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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9.11 테러


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잇따라 항공기가 돌진한 직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잇따라 항공기가 돌진한 직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전 세계를 충격과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던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지 올해로 20주년이 됩니다. 그로 인해 시작됐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군사 작전도 지난달 말로 공식 종료됐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고, 국제사회는 여전히 테러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미국에 대한 전대미문의 테러 공격이었던 9.11 사건과 파장 등을 짚어보겠습니다.

“악몽의 날”

2001년 9월 11일은 화요일이었습니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간 뉴욕의 하늘은 매우 청명했고, 새로운 하루를 맞은 뉴욕 시민들은 분주한 일상을 시작하며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뉴욕의 상징, 세계무역센터 건물도 여느 날처럼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었습니다. 110층 높이의 초고층 건물 두 동이 나란히 서 있어 흔히 쌍둥이 빌딩 ‘트윈 타워’라고 불리던 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전 8시 46분, 갑자기 비행기 한 대가 쌍둥이 빌딩 중 하나인 북쪽 건물 상층부를 들이받았습니다.

비행기가 건물을 들이받는 비현실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시뻘건 불길과 시커먼 연기가 건물에서 솟아오르고, CNN 등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은 일제히 생방송으로 현장을 중계하면서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7분 후, 또 다른 비행기 한 대가 이번에는 남쪽 건물을 들이받았습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9시 37분에 또 다른 비행기 한 대가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근교, 버지니아주에 있는 미 국방부 청사에 돌진했습니다.

뉴욕에서는 쌍둥이 건물 중 남쪽 건물이 공격을 당한지 한 시간도 채 못 돼 9시 50분, 그 거대한 건물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10시 3분에는 또 다른 여객기 한 대가 미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생크스빌 들판에 추락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10시 28분, 제일 먼저 테러를 당한 북쪽 건물도 핵폭탄급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내려앉았습니다.

불과 약 2시간 사이에 벌어진 사상 초유의 충격적인 사건에 미국은 공포와 충격,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여객기 공중납치와 무고한 희생”

테러범들이 사용한 수법은 민간 여객기를 공중에서 납치해 자살 테러를 감행하는 전대미문의 공격이었습니다.

테러범들이 이날 사용한 여객기는 모두 4대로, 미국의 국내선 여객기들이었습니다.

테러범들이 세계무역센터의 두 건물을 공격하는데 이용한 여객기는 ‘아메리칸 항공 11편’과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으로, 두 비행기 안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테러범들까지 150여 명이 전원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 국방부 청사에 돌진한 여객기는 ‘아메리칸 항공 77편’으로 역시 탑승자 64명 전원 사망했습니다.

마지막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 들판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도 테러범 포함 탑승자 44명이 모두 사망했는데요. 당시 테러범들은 서부로 향하던 여객기를 공중 납치해 워싱턴 D.C.로 기수를 돌렸지만 탑승객들이 테러범들과 사투를 벌이며 저항한 사실이 추후 알려졌습니다.

무고한 희생자는 여객기 4대의 탑승객만이 아니었습니다. 더 큰 희생은 거대한 고층 건물 안과 그 일대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건물과 함께 목숨을 잃은 사람들,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 속에 그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며 참혹한 죽음을 맞은 사람들, 한 생명이라고 더 살리기 위해 투입됐다 순직한 수많은 소방관과 경찰 등, 여객기 희생자들을 포함해 약 3천 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 선포”

당시 미국은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1월 백악관에 입성한 부시 대통령은 취임한 지 불과 9개월도 안 돼, 미국 역사상 최악의 안보 도전을 맞게 된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밤, 백악관 집무실에서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대국민 연설에 나섰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조지 W. 부시(오른쪽) 당시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초등학교 방문 도중 세계무역센터 피격을 보고받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조지 W. 부시(오른쪽) 당시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초등학교 방문 도중 세계무역센터 피격을 보고받고 있다.

침통하지만 차분하고 결연한 모습으로 국민 앞에 선 부시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악을 보았다”라며수천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사악하고 비열한 행위를 규탄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미국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테러를 감행한 세력을 끝까지 추적하고,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자들도 구분하지 않고 응징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또 미국과 우방, 동맹국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손잡고 테러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

미국은 9.11 테러의 배후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알카에다’를 지목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미군 기지와 미국 대사관, 미군 함정 등에 대한 테러 공격을 자행해왔습니다.

