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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탈북 고아들을 위한 전쟁 고아 한상만의 기적 이야기 (3)


행사 공연팀과 함께 한 한상만 씨
행사 공연팀과 함께 한 한상만 씨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힘. 흔히 그 힘의 원천을 달러-머니와 군사력에서 찾지만 미국을 잘 아는 일부 사람들은 기부와 자원봉사를 미국의 첫 번째 힘으로 꼽기도 합니다. 9년째 암과 투병 중이면서도 북한의 보육원에 식량과 의료품을 지원하고 탈북 고아 입양 법안을 위한 청원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한인 한상만 씨 역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활동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보내드리고 있는 6.25 전쟁 고아 출신 한상만 한 슈나이더 국제어린이 재단 대표의 기적과 감동의 이야기. 오늘 마지막 편으로 한 슈나이더 재단의 활동과 한상만 대표의 열정적인 삶에 관해 전해드립니다. 김영권 기자입니다.

지난 8월 27일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한 교회. 3백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래와 음악, 춤 등이 어우러진 신명 나는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13개 팀 수십 명이 펼치는 공연의 내용은 각각 달랐지만 주제는 하나였습니다. 바로 절망에 빠진 북한 고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자는 겁니다.

행사는 모두 한 슈나이더 국제어린이 재단의 자원봉사자들이 두 달에 걸쳐 준비했습니다. 1백 명이 넘는 한인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을 이끌고 있는 유빈 장 씨는 학생들이 봉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합니다.

“주로 자기네가 너무 럭키한데 그 한 핏줄인 형제자매가 어떻게 그렇게 살고 있는지. 북한은 그저 나쁜 곳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거기도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감사할 줄 알고 이 봉사를 통해 얻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알고 또 없는 사람들에 대해 배려하는 것도 많이 배우게 되구요.”

이 날은 한상만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 재단 대표에겐 매우 특별한 날입니다. 바로 독신남인 아더 슈나이더 박사가 자신을 입양하기 위해 청원했던 특별법안이 50년 전 8월 30일 미 의회에서 기적적으로 통과됐기 때문입니다.

한 대표는 자원봉사자들이 뜻 깊은 날을 맞아 이런 배려까지 해 줄 줄은 몰랐다며 무척 감격해 했습니다.

“참 너무 고맙구 이렇게 준비하느라고 유빈 선생과 자원봉사자 인턴들이 청원서 사인 받고 코스폰서쉽 지지 서한을 보내는 것도 큰 일이고 대단한 건데 거기다가 또 이런 행사를 두 달에 걸쳐 준비했다는 게 너무 고마우네요. 너무 감격스러워요.”

한 슈나이더 국제어린이 재단은 현재 북한의 평성과 사리원에 있는 보육원에 연간 10만 달러어치가 넘는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미 의회에 계류 중인 탈북 고아 입양 법안의 통과를 위해 미 시민들의 청원서를 받고 의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서한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상만 대표는 대부분의 활동이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Hi, Chelsea. How are you?…”

인터뷰 도중에도 자원봉사자들의 전화벨은 계속 울려댑니다. 자원봉사자 중에서도 특히 열심인 첼시 림 양. 한상만 대표는 첼시 양이 교내에 아예 북한 동아리를 만들고 지역 언론에 탈북 고아들을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기고문을 쓰는 등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며 대견해 했습니다.

첼시 림 양은 암과 투병하면서도 탈북 고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한상만 씨의 삶이 어린 자신에게 큰 감동을 줬다고 말합니다.

“I think that is so inspirational and just seeing Mr. han. he is…”

전쟁 고아로서 고난을 극복하고 어려운 처지의 북한 고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한 씨의 열정이 매우 놀랍고 자신에게 큰 도전을 줬다는 겁니다.

자원봉사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10살의 체이스 진 군.

“After finding how much these North Korean children are suffering…”

이날 행사의 첫 출연자로 나선 체이스 진 군은 한 슈나이더 재단 봉사를 통해 희망과 감사의 의미를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자기와 나이가 같거나 어린 탈북 고아들이 자신과는 달리 자유와 사랑 대신 고통을 겪는다는 현실에 놀랐지만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는 겁니다.

한상만 씨는 이런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마음씨. Heart… 지금 어린 나이인데도 그런 마음씨를 쓴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워요.”

첼시 림 양 등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은 지역사회와 교회를 돌아다니며 탈북 고아 입양을 지지하는 5만 명의 서명을 받았고, 법안 지지를 호소하는 4천 장의 서한을 의원들에게 발송했습니다.

