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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국제 만델라의 날’ 맞아 북한에 “모든 수감자 인권 존중 촉구”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만델라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자료사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만델라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자료사진)

유엔이 제정한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을 맞아 유엔 인권기구와 국제 앰네스티가 북한 당국에 모든 수감자의 인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수감자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을 명시한 ‘만델라 규칙’의 준수를 강조했는데, 일각에선 북한이 조금이나마 수감자 처우를 개선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역경과 희생, 전투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투쟁은 제 삶입니다. 저는 생이 다하는 날까지 자유를 위해 계속 싸울 것입니다. ( Only through hardship, sacrifice and militant action can freedom be won. The struggle is my life. I will continue fighting for freedom until the end of my days.”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 높은 흑인 인종 차별정책에 맞서 투쟁했던 만델라 전 대통령이 지난 1961년 언론 성명을 통해 강조한 말입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이런 불의에 대한 투쟁 때문에 27년의 긴 세월을 독방 등 감옥에서 보냈지만 대통령이 된 뒤 보복이 아닌 용서와 화해 등을 강조해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1994년 세계가 주목한 그의 대통령 취임식 연설에서 “우리는 민족 화해와 국가 건설,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위해 단합된 국민으로서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만델라 전 대통령] “We must therefore act together as a united people, for national reconciliation, for nation building, for the birth of a new world.”

유엔은 이러한 만델라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자유와 평화를 위한 그의 행동을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그의 생일인 7월 18일을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로 지정해 2010년부터 해마다 기념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올해 기념일을 맞아 “무너뜨리고 파괴하긴 쉽다. 영웅은 평화를 만들고 구축하는 사람들이다(It is easy to break down and destroy. The heroes are those who make peace and build)”란 만델라 전 대통령의 명언을 홈페이지에 올리며 그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특히 성명을 통해 만델라 전 대통령은 “용기와 신념의 거장”이었다며 그가 행동으로 남긴 유업을 계승하자고 강조했습니다.

[구테흐스 총장] “Nelson Mandela was a colossus of courage and conviction….Action to expel the poison of racism, discrimination and hate; Action to extinguish the legacies of colonialism; And action to promote equality, human rights and above all, justice.”

“인종주의, 차별, 혐오라는 독을 없애기 위한 행동; 식민주의의 유산을 소멸시키기 위한 행동; 평등과 인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의를 증진하기 위한 행동”으로 만델라의 업적을 기리자는 것입니다.

앞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난해에도 국제 만델라의 날 영상 성명을 통해 “넬슨 만델라는 지역사회의 치유자이자 여러 세대에 걸친 멘토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구테흐스 총장] “Nelson Mandela was a healer of communities and a mentor to generations. He remains a moral compass and reference to us all.”

유엔 인권기구는 17일 VOA에 보낸 성명을 통해 유엔이 2015년 채택한 ‘만델라 규칙(The Mandela Rules)’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북한 정부가 이 규칙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만델라 규칙’은 유엔총회가 지난 2015년 기존의 ‘수감자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유엔 기준 규칙’을 재정비해 채택한 포괄적인 국제인권규범입니다.

제임스 히난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장은 성명에서 “만델라 규칙은 모든 국가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수감자 처우의 기본 또는 최소 기준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나타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규칙의 첫 장이 모든 수감자는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존엄성과 가치에 따라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히난 소장] “The Mandela Rules represent the international consensus on what are the basis or minimum standards for the treatment of prisoners which should be applied in every country. The first rule makes it clear that "[a]ll prisoners shall be treated with the respect due to their inherent dignity and value as human beings.”

히난 소장은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러한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유엔 인권기구는 “북한 내 구금자들에 대한 기준 이하의 처우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보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러한 인권 침해에는 일상적인 고문과 학대, 모욕적인 신체 수색, 사회 계층(성분)에 따른 차별적 대우, 의료 서비스 접근성 부족, 식량 부족, 가족과의 광범위한 연락 부재 등이 포함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히난 소장] “These human rights violations include routine torture and ill-treatment, degrading body searches, differential treatment based on social class, a lack of access to health care, a lack of access to food and a widespread failure to provide contact with family. These violations go to the core of the fundamental approach of the Mandela Rules that prisoners must be treated with respect for their inherent dignity and value as human beings, that torture or other ill-treatment is prohibited; that prisoners should be treated according to their needs, without discrimination; and that the purpose of prison is to protect society and reduce reoffending.”

