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얼룩진 2020년이 지나가고, 2021년 새해를 맞는 미국 내 탈북민들의 심경은 어떨까요? 장양희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어릴 적 연락이 끊긴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아 탈북했던 유형준(가명)씨.
2020년 1월 아버지와 연락이 닿은 지 3년 만에 미국에서 감격스런 재회를 했습니다.
[녹취: 유형준] “집에 온 기분이고요. 엄청 마음이 편해요. 포옹하면서 그냥.. 보고싶었다고 말했어요. 보고 싶었거든요. 엄청 보고 싶었어요. 3년만에 소원이 이뤄진 거에요. 서먹서먹한 게 없어요. 참으로 고맙죠. 여기까지 데리고 나온 거 만도. 아무 것도 안해줘도 할 말이 없어요……”
20세 청년 유형준 씨는 2020년에 미국에 입국한 2명의 탈북 난민 가운데 한 명입니다.
2017년 탈북 후 2년 가까이 태국의 난민수용소에 머물렀던 유 씨는 수용소에서 처음 들어본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2020년 1월 23일 미 동부 버지니아에 도착했습니다.
영어 공부에 몰두할 생각이었던 유 씨는 지난 1년여 시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달라진 환경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녹취: 유형준] “시카고 안 간 것에 감사하고, 누나 집에 온 게 감사하고. 누나 안 만났으면 어떻게 살지 궁금하고, 엄청 힘들 것 같고요. 제 집처럼 먹고 싶은 거, 맘 편하게 하거든요. 옷도 챙겨주시고. 너무 잘 해주시니까. 코로나 느낌 못받고 잘 지내고, 원래 가려고 했었는데, 시카고에 코로나가 많이 터졌다고 해서 못갔는데 그게 감사하고요. 어쨌든 일이 안 됐는데, 좋았던 거 같아요…”
미 중서부 시카고로 옮겨 탈북 난민을 위한 무료 영어교육 시설로 가려고 했지만,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석 달 전부터 탈북민 가정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유 씨는 주변에서 다른 선택지도 권하고 있지만, 2021년 한 해는 지금 일에 충실할 계획입니다.
[녹취: 유형준] “아직까지는 코로나도 터지고 하니까 다닐 상황도 아니고, 저는 혼자니까 이제는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괜찮아요. 누나는 다른 곳에 가라고 권고하고 기술 일 하라고 하시는데, 아직까지는 여기 있으려고 해요.”
같은 시기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입국한 50대 남성 김창민(가명)씨도 직장에서 일하며 코로나에 신경 쓸 사이 없이 바쁘게 지냈습니다.
[녹취: 김창민] “괜찮았어요. 일하는 정신에 직장 출근하고, 밤일 하거든요. 오후 2시부터 밤 10시 까지. 회사 출근하면서 일하는 정신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고. “
전염병 확산으로 불편함을 겪긴 했지만 1년 동안 미국을 경험하며 미국으로 온 게 잘 한 선택이라고 김 씨는 자신합니다.
[녹취: 김창민] “그렇죠. 잘 왔죠. 북한 그 땅에서 살면. 아이고.. 더 말할 수 없죠. 잘 왔어요.”
지난 1년 동안 낯선 땅에서 잘 살 수 있게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도 많았습니다.
[김창민] “교회에서 많이 도와주고, 목사님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죠. 너무 감사하죠…”
그러나 두고온 땅 북한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김 씨는 자유란 목숨을 걸 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녹취: 김창민] “그 땅을 모르고 살았지. 그 힘든 땅에서 어떻게 살아요. 자유를 찾아서 모두 대한민국으로 가던지.. 그 땅에서 자유를 찾아라. 무지막지한 노예로 살 수 없잖아요. 말할 게 없어요.”
미국에 온 지 올해로 10년이라며 감개무량하다는 크리스 최 씨는 “애숭이 어린 애가 인생의 새로운 환경에서 이제 열 살이 됐다”면서 “내 인생에 가장 보람되고 즐겁고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게 한 귀중한 시간들이었다”고 한 해를 보낸 소감을 말합니다.
