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지난해 11월 개관한 미 국립육군박물관은 미국의 육군이 싸웠던 모든 전쟁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요, 여러 전시관 가운데 한국전쟁 전시관을 장양희 기자가 소개해 드립니다.
미 육군은 1775년 영국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 당시 대륙군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됐습니다.
미군 조직 가운데 245년이라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미 육군을 기리고 알리기 위한 미 국립육군박물관이 지난해 11월 미 동부 버지니아 주 포트 벨보아에 개관했습니다.
33만 m² 부지 위에 세워진 1만 7천187m² 규모의 박물관은 미 육군의 역사와 현재의 역할을 한 곳에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충분한 시설과 자료들을 갖췄습니다.
특히 미국의 독립전쟁과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2001 년 9.11 테러로 촉발된 아프간전쟁 등 미 육군의 주요 활동들을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박물관안에는 국가를 건설하고 방어하는 데 있어 육군의 중요한 역할을 설명하고 육군의 인도적 임무와 군대를 기반으로 한 기술 및 의료 혁신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수많은 유물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13개 주제의 공간으로 나뉜 육군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군인들의 시선으로 전쟁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전장에서 싸웠던 약 3천 300만 미군의 봉사와 희생을 기록으로 남겨 가치를 알리자는 취지입니다.
먼저 박물관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현관 안쪽의 탁트인 넓은 공간인 로비의 바닥에는 노란색 띠로 둘러싸인 원형의 육군 엠블렘, 즉 육군 문장이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로비에 서있기만해도 육군의 정신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육군 문장 중앙에는 날개를 편 독수리가 성조기 문양의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육군의 힘과 방어 의무를 상징합니다. 또 육군의 도구인 총검, 대포, 포탄과 박격포 등은 물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육군을 의미하는 북과 북채도 문장 안에 포함돼 있습니다.
로비와 연결된 ‘병사들의 이야기’에는 시대별로 공적을 세운 군인의 얼굴과 업적을 각각의 기념비로 세웠는데, 바로 이 박물관의 대표적 전시물입니다.
‘병사들의 이야기’를 지나 점차 어두워지는 전시관으로 들어서게 되면 미 육군의 역사와 군인들과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됩니다.
1607년부터 1835년 시기 미 육군의 활동을 전시한 ‘나라를 세우다’ 전시관을 시작해 ‘민족을 지키다’,’해외국가,’ ‘글로벌 전쟁’, ‘냉전’, ‘세상을 바꾸다’ 등 6개 주요 전시관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극장과 가상현실 체험관 등을 포함한 총 13개의 공간 중 가장 중요한 전시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도에서 다섯 번째 자리한 ‘냉전’ 전시실로 들어가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전시관이 좌우로 갈립니다.
한국전쟁 전시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첫 전시물은 중앙에 위치한 군용차 ‘지프’로, 한국전쟁을 위해 군용 지프를 생산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바로 그 옆에서는 3명의 한국전 참전 미 육군 장병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헨리 제이콥 상병, 조지 짐머 중위, 토마스 호너 중사의 사진과 기록 등을 보고 그들의 남긴 증언을 관람객이 전화 수화기로 들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1950년 3월 기초훈련을 받은 후 전투 의무병으로 입대했다는 제이콥 상병은 장진호 전투에서의 경험을 증언했습니다.
[녹취:헨리 제이콥 상병] “The Chinese started coming around all over the place. I heard an explosion behind me and something had whacked me real hard and blood started running down my back. I rolled over and I fell…”
중국 병사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폭발음이 들리던 순간 무엇인가 뒤에서 세게 때렸고 등을 타고 피가 흘렀다고 증언하는 제이콥 상병.
그는 당시20m 아래 지뢰밭으로 굴러 떨어졌고 미 해병대를 만나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헨리 제이콥 상병] “He said, don't move. You're on a minefield. Take one large step to your right, so the Marines took us in and they put us in a tent…”
30cm가량의 파편이 몸에 박혔고 당시 의무병도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는 증언입니다.
포병 장교였던 조지 짐머 중위는 사격 지휘소 야간 책임자로 근무하던 중 밤 9시에 전화벨이 울렸다고 증언합니다.
[녹취: 조지 짐머 중위]”I answered the phone to hear these words. The flak has started on. The words were almost obscured by the background sounds of large explosions, its message given the line went dead. It had been blown out. I switched to radio in an effort to reach the observation post. In a few moments, the voice of Second Lieutenant Joe Kleinfeld..”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대규모 폭발음 때문에 말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고 곧 바로 전화가 끊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상황 파악을 위해 무전기를 켰더니 조 클라인필드 중위가 수백 명의 적의 보병이 포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며 당시 급박한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조지 짐머 중위 ]”He described hundreds of enemy infantry spread out, running across the narrow valley toward the base of his hill. And though we dropped shell after Shell upon the attacker Joe said…”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목소리를 재현한 음성 파일 외에도 주요 사건들 속에 담긴 미 육군 병사들의 사진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집니다.
전시관의 왼쪽 벽에서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까지의 주요 사건을 육군 병사들의 사진과 함께 펼쳐놨습니다.
단장의 능선 전투가 벌어진1952년 8월 10일, 적으로부터 약 40m 떨어진 터널에서 작전 준비를 하고 있는 사진 속에는 빛이 새어들어오는 굴 속에서 총을 들고 땅 위를 바라보는 서너명의 미군 모습이 담겼습니다.
또 중공군에게 포로로 붙잡혔다 34개월간 수용소에 있었던 에드문드 릴 중령은 정전협정 직후 포로교환시 자유의 몸이 됐으며 군복무를 이어가다 1975년 27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사진에는 “우리 중 5명이 헛간으로 끌려가 머리를 얻어맞았다”는 증언이 적혔습니다.
정전협정이 이뤄진 뒤 고향으로 돌아온 미군이 가족과 재회하는 장면도 전시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전쟁의 주요 사건을 육군 장병들의 증언과 종군 기자들의 찍은 30여 장의 사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시관 다른 쪽에는 당시 미군이 사용했던 무기와 기기, 군복 등도 보입니다.
당시 미 언론의 뉴스 보도를 묶어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영상은 한국전쟁의 시작과 정전 협정까지를 내용으로 합니다.
[영상 다큐멘터리 녹취]
미한 동맹을 혈맹으로 만든 한국전쟁을 소개하는 미 육군박물관의 웹사이트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를 ‘잿더미에서’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냉전 기간 동안 수많은 국제적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유럽에서 잠재적 공격을 저지하는 방어선을 점령했고 미군이 한국과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였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한편 미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1950년 6월부터 약 38개월에 걸친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178만여 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그 가운데 3만6천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전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인한 사망자까지 더하면 5만4천명이 넘고 부상자는 10만여 명에 이릅니다.
VOA 뉴스 장양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