아울러 북한의 이러한 위반은 “수감자는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아야 하며, 고문이나 다른 부당한 처우는 금지되고, 수감자는 차별 없이 필요에 따라 대우받아야 하며, 감옥의 목적은 사회를 보호하고 재범을 줄이는 데 있다는 만델라 규칙의 기본 접근 방식의 핵심에 위배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수용소 감독원 출신 탈북자가 그린 그림을 유엔 관계자가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 수용소 감독원 출신 탈북자가 그린 그림을 유엔 관계자가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유엔총회는 앞서 2021년과 지난해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에서 북한 정부에 “정치범 수용소(관리소)를 즉각 폐쇄하고 모든 정치범을 지체 없이 무조건 석방해야 한다”면서 만델라 규칙 등 국제 규범의 준수를 촉구했었습니다.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 “To immediately close the political prison camps and to release all political prisoners unconditionally and without any delay, and to immediately conduct a comprehensive review of conditions in detention facilities and take steps to ensure that conditions in those facilities are in compliance with relevant obligations and commitments relating to the humane treatment of persons in detention, as outlined in the relevant provisions of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and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as well as the United Nations Standard Minimum Rules for the Treatment of Prisoners (the Nelson Mandela Rules),”

결의는 특히 “구금 시설의 상황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해당 시설의 상황이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관련 조항과 ‘수감자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유엔 기준 규칙’ (넬슨 만델라 규칙)’에 명시된 대로 구금자의 인도적 대우와 관련된 의무와 약속을 준수하도록 조처해야 한다”고 권고했었습니다.

나다 알나시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대표 역시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 구두 보고를 통해 정치범 등 수감자의 인권 피해 등을 언급하며 “피해자들은 정의에 대한 권리와 완전하고 적절한 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알나시프 부대표] “Victims have the right to justice and to full and adequate reparations. The human rights of the people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must not be forgotten.”.

히난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장은 이런 수감자 처우 문제에 대해 거듭 우려를 나타내며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북한에 있는 모든 사람, 특히 심각한 인권 침해에 가장 취약한 수감자들의 인권을 존중할 것을 북한 정부에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히난 소장] “OHCHR again calls on DPRK to respect the human rights of all in DPRK, but particularly those in detention who are among the most vulnerable to serious violations. We call on the Government to ratify the UN Convention Against Torture, to open its places of detention to independent monitors and increase cooperation with the UN Human Rights Office to bring the detention system into line with international standards.”

