 각 단계를 거친 모든 부품을 핵탄두로 조립하는 시설도 폐기 대상입니다.
기자) 북한이 폐쇄했다고 주장하는 풍계리 핵실험장도 다시 한번 검증을 해야겠죠?
올브라이트 소장)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시설이지만 또 다른 핵실험장 존재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 북한 어딘가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 핵실험 터널들이 있는지 말입니다. 북한이 소위 폐쇄하는 모습을 공개했지만, 내부 터널이 모두 폭파됐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핵보유국이라면 모두 검증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기자) 앞서 북한 핵폐기물 처리와 정화 작업은 결국 북한의 문제이자 책임이라고 하셨는데 북한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의문입니다.
올브라이트 소장) 어떤 나라의 기준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남습니다. 북한의 기준은 분명히 서방국가들과 다르므로 논쟁이 벌어질 겁니다. 저는 이 부문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으로 봅니다. 한국은 엉망이 된 핵 폐기 현장을 결국 자신이 물려받게 될 것으로 판단할 수 있어서 한국 기준을 적용하게 될 겁니다. 한국은 이미 북한 핵시설 (폐기)에 적용될 기준과 규정에 대해 많이 고민해왔고, 이런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려고 해왔습니다.
기자) 한국에선 북한 핵무기와 시설이 통일 뒤 한국의 자산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 적이 있는데요. 오히려 한국에 엄청난 비용 부담을 안길 수 있겠네요.
올브라이트 소장) 분명히 그렇습니다. 핵폐기물 처리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는 정말 어려운 작업입니다. 이 때문에 각국은 이 일에 선뜻 뛰어들어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누구든 나서서 “5MW 원자로를 처리하겠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로 인해 “지름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고 폐쇄하는데 그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모든 책임과 비용을 떠안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자국 원자로 폐기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있고 아직도 정화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워싱턴주 핸포드 핵폐기물 저장소가 대표적인 예인데, 재처리에 따른 폐기물 처리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핵 재처리 실험을 통해 나오는 위험 물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큰 문제가 남습니다.
기자) 일부 시설은 반드시 폐기하지 않더라도 연구용 혹은 민수용 목적으로 전환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의료용) 동위원소를 생산할 수 있는 경수로가 대표적이죠. 국제 감시하에 우라늄 광산은 열어놓고 수출에 활용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핵무기 부품을 만드는 시설, 다루기 힘든 중수소를 생산하는 시설 등 많은 북 핵 시설은 다른 용도로 전환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또 원자로 시설 등이 폐기됐을 때 여기서 일하던 인력을 어느 분야로 전환할 것인가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핵 폐기 이후에도 연구용 원자로를 갖고 있었고 의료용 동위원소를 생산했습니다. 북한 경수로에 적용될 수 있는 사례입니다. 핵무기와 고성능 폭탄 부품 생산 시설을 평화적 용도로 바꾸는 것은 어렵고, 관련 인력을 의미 있는 다른 직종으로 유도하는 데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진행돼 왔습니다.
기자) 북한 핵 폐기 기간을 어느 정도로 예상하시나요?
올브라이트 소장) 폐기 작업은 2년 정도면 되지만 원자로 등을 폐쇄하고 완전히 폐기한 뒤 폐기물 처리까지 하려면 10년은 걸릴 겁니다. 하지만 북 핵 시설의 가동을 중단시키는 것은 몇 주 혹은 몇 달이면 됩니다. 가령 검증 관점에서, 해당 시설이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빨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의 협조를 받아 폐기 대상을 확인하고 관련 조처를 하는데 수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겠지만 각 시설을 ‘불능화’시키는 것은 몇 주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폐기에 걸리는 시간은 시설마다 다릅니다. 원심분리기 시설 폐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원자로나 재처리 시설은 몇 년이 소요되고 여기서 나오는 핵폐기물 처리에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로부터 북한 핵 프로그램 폐기 절차와 변수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