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유지됐던 경제적 자유와 민간 부문의 역할이 이후 남북한의 격차를 벌린 핵심 요인이라고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대 국제관계학 교수가 진단했습니다. 개방을 거부하고 지도부에 부가 집중되는 현 북한 체제로는 더 이상 한국과 경쟁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한국의 고도성장 배경을 분석한 책을 출간한 파체코 파르도 교수를 김영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이번에 ‘새우에서 고래로: 잊혀진 전쟁에서 K-팝으로 도약한 한국(Shrimp to Whale: South Korea from the Forgotten War to K-Pop)’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으셨는데요. 이 책을 쓰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파체코 파르도 교수) 한국 역사에 초점을 맞춘 책입니다. 1948년 정부 수립부터 올해 대통령 선거 때까지의 역사가 담겨있고요. 두 가지 주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우선 한국 관련 있는 책이 북한 관련 책보다 시중에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한국은 북한보다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경제적인 성공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인 성공에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두 번째 동기는 한국 역사의 모든 측면을 살펴볼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경제 발전이나 한류의 성장, 민주주의로의 전환 등 한 가지 영역에 집중하는 대신, 모든 것을 하나로 묶고 싶었습니다. 정치 혹은 재계 지도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한국 사회가 나라를 바꾸고 발전시키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보여준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기자) 한국과 한반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소개해 주시죠.
파체코 파르도 교수) 제 모국인 스페인과 한국이 꽤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 다 매우 가난한 나라였고 내전을 겪었죠. 스페인은 분단되진 않았지만요. 두 나라 모두 독재 정권을 거쳤고 억압적인 시기를 지나면서 경제 발전을 이뤘습니다. 이후 민주주의를 추진하면서 나라가 한층 더 발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스페인의 경우 1970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였다고 할 수 없지만 1980년까지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룹니다. 한국의 경우는 10년쯤 뒤에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1980년대까지 온전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지만 1990년대까지 경제적 발전을 빠르게 이뤄냈으니까요. 저는 나중에 서울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됐는데, 그때 두 나라 문화가 많이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두 나라 모두 사람들이 열정적이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기자) 책에서 북한에 대해선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파체코 파르도 교수) 북한의 건국과 한국전쟁, 이후 근래의 남북 정상회담까지 보여주면서 한국의 대북 정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담아보려고 했습니다. 북한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한국의 정치와 사회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또한 1960~70년대의 두 나라를 비교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때 일어난 일들이 1980년대 이후 두 나라가 걷게 되는 다른 길을 설명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한국과 북한이 정치와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세계인들에게 매우 다르게 인식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기자) 북한이 한국처럼 되지 못한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파체코 파르도 교수) 먼저, 북한의 정치적 탄압 수위 때문입니다. 한국도 독재정권 시절을 겪었지만 북한만큼의 탄압을 경험하진 않았습니다. 한국에는 경제적 자유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등을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이미 1960년대와 70년대에 있었습니다. 북한은 그런 적이 없었고요. 두 번째는 민간 부문의 역할입니다. 선진국에서도 보건이나 의료 등의 부문에선 분명히 국가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을 개발할 때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민간 기업입니다. 그들은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과 이윤 창출 방안을 고민합니다. 이를 통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것은 국가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국과 북한의 큰 차이점은 바로 이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북한이 현재의 정책을 고수하면 한국과의 경제적 격차는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파체코 파르도 교수) 북한이 국경을 열지 않으면 격차는 더 커질 겁니다. 한국은 국경을 열어 전 세계에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자국 경제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1960년부터 서서히 그렇게 해왔죠. 북한이 시장을 열지 않으면 한국과의 경쟁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 국민 모두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북한은 건국 이후 경제 성장의 혜택이 평양 바깥에 사는 주민들, 혹은 평양 안에서도 엘리트 계층이 아닌 사람들에게 얼마나 돌아갔을지 의문입니다.
기자) 북한이 국경을 열고 시장을 개방하게 할 현실적인 방법이 있습니까?
파체코 파르도 교수) 김정은은 경제 개방을 하면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고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독재국가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동유럽 국가들 경우에도 서유럽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들과 교류하면서 주민들의 인식에 큰 변화가 왔습니다. 저는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데 크게 실망했지만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게 만드는데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은 관여 정책이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생각은 남아있습니다. 북한을 강압적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다른 미래를 원한다면 외부 세계와 정상적으로 교류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설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북한에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온 것처럼 말이죠.
기자)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이유로 2년 넘게 국경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의 경제 상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파체코 파르도 교수) 이미 2년 전인 2020년 유럽 외교관들과 국제 구호단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우려에 따라 국경이 봉쇄되면서 북한을 떠나야 했을 때 상황이 심각하다고 이야기했죠.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작황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압니다. 지금은 전반적으로 더 나빠졌을 겁니다. 북한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2년 만에 코로나 발병을 처음으로 인정했는데, 실제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을 봤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새로운 변종은 아무리 노력해도 확산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북한 정권은 이제 이런 사실을 숨기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북한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대의 라몬 파체코 파르도 국제관계학 교수로부터 한반도 관련 새 저서와 남북한 체제의 구조적 차이점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김영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