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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지은 옥스퍼드대 교수]  “한글, 한류의 중심…‘국가 브랜딩’ 최적”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언어학과 번역학을 가르치는 조지은 교수.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언어학과 번역학을 가르치는 조지은 교수.

한류 문화의 중심에 한글이 있으며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유럽의 전문가가 말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언어학과 번역학을 가르치는 한국계 조지은 교수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한글이 한류를 타고 글로벌한 소통 언어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세계적인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한국어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인 조 교수는 이런 현상이 한국의 국가 브랜딩에도 일조하고 있다며 북한도 한류를 자산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가 어제부터 보내드리고 있는 한류 열풍 진단,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김영권 기자가 조지은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최근 세계 5억 명 인구가 외국어 공부를 위해 사용하는 ‘듀오링고(Duolingo)’ 앱에서 한국어가 7위에 올라섰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영국 등 유럽에서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어떤가요?

조 교수) 말씀하신 것처럼 ‘듀오링고’ 얘기도 많이 나오고 세종학당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 세종학당만 해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제가 최근 한글학회에 ‘한글의 꿈’이란 글을 썼습니다. 한글이 이제는 한류의 중심에 있을 것이란 얘깁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죠. 옛날에는 교포들이 많았는데, 헤리티지 러너(heritage learner)라고 하죠. 그런데 제가 이번에 호주에 가서 보니까 비교포가 더 많더라고요.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는 한국어가 교포 문화 중심의 한국어였다면 지금은 비교포들이나 K팝 등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2021년에 K팝 관련 트위터 건수만 78억 건이나 됩니다.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거죠.

기자) 외국어인 한국어를 유럽인들이 배우기가 쉬울까요?

조 교수) 처음에는 단어에 관심을 보이고요. 그다음에 언어 공부를 하는데 ‘듀오링고’처럼 팬덤 러너(fandom learner)라고 합니다. 이 팸덤 러너의 중심에 한국어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도 그렇지만 영어권 사람들이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일이에요. 그런데 한류는 굉장히 새로운 언어 공부, 언어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Fandom language learning, 그러니까 스스로 동기를 부여(self-motivated)해서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고 그것은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일입니다.

기자) 자신의 전공이나 특정 목적보다 스스로 흥미를 갖고 자기 의지로 공부한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조 교수)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K팝보다도 드라마가 굉장히 K-문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는 자막을 통해서 정보를 받지만 계속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언어를 공부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우리도 그렇게 영어 공부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해서 언어 친숙도가 높아졌어요. 드라마를 보는 것 자체가 이미 embodied learning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어 공부를 한다는 느낌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은 아닌데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배우는 거죠. 단어 픽업도 많이 하고요.

기자) 예를 들면 어떤 상황을 들 수 있을까요?

조 교수) 예를 들면 제가 전에 ‘오징어 게임’을 가지고 번역 워크숍을 했었는데 190명 정도가 온라인으로 왔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오징어 게임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되고 그 드라마를 다 시청한 뒤 자기도 모르게 배우는 단어들이 매우 많았어요. 예를 들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남은 단어가 ‘깐부’같은 단어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인데도 그렇게 단어로 기억에 남아있는 게 굉장히 많아요. 또 음식 단어나 비주얼한 이미지의 단어가 많습니다. 언어 학습자들은 자기가 뭔가 표현할 수 있는 기본 단어가 늘어나면 그 언어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어 있어요. 드라마 한 편을 끝까지 보는 자체가 언어 공부를 부지불식 가운데 하는 거죠.

지난해 9월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의 '한류' 전시관.
지난해 9월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의 '한류' 전시관.

기자) 그런 방법이 언어학적으로도 효율성이 입증됐나요?

조 교수) 그렇죠. 언어학자들이 말할 때 가장 언어습득에 효과가 높은 것은 부지불식간에, 그러니까 다른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K-뷰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어 공부를 하니까 가장 좋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self-motivated 된 거라서. 이제 드라마와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 때문에 한국어가 계속 길을 같이 갈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OED(옥스퍼드 영어사전)가 2년 전에 한류 단어 26개를 넣었지만 사실은 26개 정도가 아니에요. 100개도 넣을 수 있어요. 글로벌 인지도가 정말 높아서요.

기자) 그런데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은 왜 작년에는 한류 단어를 추가하지 않았나요?

조 교수) OED 자체에서 계속 넣을 수도 있는데. 조금 형평성 때문에 다 넣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다른 언어권도 넣어 줘야 하잖아요. 지금 현 상황에서 한국 문화만큼 글로벌한 단어 생산이 높은 문화권이 없어요. 한국만 있어요.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영어권 사람들도, OED 사람들도 이건 무슨 현상이지? 하고 놀라는 상황입니다.

기자) 그러면 아예 한국어 단어는 제외한 것인가요?

