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징계로 북한의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 출전에 제동이 걸리면서 올림픽을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미-북 관계의 돌파구로 활용하려던 한국 정부의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내년 2월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미국과 남북한이 한 자리에 모임으로써 남북관계는 물론 미-북 관계를 진전시킬 계기로 삼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임기 말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로선 교착 상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의 방향을 대화 국면으로 트는 최대 이벤트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북한이 2020 도쿄올림픽에 불참한 것을 이유로 내년 말까지 북한 올림픽위원회(NOC)의 자격을 정지하는 징계를 내리면서 북한이 국가 자격으로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돼 이런 구상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북한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현재까지 올림픽 출전권을 개인적으로 확보한 북한 선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정부는 일단 IOC의 해당 조치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9일 기자들에게 “IOC가 취한 조치 자체에 대해 정부가 논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남북 간 평화의 계기와 스포츠 교류의 계기를 찾아 나갈 방안을 계속 찾아보고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지난 2018년 평창올림픽을 교착 국면 돌파구로 삼았던 경험을 재현하려던 한국 정부의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시진핑 주석의 외교적 존재감 부각 차원에서 남북 대화 중재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중국이나 상황 전개에 따라 베이징올림픽을 중국과의 국경 봉쇄 완화나 대외 접촉의 신호탄으로 삼을 수 있는 북한에게도 악재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남북한이 참가할 경우 이를 계기로 시 주석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견인하는 모종의 정치 이벤트를 할 수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만일 북한 참가 배제가 확정된다면 중국의 역할,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차원의 어떤 플랜, 그 다음에 북한의 복안 등 모두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해 보이네요.”
하지만 북한이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하더라도 남북 또는 미-북관계에 별 영향을 주긴 힘들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과의 치열한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경우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베이징을 무대로 한 북한과의 만남은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미국의 입장에선 참여를 하더라도 정치적 주요 인사들은 참여를 완전 배제하고 선수들로만 구성해서 갈 가능성이 높죠. 그렇게 바라보는 입장인데 거기에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또는 중국 정부도 같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막힌 관계를 뚫기 위한 계기로 베이징올림픽을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안 갖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박 교수는 또 신종 코로나 유입에 극도로 민감한 북한으로선 IOC의 이번 조치가 아니더라도 베이징올림픽 참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국가 자격 출전 정지 조치가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IOC가 북한의 출전 정지 기간을 재고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덧붙인 때문입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북한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주최국 중국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올림픽 흥행 차원에서 북한 출전에 관심이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최근 보면 북-중 간 친선 우호협력 관계를 강조하잖아요. 물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면 전 세계적인 차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까 흥행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고 그런 가운데서 지금의 교착 상황을 어느 정도 물꼬를 틀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한다면 중국 입장에서 보면 아주 호재죠.”
IOC 결정에 북한이 어떤 태도로 나오느냐도 이번 조치의 변경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