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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서 북한 인권 관심 낮아져…"코로나 등 현안, 중진 의원 부재, 구심점 약화"


미국 수도 워싱턴의 연방의사당.
미국 수도 워싱턴의 연방의사당.

미국 의회 내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관심이 과거보다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등 국내외 산적한 현안과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주도할 중진 의원의 부재, 의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압박하는 민간단체의 활동 감소 등을 주요 이유로 꼽았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2000년대 중반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프리덤하우스에서 북한 인권 담당관을 지낸 피터 리 변호사는 “요즘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미국 의회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워싱턴의 민간연구기관인 CRDF글로벌의 북한 비핵화 담당자로 일하는 이 변호사는 의회 세대교체와 함께 다른 주요 현안들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피터 리 변호사] “미국 상·하원에 세대교체가 일어난 것 같아요. 굉장히 큰 폭으로요. 비단 사람만 바뀐 게 아니라 기류 자체가 많이 변했고, 북한 인권 문제에 도덕적 목소리를 냈던 의원들이 많이 은퇴하셨고 낙선도 했고. 새로운 세대는 북한 인권에 관한 개념이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Black Lives Matter’와 성 수소자 관련 LGBTQ 등 국내 인권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높아졌고, 미-중 갈등 속에 시진핑 정부의 신장 위구르족 학살과 홍콩 민주화 탄압, 타이완 압박 등 눈에 확연히 보이는 사안들이 부각되면서 북한 인권 문제가 관심을 덜 받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지난 2004년 북한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뒤 미국 의회 내에서는 탈북민과 전문가들을 출석시킨 청문회, 관련 결의안 채택, 영화 시사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지속됐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거의 잠잠한 상황입니다.

사실상 전파를 제외한 모든 대북 정보 유입을 금지해 국제적으로 논란이 됐던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가 지난해 톰 랜토스 인권위에서 열린 것을 제외하면 북한 인권 문제는 지난 2018년 북한인권 재승인 법안 채택과 전문가 청문회 이후 의회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의회는 전통적으로 북한 인권에 관해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었다”며,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 등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Congress has traditionally been the most proactive branch of the US government on North Korean human rights…Coronavirus has created a lot of difficulties for human rights organizations. You deal with human being.”

코로나 발생 전에는 북한인권위원회를 비롯해 여러 인권단체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북한 인권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새 보고서 등을 공유했지만, 이후 접촉이 온라인 소통으로 바뀌어 접근이 매우 제한적이란 겁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과 온라인으로 대면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며,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공간이 과거보다 감소했다는 지적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주도할 중진 의원이 사실상 없다는 것도 관심을 덜 받는 이유로 지적됐습니다.

지난 2006년 5월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오른쪽)이 북한인권법에 따라 탈북자 6명이 처음으로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입국한 사실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브라운백 의원은 2004년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채택되도록 주도적인 노력을 기울였었다.
지난 2006년 5월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오른쪽)이 북한인권법에 따라 탈북자 6명이 처음으로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입국한 사실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브라운백 의원은 2004년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채택되도록 주도적인 노력을 기울였었다.

과거 상원에서 북한인권법안을 발의하고 탈북민들을 의회로 초청해 면담과 청문회를 주선했는가 하면 오바마 행정부 출범 초기에 북한인권특사를 지명하지 않으면 다른 고위직 인준 승인을 모두 보류하겠다고 버텨 로버트 킹 특사 지명을 이끌어 냈던 샘 브라운백 전 상원의원 같은 지도자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의회에는 브라운백 전 의원 말고도 평양을 방문한 뒤 인권 문제 개선을 적극 제기했던 톰 랜토스 전 하원 외교위원장, 북한 정권의 기독교 탄압과 탈북민 문제를 의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18선의 프랭크 울프 전 하원의원, 북한인권 재승인 법안을 주도한 쿠바 이민자 출신 일리아나 로스-레티넨 전 하원 외교위원장 등이 있었지만 모두 타계했거나 의회를 떠났습니다.

특히 하원 외교위원장 시절 한국 내 탈북민 인권운동가들과 영국 주재 북한 공사를 지낸 태영호 현 한국 국회의원을 워싱턴으로 초청해 청문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했던 에드 로이스 의원도 의회를 떠났고 그의 보좌관을 지낸 한국계 영 김 의원이 지난해 처음으로 의회에 입성했지만, 수십 년을 의회에서 보낸 중진들과는 무게감이 다르다는 지적입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하원 중진이자 ‘인권 챔피언’으로 불리는 크리스 스미스 의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상대로 북한인권특사 지명을 지속적으로 압박한 영 김 의원, 상원의 쿠바계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이 북한 인권에 관심이 갖고 있지만 과거처럼 의회 리더십이 훨씬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자유연합의 수전 숄티 의장도 의정 활동 42년째인 스미스 의원이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를 주도하는 등 존재감이 있지만 전 세계 모든 인권 분야에 관여하는 등 일이 너무 많은 게 걸림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숄티 의장] “He is got too much on his plate.he's got so many things.”

숄티 의장과 피터 리 변호사 등은 또 미국 내 북한 인권 운동의 대부로 불리며 미국 의회를 상대로 강력한 북한 인권 로비와 압박 활동을 폈던 손인식 목사가 지난 2020년 초 갑작스러운 낙상으로 타계한 것도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04년 북한의 자유를 위한 미주한인교회연합(KCC)를 공동 설립해 미국 의회가 북한인권법안과 북한어린이복지법안 등 인권 관련 법안과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미국 내 기독교인들과 매년 여름 미국 의회와 백악관 앞에서 횃불집회와 기도회를 주도하던 손 목사가 타계하면서 구심점을 잃었다는 겁니다.

손 목사가 타계 전까지 이끌었던 ‘그날까지 선교연합’(UTD-KCC)의 우성무 실장은 11일 VOA에, 손 목사 타계로 “예전처럼 활동이 왕성하지 못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코로나로 중단된 워싱턴 연례 집회를 재개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그러나 미국 의회에서 북한 인권에 관한 관심이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I wouldn't see this as declining interest in North Korea. It is just that there are other issues that have come to the fore and that are getting some immediate attention because of timing.”

코로나 여파에 따른 국내외 현안과 신장 위구르족 탄압 등 다른 사안들이 전면에 떠올라 시기적으로 즉각적인 관심을 받는 것이지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의회 내 관심은 여전하다는 겁니다.

킹 전 특사는 하원에서 영 김 의원과 뉴욕주 출신 그레이스 맹 의원 등 여러 의원이 북한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며, 이 사안은 지속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의회에서 계속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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