조 교수) 작년에는 없는 게 아니고요. OED는 draft(초안)를 항상 만듭니다. 그 draft에는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런데 한꺼번에 발표할 것인지 해마다 발표할 것인지는 OED가 자체적으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없지만 없는 게 아니고요. 다루는 것은 굉장히 많아요. 한국어만 매년 하면 좀 형평성에 문제가 있으니까. 그러나 OED가 결정하면 다른 영어사전에 다 들어가고 다른 언어권에도 다 들어가요. 굉장히 임팩트가 높죠.

기자) 옥스퍼드대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계시는데,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 반응은 어떤가요?

조 교수) 한류의 중심에 한글이 있다고 제가 그랬는데 사실 한글이 굉장히 배우기가 쉽고요. 알파벳 숫자가 작아서 몇 개 안 돼서. 또 한글을 가지고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별로 없거든요. 세계의 언어가 다 로마자에 의지하는데 로마자는 음성(phonetic) 알파벳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불안정하고 변형이 많아요. 그래서 제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한글의 문자 시스템이 세계 언어인 영어하고 더불어서 우리가 소통의 플랫폼을 만드는 중요한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거예요. 왜냐하면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배우기가 쉬운 것이고 특히 우리가 다 알다시피 문자 수가 얼마 안 되는데 한글로 나타내기 어려운 소리가 별로 없어요. 거기다가 한류나 이것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이제 이 한글을 갖고 한류를 유지할 때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기자) 기고하신 글을 보면 ‘된장’이나 ‘삼겹살’ 같은 단어를 과거처럼 영어로 풀어 쓰는 게 아니라 발음 그대로 번역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데, 한글이 한류를 타고 세계어로 진화한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조 교수) 한글은 접근성이 좋고 쉽고 몇 개 안 되고 그리고 그걸로 나타낼 수 있는 소리 가능성이 무한하고 그래서 제가 ‘한글의 꿈’이라고 해서 한글이 영어하고 더불어서 글로벌한 소통의 그런 플랫폼으로 쓰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알파벳이라고 기고를 통해 썼던 것입니다.

기자) 이런 것이 어떤 긍정적 영향이 있을까요?

조 교수) 그것은 정말 국가브랜드 중에 가장 좋은 거죠. 그냥 일반적 문화 현상이라면, BTS 하나로 한류가 끝나는 것이라면 너무 생명력이 짧잖아요. 그런데 한글은 콘텐츠를 지탱할 수 있는 자산이기 때문에 굉장히 오래갈 수 있어요. 지속가능성이 높아요. 이것을 통해서 국가 브랜딩하기에 굉장히 좋죠. 한류와 한글 자체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국가 브랜딩하기에 최고로 좋은 자산 같아요. 지금이 가장 좋을 때인 것 같아요. 제가 이것에 대해서 책을 두 권 쓰고 있는데, 자세하게 책에서 설명하고 있어요. 사실 한류 자체가 한국에서 온 것만은 아니거든요. 한류의 실제 생산자와 소비자는 한류를 가지고 와서 소비하는 글로벌한 Beyond Korea. 한국보다 커요. 그렇지만 이게 이렇게 발전을 하면 한국의 국가브랜드에는 너무 좋은 거죠. 지금이 그렇잖아요. 모든 게 K만 붙으면 브랜딩 효과가 굉장히 좋잖아요.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고 생각해요.

기자) 북한도 한글을 쓰기 때문에 한국처럼 한류가 자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 교수) 세종대왕이 한글을 남한에만 주려고 만든 건 아니잖아요. 한글을 쓰고 있는 한국어 화자가 남한도 있고 북한도 있고 또 재일교포들도 있고 고려말도 있고 연변말도 있고 매우 많거든요. 한국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딱 하나가 아니고 한국어 자체가 굉장히 국제화되어서. 요즘 영어를 World English라고 해서 글로벌한 언어로 보잖아요. 한국어도 그렇게 변이가 많은 큰 언어가 되고 있거든요. 사실 그래서 어떤 한국어를 쓰든지 그게 북한 언어든지, 남한 언어든지 문화어든지 표준어든지 간에 이 한류가 정말 어떻게 보면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넘어서 이렇게 붐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을 다 잘 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디에 있든지요. 그래서 굉장히 독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또 그 한류 자체가 남한의 문화라기보다는 한국의 그런 문화가 글로벌 세팅에서 이렇게 새롭게 재탄생하고 재해석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자산을 서로 같이 만들어가고 즐기고 혜택을 잘 자기화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최근 여러 법 제정을 통해 한류를 더 차단하고 처벌하는 것을 보면 북한 지도부는 그런 국제적인 시각으로 한류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다.

조 교수) 네, 좀 안타까운 것은 북한도 이렇게 한류를 뭔가 자산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류가 남한의 한류는 아니거든요. 저는 한류가 Korean-inspired 된 팝 문화이고 그게 국제화되어서 생산자와 주체는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 글로벌 시민들, 특히 소셜미디어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면 북한에서 특히 독점적인 남한의 문화라고 한류를 단정 짓는 것은 자신들한테 좋은 게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지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로부터 최근 한류와 한글 배우기 열풍에 관한 유럽 내 반응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김영권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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