또 “우리는 북한 정부가 유엔 고문방지협약을 비준하고, 독립적인 감시자들에게 구금 장소들을 개방하며, 구금 시스템을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유엔 인권 사무소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국제 비정부기구들도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을 맞아 북한 내 구금시설에서 이뤄지는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과거 유엔의 새 만델라 규칙 채택 운동을 주도했던 국제앰네스티는 17일 VOA에 “만델라 규칙이 채택된 이후에도 여전히 북한의 구금시설에서는 이에 반하는 각종 인권 침해가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자행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제기한 북한 구금시설 내 인권 문제에 대해 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인권 개선 압박으로 북한이 일부 개선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의 최재훈 북한인권담당관은 “북한의 구금시설 내 구타, 고문을 포함한 인권 침해 발생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그 정도가 다소 감소한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최재훈 담당관] “특히, 구류장과 같은 일부 구금시설에서 과거 1990년대나 2000년대에 비해 2010년대 중, 후반에는 구타나 고문의 정도가 덜하거나, 또는 거의 경험하지 않았다고 많은 이들이 증언했습니다. 또한 최근 구금시설 관계자들이 피구금자의 인권을 의식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다수의 탈북자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최 담당관은 이는 최근 탈북한 북한 주민 수십 명을 직접 인터뷰해 얻은 결과라며 “대다수 북한 주민이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알지 못했던 2010년대 초 이전의 상황과 비교해 봤을 때 이는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부 보고서도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통일부는 올해 첫 공개 발간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수감 환경은 매우 열악한 상황”, “가혹행위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면서도 일부 개선 징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과거에는 구류·구속 처분된 사람의 경우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숙인 채로 이동해야 했지만2017년 전후로는 수감자에게 머리만 살짝 숙이고 이동하도록 했고 조사 중 ‘족쇄(수갑)’도 채우지 않았으며 폭행도 다소 줄었다는 진술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2017년쯤 하달된 방침에 따라 과제나 계획을 못 해도 처벌하지 말 것, 구타와 몰아주기(왕따)를 하지 말라는 진술도 탈북민들을 통해 나왔다고 통일부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탈북민 2만여 명의 증언을 기록해 온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윤여상 소장도 17일 VOA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북한의 수감자 처우에 분명히 변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 소장은 북한은 여전히 수감 시설과 수감자 대우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정도로 갈 길이 멀다면서도 최근 탈북민들의 진술을 들어 보면 “북한이 개선 노력을 하는 것은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인권단체들과 활동가들은 북한이 조금이나마 이러한 개선을 시도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 국제사회의 흐름이나 압박을 의식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의 최재훈 담당관은 북한의 변화 징후가 ‘만델라 규칙’의 등장과 연관이 있는지는 파악된 게 없다면서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최재훈 담당관] “그럼에도 우리는 큰 틀에서 만델라 규칙 채택과 같은 수감자의 인권 존중을 위한 새로운 국제적 흐름이 북한의 수감자 처우에 관한 정책에도 무시 못 할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물론 여전히 상당수 구금시설에서는 피구금자를 대상으로 한 구타, 고문, 기타 잔인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지금도 수감된 최소 수만 명에서 십 수만 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회로부터 영원히 ‘잊힌’ 사람들에 대한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는 북한이 만델라 규칙을 준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여전히 낮음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탈북민 출신으로 영국 의회에 근무하며 인권 운동가로도 활동 중인 티머시 조 씨는 17일 VOA에 수감자 개선 징후가 사실이라면 긍정적 변화라며 국제사회가 더욱 인권 압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티머시 조 씨] “(사실이라면) 단연히 좋은 소식이고요. 그나마 조금이나마 사람 대접을 받는 환경으로 개선된다면 좋잖아요.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청신호가 될 수 있고 국제 압박으로 북한에 계속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단계적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 꽃제비 시절 중국에서 체포돼 중국 감옥과 북한의 열악한 구금 시설을 모두 경험했던 조 씨는 영국의 한 구치소를 방문한 뒤 깜짝 놀랐다며, 북한 당국도 수감자들의 최소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티머시 조 씨] “영국 윔블던에 위치한 구치소 안을 들어가 보니까 사람들이 면회하는 것이 다 나와서 수감자와 가족 사이에 얘기를 나눌 공간이 다 마련돼 있고. 인권이란 단어 자체가 쉽게 표현되고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딱 보였어요. 그때 (북한의) 수감시설과 비교되더라고요.”

하지만 북한 내 구금시설의 환경 변화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북한인권 조사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이영환 대표는 최근 몇 년 동안 탈북민 규모가 급감했기 때문에 소수의 진술로 사실 여부를 파악하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영환 대표] “2016년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기록센터가 생긴 이래로는 통일부가 인터뷰한 7년간 데이터가 가장 방대하지만 그런 변화를 짚어볼 만큼 조사의 질이나 분석을 제대로 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또 NGO들은 기록센터 설립 이후부터 2010년대 중반 이후 수감시설을 경험한 탈북민 인터뷰 자체가 크게 줄다 보니 최근 7년간 변화 여부를 소수의 진술로 해석할 소지도 있습니다.”

아울러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초기 3~4년간 구타가 준 것 같다는 진술은 “김정은의 은덕으로 선전하거나 민심 얻기 정도일 수 있다”며 “이런 조치가 한시적인지 유지되고 있는지는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성명에서 “감옥에 들어가 봐야 그 나라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한 나라를 판단하는 기준은 상류층 국민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국민을 대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만델라 전 대통령의 명언을 강조하며 북한 정부에 개선 노력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정상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평양의 거리에서 치러지는 화려한 행사와 핵무기를 자랑하는 것보다 자국의 구금시설에 대한 인권 실상을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해 이에 대한 책임 인정과 함께 인간 존엄성이 존중되는 수준으로 수감자 처우를 즉시 개선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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