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민간 차원에서 외국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한 협상을 벌여온 미키 버그먼 글로벌 리치(Global Reach) 최고 경영자(CEO)가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송환된 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에 대해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일’이라고 회고했습니다. 버그먼 CEO는 VOA 유라시아 디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웜비어 석방을 위해 18개월 간 비공식 협상을 맡았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비영리기구 글로벌 리치의 전신인 리처드슨 센터 포 인게이지먼트에서 활동하며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와 함께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한 협상에 다수 참여해온 버그먼 CEO와의 인터뷰를 이조은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글로벌 리치는 요즘 얼마나 많은 사례를 다루고 있으며, 관여는 어떻게 시작하나요?
버그먼 CEO) 우리는 가족이 연락해서 요청할 때만 사건을 맡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한 번에 6~7건의 사건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그 숫자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에서 여러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사건도 다루고 있습니다.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가자 지구에서만 67가구의 가족들과 직접적으로 일했습니다. 그 숫자는 줄었는데 일부는 집으로 돌아왔고, 일부는 안타깝게도 사망했습니다.
기자) 정부가 아닌 비공식 채널을 통해 민간 단체나 기업, 개인 등이 참여해 전통적 외교로 해결하기 어려운 국제 문제를 다루는 활동을 소위 ‘프린지 외교’(fringe diplomacy)라고 하는데요, 왜 존재하는 것인가요?
버그먼 CEO) 저는 이를 정부 및 국제 관계의 권한과 임무를 넘어서는 영역으로 정의합니다. 우리 상대 대부분은 미국과 외교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는 국가들입니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나 베네수엘라 같은 정부와 교류하거나 또는 간접적으로 이란과 같은 정부와 협상할 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러시아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경우 비록 포로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 하더라도 곧바로 우크라이나 문제나 핵 안정성, 세계 질서 등의 문제가 개입됩니다. 포로 문제를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협상에 나서면 우리에게는 그것을 완수할 의무만이 있을 뿐입니다. 상대가 정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정책에 대한 권한이 없기 때문에 경청할 뿐입니다. 그것이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이죠. 이는 우리가 인도주의적 문제와 포로 문제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합니다.
기자) 북한, 미얀마, 러시아, 베네수엘라의 정권과도 관여하셨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십니까?
버그먼 CEO) 그런 일들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아니죠.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무죄인 사람을 죄가 있는 사람과 교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때로는 무고한 미국인을 송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곳이나 지도자들을 찾아가서 "당신들이 잘못된 사람을 잡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는 원하는 사람을 돌려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으로 돌아와서 북한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설명한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며, 우리가 하는 행동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자) 가장 어려웠던 사건은 무엇인가요?
버그먼 CEO) 제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 중 하나는 오토 웜비어와 북한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로 북한까지 갔었는데요.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 없이 진행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북한은 리처드슨 전 주지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그 일을 주도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웜비어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왔을 때, 항공기로 옮겨졌을 때 우리는 그가 혼수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18개월의 협상 기간 동안 저는 그가 그런 상태인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의 북한 측 협상 상대, 그러니까 북한 외무성의 부상급까지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저는 웜비어가 집으로 돌아와서 아직 살아 있었을 때, 오하이오주로 그를 만나러 갔는데요. 저와 웜비어, 그리고 (웜비어의 어머니) 신디, 이렇게 셋이 함께 방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웜비어 어머니에게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웜비어 어머니는 저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신의 노력 덕분에 아직 온기가 있는 내 아들을 안아볼 수 있었다"라고요. 아마도 제 경력에서 가장 어렵고 정신적으로도 가장 힘든 사건이었습니다.
기자) 미국 정부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국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간 단체 등의 이런 노력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요, 아니면 성가신 존재로 보나요?
버그먼 CEO) 사건을 막 시작할 때, 납치범들은 저희 같은 상대가 관여하길 원하진 않습니다. 미국 정부로부터 무언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죠. 미 정부도 저희가 관여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정부의 전략을 망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양측 중 그 누구도 대표하지 않습니다. 저는 가족을 대표합니다.
아웃트로: 지금까지 글로벌 리치의 미키 버그먼 CEO로부터 미국인 석방을 위한 노력과 웜비어 석방 협상과 관련한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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