15년 동안 찾았던 여동생과 연락이 닿았고 매일 전화통화하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 최 씨는 동생과 함께 좋은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소망입니다.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대형 호텔의 요리사로 일하지만 호텔업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최 씨도 주 정부가 제공하는 실업급여를 받아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 씨는 2021년에는 더 노력하며 욕심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남을 배려하겠다면서, 악성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 미국에 입국한 경제학자 갈렙 조 씨는 미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올해부터 박사학위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또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겪었던 것처럼 낯선 상황에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녹취: 갈렙 조] “처음에는 일하는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효력도 떨어지고, 사람들도 못 만나니까 안정을 찾는 게 시간이 걸렸고,.”
그러나 제한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잊고 지냈던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았던 매우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등 적잖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녹취: 갈렙 조] “참 많은 일들이 생긴 해였거든요. 첫 아기도 가지게 되고. 사실은 내일이 해산 예정일이에요. 아기랑 집에 있으면서 아내랑 산보를 많이 했어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간에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리고 올 해 아기 생김과 더불어 첫 집도 샀거든요. 얼마 전에, 미국에 와서 10년 전에 저희만의 집을 가지게 됐고..”
아빠가 될 기대감, 그리고 내 집 마련까지 이룬 잊지 못할 2020년 이었습니다.
첫 아기가 아들이라고 말하는 조 씨는 그래서 2021년이 매우 바쁜 한 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녹취: 갈렙 조] “2021년은 너무 바쁠 것 같습니다. 3개월 출산휴가를 받았어요. 아기도 3개월 동안 육아도 같이 하고 공부도 같이 하고, 그래서 엄청 바쁠 것 같고 새로운 한 해일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되니까..”
유타 주에 거주하는 제이크 김 씨는 아내와 함께 코로나 사태 속에서 아이 둘을 양육하며 유학생으로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녹취: 제이크 김] “저에게는 더 어려웠어요. 교실에서 학생들과 교수님과 토론하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해 답답한 생각이 들었죠.”
2015년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 유학생 신분으로 오게된 김 씨는 수 년 동안 미국인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녹취: 제이크 김] “그래도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에 굉장히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제 와이프도 대학을 다니고 있거든요. 학비도 두 사람 것을 내야 해서 만만치 않거든요. 그런데 공부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요. 모든 과목에 A를 받으려고 애쓰고 올해도 전 과목 다 A를 받았어요. 유학생으로서 A를 받자면 원어민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거든요. 굉장히 삶의 고단함이 느껴지긴 하는데,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감사함이 있었고.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들에 보답도 됐고.”
정치외교와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올해부터 인권단체의 연구 인턴으로 참여하며 시야를 넓혀가는 제이크 김 씨는 2021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졸업과 함께 취업에 대한 계획에 마음이 바쁜 제이크 씨는 민간단체나 정부기관에 문을 두드려볼 계획입니다.
미국 내 탈북민들은 새해를 맞이하며 기대감에 부풀 때면 두고온 땅, 그리운 가족 생각에 마음 한 켠에 늘 미안함이 있습니다.코로나로 세계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의 형편은 더 힘들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매년 처가 식구들에게 돈을 보낸다는 제이크 씨는 중국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가슴을 졸입니다. 혹여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앞섭니다.
[녹취: 제이크 김] “탈북자로서 항상 어려운 상황이면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이 돼요. 항상 전화를 받을 때마다 부모님들이 나이가 들어가니까 죄스러움이 남아 있거든요. 전화 올 때 중국 핸드폰이 뜨면 심장 박동 수가 올라가요. 중국에서, 북한에서 오는구나 아니까, 그 순간이 굉장히 아주 긴장되는 순간이에요. 혹시나 나쁜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나 먼 타국에서 염려 밖에 할 수 없는 탈북민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 사람들이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갈렙 조 씨입니다.
[녹취: 갈렙 조] “빨리 상황이 좋아져서 생업에도 힘쓰기를 바라고요. 마음 속으로는 이 일을 통해서 더 화목한 가정이 되기를 바라고 있고요. 무엇보다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으니까, 희망을 놓지 않으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