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치범수용소를 다룬 애니매이션 ‘트루 노스’(True North)를 제작한 시미즈 에이지 한 감독은 믿기 어려운 북한 인권 유린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 전 세계인을 증인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재일 한국인4세인 시미즈 한 감독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으로 여겼다며, 이번 작품이 각국의 북한 인권 정책에 반영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안소영 기자가 시미즈 한 감독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먼저 영화 ‘트루 노스’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시미즈 한 감독) ’트루 노스’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낸 94분짜리 애니메이션입니다. 12년 동안 작품을 준비했고요. 탈북민 40여 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참여자 중에는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던 탈북민은 물론 수용소 간부 출신도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행해지는 강제 노역과 폭행, 잔혹한 북한 인권 탄압 실상을 그대로 그렸고요. 이런 어두운 환경 속에서 빛이 된 수감자들 간의 가족애와 인간애, 사랑, 연민, 우정 등도 담았습니다.
기자) 북한 인권 문제를 영화 소재로 삼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시미즈 한 감독) 그동안 저는 전 세계 인권 유린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티베트인에 대한 중국의 인권 유린, 팔레스타인 인권 문제를 다룬 만화책을 출판하기도 했는데요. 탈북민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최악의 인권 탄압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걸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북한의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국제사회, 단체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사실상 어떤 변화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고 만화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제 능력을 여기에 사용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기자) 제작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특이한 점은 어떤 게 있었나요?
시미즈 한 감독) 제작하는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번 프로젝트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도전이 있었다기보다는 제 인생에 소명이 생겼다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고 할까요? 북한 정치범수용소에는 12만 명이 수감돼 있는데요. 저는 언젠가 그들과 또 북한 인권 유린의 실상이라 할 수 있는 정치범수용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만약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겠다고 결심한다면 분명 ‘과거의 흔적’부터 지울 겁니다. 이전 전체주의 국가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이죠. 예를 들어 유엔 등 국제대표단의 조사 수용 결정 전에 인권 탄압의 증거가 될 모든 것을 없앨 겁니다. 수용소는 물론이고 수감된12만 명을 처형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뇌리에 박혀 마음이 급했습니다. 내가 만약 북한의 잔혹한 정치범수용소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지상 최악의 지옥에서 살아온 그들이 언젠가 하루아침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니까 ‘트루 노스’를 접한 전 세계인을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증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기자) 여러 포스터 중에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바라보는 한 소년의 뒷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셨어요?
시미즈 한 감독) 세로로 포스터를 보면 떠 있는 해를 배경으로 한 소년이 서서 날아가는 새를 바라봅니다. 그야말로 제 영화의 제목 ‘트루 노스’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캐나다 국가에도 ‘트루 노스’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죠. ‘진정한 북쪽의 강력함과 자유로움이여’라는 문구인데, 영화 주인공인 소년이 희망하는 북쪽의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또 이 같은 포스터를 가로로 눕히면 인공기가 나타납니다. 장벽 뒤에서는 실제로 믿기 어려운 고통이 자행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기자) 감독님은 재일 한국인 4세이십니다. 북한 하면 가장 먼저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시미즈 한 감독) 제게 북한은 그저 먼 나라와 같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읽은 탈북민의 책 한 권이 제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조부모와 함께 살던 서너 살쯤에 제가 말썽을 피우면 할머니께서 늘 그러셨어요. “그렇게 말 안 들으면 북한에 있는 산에 끌려간다”. 그 때는 북한이 어딘지도 모르니까 그저 “아, 이 세상 어딘가에 엄청 무섭고 나쁜 곳이 있구나.” 막연히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그러다 탈북민이 쓴 책을 통해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떠오르면서 “아 이게 내 소명이구나. 어린 시절 막연히 알던 ‘그 무서운 곳’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 내 일이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트루 노스’를 전 세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어야 할 텐데요. 미국에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나요?
시미즈 한 감독) 먼저 일본과 한국에서 개봉을 시작했고요. 타이완과 라틴 아메리카 몇 개 국가에서 상영할 예정입니다. 사실상 저는 이 작품을 전통적 방식의 상업적 상영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전략을 취하고 싶어요. 북한 인권에 앞장서 온 단체나 기구, 각국과 협력하려고 합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알리는 행사가 있다면 언제든 작품을 지원할 것이고요. 그런 측면에서 지난 15일에는 미 국무부에서 ‘트루 노스’를 상영하고 영화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습니다. 제겐 의미가 큽니다. ‘트루 노스’는 상업적 성공보다는 북한 인권에 대한 각국의 정책에 반영되고 사회적 반향이 있기를 희망하며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트루 노스’를 접한 관객들이 어떤 변화를 갖기를 바라십니까?
시미즈 한 감독) 이 영화를 접한 우리는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 줄 수 있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그런 희망입니다. 그 부분을 인지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도 각자의 인생에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데, 자신에 대한 연민과 인간성도 살펴보길 희망합니다.
기자) 혹시 북한을 소재로 한 다른 프로젝트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시미즈 한 감독) 북한과 관련해서는 ‘트루 노스’를 통해 사실상 할 수 있는 미디어 프로젝트로서의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다만 북한 인권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모두 지원할 계획입니다. 다음 프로젝트는 지구온난화에 관한 것이고요. 앞으로도 전 세계가 당면한 과제이자 시급하게 행동에 나서야 하는 주제를 탐색해 다룰 계획입니다. 제 자신과 주변인에게 의미를 주는 작품을 계속 만들어 나갈 겁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대북방송인 VOA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시미즈 한 감독) 저는 북한 주민을 그저 피해자, 바깥 세상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로 간주하면서 마치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보면 당황스럽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10여 년 동안 탈북민들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됐고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오히려 우리가 북한 주민에게 배울 많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정치범수용소에서 수감자들 간의 인간애 담긴 증언은 몇 날 밤잠을 설치게 했습니다. 저를 겸허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만나게 될 그날,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잔혹한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말이죠.
지금까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담은 애니메이션 ‘트루 노스’의 시미즈 에이지 한 감독으로부터 작품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어봤습니다.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