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전기차가 미국의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양측 간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미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미한 관계에 미칠 여파를 가늠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양측이 미한 자유무역협정 등 양자 차원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제정으로 인해 한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들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 문제가 미한 양국 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16일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은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40%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3천690억 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녹취: 조 바이든 대통령] “The Inflation Reduction Act invests $369 billion to take the most aggressive action ever — ever, ever, ever — in confronting the climate crisis and strengthening our economic — our energy security.”
특히 여기엔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춘 중고 전기차에 최대 4천 달러, 신차에 최대 7천500 달러의 세금 혜택을 주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다만 전기차가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지역에서 조립됐을 때만 이런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테슬라 등 미국산 전기차 21개 모델은 혜택을 받지만 유럽산 전기차를 비롯해 한국의 현대차와 기아차가 생산하는 전기차는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지 않는 한국 전기차 가격이 상대적으로 7천 500달러 오르는 셈이라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에 더해 내년부터는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과 부품도 각각 일정 비율 이상을 북미 지역 등에서 조달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한국 업체 입장에선 장벽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미국 전기차 전문 매체 ‘EV’ 등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1분기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테슬라가 75%로 1위, 이어 한국의 현대차가 9%로 2위를 기록했습니다.
1, 2위 점유율 격차가 크지만 현대차 등이 미국 시장에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 한국 측에 미치는 파급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 정부도 이 문제를 미국과의 관계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로 여기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들에 따르면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25일 “해당 법은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차와 수입차에 대해 보조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는 WTO 협정, 한-미 FTA 등 국제 통상규범 위배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유럽연합(EU)·일본 등 비슷한 입장의 나라들과 보조를 맞춰 대응하는 방안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현재 방한 중인 미국 국무부의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차관보에도 이 문제를 제기한다는 방침입니다.
한국 산업계에서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충격적’이라는 반응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KITA) 워싱턴 지부 관계자는 25일 VOA에 "한국 기업들이 지난 십여 년간 미국에 투자를 많이 했다"면서 “충격적이고 아쉬움이 크다”는 업계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특히 이번 법제화가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과 ‘기술 동맹’, ‘공급망 협력’ 등을 강조하고 한국 기업들이 최근 대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상황에서 나온 점을 지적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 "솔직히 현대에서 지금 투자 발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게다가 사실은 저희가 FTA도 체결했고 동맹이란 말 수도 없이 써왔고요. 그런데 이제 멕시코랑 캐나다는 분명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 측면이 있는데 저희는 이제 딱 그런 데서 배제되고 고려가 안 돼서 그 부분에 있어서는 진짜 좀 실망감이 큰 것 같아요."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당시, 미 조지아주에 65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장 등을 설립한다는 계획에 이어 50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100억 달러 이상을 미국 제조업에 투자한 데 대해 감사하다면서 “미국은 현대차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한 바 있습니다.
[녹취: 조 바이든 대통령/지난 5월] “It's great to be here to announce more than $10 billion and new investment in American manufacturing. The Chairman Jung, thank you again for choosing the United States. We will not let you down.”
또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한 동맹이 ‘한반도를 넘어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확대됐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첨단 반도체, 친환경 전기차용 배터리, 인공지능, 양자기술, 바이오기술, 바이오제조, 자율 로봇을 포함한 핵심·신흥 기술을 보호하고 진흥하기 위한 민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워싱턴 민간연구소인 미국외교협회의 스콧 스나이더 미한정책 국장은 이번 문제가 “미한 관계에 특별한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여러 방법들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결과를 예측하기엔 시기상조”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미한정책 국장] “I actually have not seen any specifics implication for the relationships. I think there are multiple avenues through which there will be an effort to address this, and it's premature to try to predict an outcome. It's going to require some time to settle interpretation, you know, this is a really it's such a new area, I think it's not surprising at all that there would be difficulties or challenges or unanticipated impacts”
이 문제가 새로운 영역인 만큼 입법 이후 구체적인 해석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며, 법 제정 이후엔 어려움이나 예상치 못한 여파들이 있기 마련이라는 설명입니다.
스나이더 국장은 그러면서 “이 법은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는 외교 전략적 과제와 해당 법안의 취지가 조화를 이루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번 문제가 미한동맹에서 ‘기술, 경제’ 분야의 중요성을 반증하고 있으며, 미한이 강조한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을 넘어 민간 분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고 언급했습니다.
전직 외교관 등 다수의 미한관계 전문가들은 이 사안과 관련한 VOA의 질문에 “이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면서도 이제 막 입법이 이뤄진 만큼 그 여파를 진단하기엔 다소 이르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워싱턴 민간연구소 헤리티지 재단의 앤서니 김 연구원은 이번 문제가 불거진 시점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실용적인 통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계와 협의 절차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제경제와 통상 전문가인 김 연구원은 특히 한미 FTA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데 있어 가장 진솔하고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한 틀이며, WTO 등 다자 채널을 통한 것보다 더욱 직접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앤서니 김 헤리티지재단 연구원] “The most practical vehicle and venue to attempt to resolve the issue would be in the context of the KORUS FTA framework/consultation process. In my view, that’s where most candid and real discussions on how to address the matter can take place. Obviously trying to deal with the issue bilaterally thought the KORUS FTA would be more direct than through a multilateral channel like the WTO.”
김 연구원은 관련 논의가 미한 양자 간 제도화된 협정을 통해 가속화할 수 있다며, 내년부터 관련 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만큼 해법을 모색할 기회가 여전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미국과 한국이 동맹이고 기술과 미래산업 협력 등에서 같이 갈 것이라면 이런 ‘불이익’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면서 “이미 법제화된 만큼 순식간에 바꿀 순 없지만 명분을 갖고 수정할 수 있도록 양측에서 논의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