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배경의 탈북 청년들이 워싱턴에 모여 북한의 변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새바람을 주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과 한국에 있는 탈북 청년들이 결성한 ‘젊은 탈북민 지도자 총회’가 지난 10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12일까지 백악관, 국무부, 의회, 싱크탱크 등을 방문해 당국자와 관계자들을 면담하고 13일에는 뉴욕으로 이동해 주유엔 미국과 한국 대사를 만날 예정입니다.
10명으로 구성된 탈북 청년들은 국제관계, 법률, 건축, 정보기술(IT), 영화예술, 언론, 정치,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일하는 청년들로 11일 VOA에 북한 변화의 새바람을 주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 총회 모임을 주도한 이현승 글로벌피스재단 연구원은 각자 전문 분야에서 역할을 하는 탈북 청년들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번 총회를 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연구원] “과거에는 북한 인권이나 북한 문제에 대해 탈북민들이 오셔서 이야기만을 전달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 우리 경험을 얘기하고 건설적 제안을 하기 위해서, 또 이 기회를 통해 우리가 단결하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길을 찾고자 처음으로 모이게 됐습니다.”
참가자들은 특히 북한 인권과 민주화 운동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릴 때가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밖에서 충분히 고등 교육을 받고 국제 감각을 익힌 젊은 탈북민들이 국제사회와 더 원활하게 소통하며 효과적인 대북 정책을 펼치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3월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발언해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던 이서현 씨입니다
[녹취: 이서현 씨] “과거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어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면 우리 젊은 세대는 지식과 경험, 해법을 국제사회에 제시하고 그들의 말하는 방식과 방법을 통해 더 큰 국제 변화를 일으키는데 주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적 메시지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의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낸 뒤 작가로 활동 중인 조경일 피스아고라 대표는 탈북 1세대의 기여를 존중한다면서도 “이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조경일 대표] “우리는 동시대의 청년들과 함께 같은 교육 과정에서 같은 경험과 같은 문화적 자산을 형성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문제 해결 방식과 선택 과정, 풀어나가는 해법이 기존의 운동에 치중했던 어른 세대와 굉장히 다릅니다. 그래서 이제는 청년들이 새로운 당사자, 새 목소리, 새 행동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탈북민 1세대가 북한의 끔찍한 인권 상황을 폭로하며 관심을 호소했다면 이제 충분한 근거와 국제 규범, 역사적 사례들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며 국제사회를 설득할 때라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또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나온 일부 운동가들의 과장과 왜곡에 대한 우려도 청년들이 함께하면서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 뉴욕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김미연 씨와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에서 이주민 변호 활동 등을 하는 임철 변호사입니다.
[녹취: 김미연 씨] “자극적이고 교육받지 못하고 미개하고 가난하고 이런 부분만 강조되다 보니까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탈북민은 오히려 피해를 받습니다.
[녹취: 임철 변호사] “너무 한쪽에 치우쳐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이렇게 모이는 이유는 솔직히 한 명 한 명이 나가서 얘기할 수도 있죠. 그렇게 되면 개인의 경험으로 한정이 되고요. 개인이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심이 개입되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좀 지금까지 왜곡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모이기로 선택한 겁니다. 같이 모이면 덜 왜곡되니까요.”
임 변호사는 “청년들은 북한의 독재를 경험하고 한국과 미국에서 자유와 법치도 경험했다”며 “청년들이 함께 경험을 공유할 때 좀 더 좋은 방향으로 해결책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건축설계사로 활동하는 남송 씨는 이를 “다양성의 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비판하거나 갈라서는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역량이 탈북 청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녹취: 남송 씨] “저희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다들 의견이 다른 거예요. 근데 의견이 달라서 어! 당신하고 안 맞네가 아니고 우리가 이래서 모였네. 다들 똑같은 목적을 갖고 얘기하는데 서로 의견이 다르다 보니 방향이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거기서 저희가 모인 이유를 찾았고요. 단순히 저희 청년의 장점, 강점이 아니라 다양한 청년들의 강점이 될 것 같습니다.”
영화제작자로 활동 중인 조의성 씨는 탈북 청년들이 인권운동을 직업으로 삼았던 1세대와 차별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의성 씨] “인권 활동이 하나의 직업으로서 활동가로서 한 측면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우리 모두가 전문성을 가지고, 물론 발전 과정에 있지만.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고 또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갈급함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우리가 모이게 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가능성 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의 후원이나 그것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북한인권 혹은 북한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그런 희망을 갖고 있고요.”
‘젊은 탈북민 지도자 총회’는 또 모임을 통해 탈북 청년들의 역량을 스스로 점검하고 북한의 변화를 위해 어떤 공부와 노력이 더 필요한지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통역의 도움 없이 바로 자신의 의견을 영어로 말하고 질문에 즉답하는 역량도 갖추고 있다며 미 관리들을 만나서도 자신들의 견해를 나눴다고 말했습니다.
이서현 씨는 전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을 만나 1시간 30여 분 동안 의견을 나눴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이서현 씨] “제재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내러티브는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왜 제재를 받습니까? 김정은이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핵과 미사일을 계속 개발하고 지역과 국제 안보를 위협하기 때문에 제재를 받는 것이다, 결국 북한 주민들을 고통에 빠트리는 것은 김정은 독재자라는 사실, 이 메시지가 전 세계에 올바로 알려져야 하고 우리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정책도 그렇고 시민사회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단합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탈북 청년들은 또 이런 활동 자체가 북한 관리와 주민 모두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철 변호사는 탈북 청년들이 자유와 기회의 땅에 와서 열심히 공부해 꿈을 이루고 북한 주민들을 대변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철 변호사] “그분들에게 정말 일종의 자극제가 될 것 같아요. 정말 저런 사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저희를 보고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 사회를 보고 고민하는 분들이 분명히 계시고요. 이 사회를 어떻게 발전시킬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텐데 그들이 저희를 보고 좀 더 동기 부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어렵게 생활하는 분들, 자식들의 미래에 걱정이 많은 분들은 저희를 보고 사회가 빨리 바뀌는 것을 소망하고 적극적으로 탈북도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탈북민 정착지원단체인 ‘우리온’의 박대현 대표는 워싱턴이 세계 정치의 중심지란 사실뿐 아니라 많은 미국인이 북한의 열악한 인도적 상황과 탈북 난민들의 곤경을 외면하지 않고 도왔다는 점을 주목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힘과 온정이 함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감사와 기대감을 갖고 워싱턴에서 행사를 처음 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밖에 북한 김책공대 출신으로 북한의 해외 파견 IT 요원으로 활동하다 미국에 입국한 해리 김 씨,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도 ‘젊은 탈북민 지도자 총회’에 참여했습니다.
탈북 청년들은 이 모임이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