테러범들의 신원도 밝혀졌습니다. 여객기 넉 대에 나눠탔던 테러범들은 모두 19명으로 그가운데 15명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었습니다.

또한 테러범의 다수는 아프간 등지에서 알카에다가 운영한 군사 캠프에서 훈련을 받는 등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했던 것도드러났습니다.

미국 정부는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조직 ‘탈레반’에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빈 라덴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며, 또한 빈 라덴을 미국에 넘기는 것은 이슬람에 대한 모욕이라며 거부했습니다. 탈레반은 또 테러 시설들을 폐쇄하라는 요구도 묵살했습니다.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 라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 라덴.

이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 발생 약 한 달 후인 10월 7일, 영국, 독일, 캐나다, 호주 등의 지원을 받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 행동을 단행합니다.

동맹군의 목표는 오사마 빈 라덴 체포와 알카에다 등 테러 세력의 거점을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침공 두 달 만인 12월,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지만 대부분의 주요 인사들은 파키스탄 등지로 도주해버렸고, 오사마 빈 라덴 역시 체포하지 못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아프간 전쟁 10년 만인 2011년 파키스탄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사살됐습니다.

“9.11테러가 남긴 것들”

9.11테러 발생 1년 후, 미국 정부는 ‘국토안보부’라는 새로운 부처를 신설했습니다. 국토안보부는 국가 안보를 제1의 목적으로 두고, 테러로 인한 공격으로부터 재난재해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안전과 치안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9.11 테러 이후,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항공 안전이 크게 강화됐습니다. 9.11 테러를 통해 그동안 공항의 보안 검색과 신원 확인 등에 허술한 점이 많았던 것이 드러나면서 많은 나라들이 안전 규정을 새로 정비하고 문턱을 높였습니다.

이슬람교에 대한 보이지 않은 장벽과 공포심, 혐오 정서가 팽배해진 것도 9.11테러가 남긴 후유증입니다.

대부분의 이슬람권 국가들은 테러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규탄하며, 일부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반이슬람 정서가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리는 모양새입니다.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진 곳인 ‘그라운드 제로’에는 현재,붕괴된 북쪽 건물보다 더 높은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비롯해9.11 추모 기념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또 테러범들에 용감히 맞서 더 큰 희생을 막았던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이 추락한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에도 기념공원이 건립됐습니다.

2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9.11 테러로 미국의 경제는 일시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금방 다시 회복됐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신원 확인을 하지 못한 희생자가 40%에 달합니다.

또 당시 최악의 참사를 목격한 뉴욕 시민들은 물론 수많은 미국인이 테러의 공포와 불안, 우울증 등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레반 재집권”

오사마 빈 라덴 체포와 거점 파괴를 통해 다시는 미국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테러 공격을 자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시작했던 아프간 대테러 작전은 그러나 미국의 행정부가 4번이나 바뀌도록 끝나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미국과 동맹국은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거쳐 민간정부 출범까지 도왔지만, 아프간의 복잡한 내부 갈등과 부패, 탈레반의 득세와 계속되는 위협 등으로 좀처럼 발을 빼지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2017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아프간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애초 트럼프 행정부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3자 회담을 추진했지만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와 함께 대화하는 것을 거부하자, 탈레반과 먼저 협상에 나섰고 2020년 2월, 평화협정을 전격 체결했습니다.

미국은 2021년 5월까지 아프간 주둔 병력을 전면 철수하고 탈레반은 아프간이 테러의 온상지가 되지 않도록 하고, 아프간 정부와 직접 평화협상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협정이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월,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물러나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섰습니다. 4월, 바이든 대통령은 9.11 테러 20주년이 되는 9월 11일까지는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을 전원 철수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5월부터 병력 철수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 틈을 타 탈레반은 빠르게 영토를 넓혀갔고, 8월 15일 수도 카불까지 함락되면서 아프간은 다시 탈레반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민간인 공수 작전 중에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조직 ‘IS’가 테러 공격을 자행하는 등 중동에 다시 테러 위협이 고조되고,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장악하면서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9.11 테러 사건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등 테러 용의자 5인의 재판 절차는 20년 가까이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20주년을 맞은 9.11 테러 사건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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