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 당국이 사회통제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장마당 세대를 겨냥해 남한식 말투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도 만들었습니다. 북한이 왜 사상통제를 강화하는지, 단속과 처벌로 이를 막을 수 있는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은 올 들어 1월에 이어 2월에도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사회통제를 강화하는 법령을 채택했습니다.
지난달 17-1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비규범적인 언어 요소들을 배격하고 평양문화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나갈 데 대한 조선노동당의 구상과 의도를 철저히 실현하는 데서..”
북한은 또 지난 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어 ‘국가비밀보호법’을 채택했습니다.
다만 북한 당국은 어떤 비밀을 유출할 경우 처벌받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이미 남한의 한류와 문화, 종교,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을 단속, 처벌하는 법이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2020년 12월 ‘반동사상 문화배격법’을 만든 데 이어 이듬해인 2021년에는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남한의 노래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경우 5-10년의 노동교화형에 처하고, 남한 드라마를 유포시키는 사람은 무기노동이나 사형 등에 처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3년만에 또다시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한 것은 그 동안의 단속과 처벌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얘기라고 북한 전문가인 미 해군분석센터 켄 고스 국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Ban outside influence of course South Korean language, culture…”
북한 당국이 잇달아 한류를 단속하는 법을 만든 것은 그만큼 남한 말투가 북한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지난 2021년 북한 당국이 남편을 ‘오빠’, 남자친구를 ‘남친’, 그리고 ‘쪽 팔린다’(창피하다)같은 남한식 말투와 호칭을 단속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탈북민들은 한국의 노래와 드라마 등 `한류’가 북한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2000년대부터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노래와 드라마는 특히 북한의 20-30대 젊은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졌습니다.
함경북도 라진에 살다가 2014년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 윤설미 씨가 유튜브에서 자신이 북한에 있을 때 본 한국 드라마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녹취: 윤설미] ”저는 중학교 때부터 대한민국 드라마를 봤는데, 처음으로 본 것은 ‘가을동화’였습니다. ‘가을동화’ ‘천국의 계단’,’장군의 아들’, ‘올인’, 1990년대 후반에 유명했던 드라마인데...”
실제로 북한 주민 10명 중 9명 이상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북한인권단체인 ‘국민통일방송’(UMG)과 ‘데일리NK’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북한 주민 외부정보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 주민 50명 중 49명(98%)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얼마나 자주 보냐는 질문에는 ‘매주 1번 이상’이 28%, ‘매달 1번 이상’은 46%였습니다. 4명 중 3명 꼴로 월 1회 이상 한국 영상을 본다는 겁니다.
한국 드라마의 경우 ‘사랑의 불시착’이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고, ‘펜트하우스’와 ‘오징어 게임,’ 영화 ‘기생충’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또 ‘한국 드라마를 본 뒤 달라진 점’으로는 응답자의 79.2%가 ‘한국사회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현재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 50명을 전화로 인터뷰한 결과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한류가 확산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매체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북한의 TV 드라마와 노래는 체제선전을 목적으로 100%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뛰어난 노래나 드라마와 경쟁할 수가 없다고 켄 고스 국장은 말했습니다.
[녹취:켄 고스 국장] ”Their cinema, TV is very boring very dry.”
북한은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건군절 75주년을 맞아 대규모 열병식을 가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인 이날 10여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방사포, 탱크, 자주포 등을 공개하며 군사력을 과시했습니다.
광장에 나온 평양 시민들은 인공기와 꽃술을 흔들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진짜 민심은 다르다고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함경남도 함흥에 살다가 2001년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 박광일 씨입니다.
[녹취: 탈북민 박광일씨] ”그건 일상화된 거에요. 평양시민 10만명이 동원됐다면 시민 중에 그거(미사일)에 긍지를 가진 사람은 1만 명도 안 될 겁니다.”
북한이 최근 주민통제와 사회기강 확립에 안간힘을 쓰면서 검찰의 역할도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지난달 17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중앙검찰소의 사업 내용 보고와 대책 토의, 그리고 법적 감시 강화 방안 등이 논의됐습니다.
북한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한류 단속같은 ‘사상통제’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식량난이 심해지자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상대로 ‘애국미 헌납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관영매체인 `노동신문’과 TV는 ‘애국미 헌납운동’을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은 ‘애국미 운동’이 말이 헌납이지 사실상 강제라고 말합니다.
평안남도 평성에서 농업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11년 한국에 입국한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탈북민 조충희] “정말 못 살고 부족한 사람 빼고는 눈치 봐서 한 킬로 씩이라도 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한 두끼 굶어가면서도 하다 못해 강냉이 500그램, 한 킬로 이렇게라도 그런 운동이 벌어지면 안 내고 못 배겨요. 그런 거 하면 이름 쭉 써 놓고 도표 그려놓고 많이 낸 사람은 도표가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 있고 적게 낸 사람은 바닥에 있고, 그것 보고 그래도 적당히 중간 수준이라도 맞추려고 그래요.”
북한 주민 중에서도 돈이 없는 저소득층은 상당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북한전문 매체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2월 3일 옥수수(강냉이) 가격은 kg당 3천200원입니다. 1년 전인 지난해 1월만 해도 2천200원이었던 것이 불과 1년만에 45%나 오른 것입니다.
옥수수는 북한 서민들의 주요 식량입니다. 북한 노동자의 월급이 3천원인 것을 감안하면 월급을 받아도 옥수수 1kg도 살 수 없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6년째, 그리고 북중 국경봉쇄가 3년째 계속되면서 북한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경제는 식량난과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고, 장마당은 돌지 않고, 젊은 세대들은 노동당 대신 남한의 한류와 말투를 따라하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수뇌부가 언제까지 통제와 처벌로 북한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