이런 기여 때문에 한 슈나이더 국제어린이 재단 자원봉사자 학생들은 올해 바락 오바마 대통령 자원봉사상을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운동이 암초에 걸릴 때도 많습니다. 북한 정권과 주민들을 동일시하는 일부 한인들의 편견에 부딪힐 때가 있고, 또 대북 인도적 단체들도 지원 요청을 냉담하게 거부했다고 합니다.

탈북 고아들을 위해 일하면서 때때로 욕을 먹고 어려움을 겪을 때 한상만 씨에게 가장 큰 위로가 돼 준 사람들은 역시 가족이었습니다.

“What has he given backed what has he contributed back to society…”

아버지가 받은 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고 헌신하는 모습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큰 딸 로미 씨. 한상만 씨에겐 늘 든든한 버팀목이자 최고의 후원자입니다. 부인 한민자 씨는 남편의 기적을 지켜보는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합니다.

“매일매일 이런 일을 함으로서 보람을 느끼고 비전을 갖고 사시니까 너무 행복하시고 그러는 것을 보니까… 감사를 드립니다.”

1995년 첫 방북 이후 13년 만인 2008년에 다시 찾은 북한의 보육원. 한상만 씨는 하나도 변한 게 없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곳에서 자신과 꼭 붙어 있으려던 한 아이를 떠올렸습니다.

“그 아이가 나만 보더라구요. 이렇게. 그러니까 마음이 가더라구요 그 꼬마한테. 그러니까 걔를 안을 수 밖에. 한참 안고 보니까 기저귀가 이상해. 딱딱하고. 한 2살 정도 됐나 잘 먹지 못해 힘이 없구. 그래서 그 아이를 놓자마자 바지를 벗겨 봤다구요. 그랬더니 두꺼운 상자 박스종이를 안으로 해서 했더라구.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파요. 야… 미국 들어가자 마자 기저귀를 보내야겠구나…”

세상에 이렇게 불쌍한 고아들이 어디 있나. 한상만 씨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북한 방문 직후 찾아간 한국 육지의 최남단이라는 전라남도 해남의 한 고아원. 그는 너무나 판이한 남북한의 고아원 현실에 가슴을 쳤다고 말합니다.

“내가 얼마나 참 슬펐는지 (울먹이며) 그걸 보고 우리 아이들하고는 천지 차이에요. 얘네들은 잘 먹어서 안의 시설도 좋고. 뭐 음악, 바이올린, 피아노 배우는 아이들… 고아들인데 60 몇 명인데. 그거 보고 내가 (울음) 너무… 얘들이 너무 잘 생기고 안에도 냉장고가 몇 개 씩 되고. 한국 고아원은 야 대단하데요. 어떻게 정말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다를 수 있나. 굶주려서 정말 죽어가고 있는데…”

한상만 씨는 결국 북한에 식량과 의료품만 전달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자신처럼 북한 고아들도 미국으로 입양하는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 미 정치권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얘들이 무슨 죄가 있고 고통과 굶주림 어려움 속에서 있나. 그 아이들을 좀 프리로 미국에 오게 해서 그 아이들이 나 같이 정말 좋은 가정에 가서 훌륭하게 되면 얼마나 좋은 일이 아닐 수 없겠냐고…”

2010년 우여곡절 끝에 상정된 법안은 그러나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채 폐기됐습니다. 하지만 한 씨는 자신이 걸어온 기적의 길을 믿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North Korean adoption Act of 2011. 이 법안이 통과되어 정말 아이들이 올 수 있다면 그제야 전 편안히 천국에 갈 거에요.”

법안은 올해 미 상원과 하원에 다시 상정됐습니다. 탈북 고아들의 입양을 모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9월 5일 현재 하원의원 25명이 공동 지지의사를 밝혀 통과 가능성에 점차 파란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한상만 씨는 기적을 믿고 있습니다. 6.25 전쟁 고아로 쓰레기를 뒤질 때 만났던 가난한 소작농, 12살 냉혹한 세상의 벽에 부딪혀 자포자기 했을 때 천사처럼 나타나 자신을 입양해 준 슈나이더 박사. 그리고 골수암 말기 환자로 소망을 잃었을 때 인생의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고 9년 째 버티며 삶으로 기적을 써나가는 그의 인생.

“한 어린 영혼이라도 구제시키고 구원시키는 게 제 소망이니까. 이런 일을 하니까 내가 사는 거고 마음이 편하고 내가 정말 즐기고 나의 매일 매일의 하나의 어드벤쳐이고 기쁨입니다.”

한상만 한 슈나이더 국제어린이 재단 대표. 그에게 인생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인생이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의 소리 김영권입니다.

진행자) 9년째 골수암과 투병 중이면서도 북한의 고아들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상만 한 슈나이더 국제어린이 재단 대표의 감동과 기적의 이야기. 오늘 세 번째 이야기를 끝으로 모두 마칩니다. 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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