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미국 정부가 최근, 코로나 백신의 지식재산권 유예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가진 백신 개발 기술을 개방해,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 종식을 앞당기자는 목적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를 중점 보도해온 언론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에린 브로드윈(Erin Brodwin) 보건기술 전문기자를 초대했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브로드윈) 네! 저는 에린 브로드윈입니다. 보건기술(Health Tech) 전문기자이고요. 생명과학 전문 매체인 ‘스탯(STAT)’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년 정도 됐네요. 전에는 ‘비즈니스 인사이더’ 같은 주요 매체에서 일했습니다. 뉴욕에 있는 크레이그뉴마크(Craig Newmark) 언론대학원에서 ‘보건과 과학 보도’를 전공했고요. 전체적인 기자 경력은 십여 년 정도입니다.
기자) ‘보건’과 ‘기술’은 언뜻 보기에 관련성이 없을 것 같은데, 이 두 단어를 연결한 ‘보건기술’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브로드윈) 두 가지가 아주 밀접한 관계입니다. 인류를 질병에서 구제하고 더 오래 살게 하는 ‘보건’, 그걸 향상하는 수단이 ‘기술’이니까요. 최근에는 특히 보건과 기술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에서 백신을 개발하고 치료 약을 만드는 것도 ‘생명 과학’, 즉 기술의 영역이잖아요. 미국 주식 시장에서 시가총액 규모 상위 회사들을 찾아보면, 생명 과학 기업들이 많습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어요. 이렇게 ‘보건기술’이라는 산업 분야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미국이고요. 이 분야를 다루는 기자 중에서는 제가 아마 선구자 축에 들 겁니다.
기자) 생명 과학이나 기술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청취자분들을 위해, 최근 보도한 것 중에 중요한 몇 가지 소개해주시죠.
브로드윈) 아, 그거 좋은 질문이네요. ‘중요하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뽑을 수 있는 기사가 달라집니다. 기자로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그리고 ‘대중에 영향력이 컸던 것’, 이렇게 두 가지가 제가 중요한 기사를 꼽는 기준입니다. 그 기준에 따르면, 한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얼마 전 한 신생(start-up) 기업이 사람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획기적인 기구를 개발했다고 해서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어요. 그 기구를 사용하면 어려운 질병도 집에서 손쉽게 알아낼 수 있고, 처치 과정도 안내해준다고 홍보했죠. 보험 처리도 된다고 했고요. 그런데 제가 장기간 탐사 취재를 한 결과,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았어요. 그래서 여러 차례 기사를 썼고, 결국 모든 게 사기(scam)로 판명 났습니다.
기자) 해당 기업은 어떻게 됐습니까?
브로드윈) 보도 이후, FBI(연방수사국) 요원들이 해당 기업 본사를 급습했습니다. 본사가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있었는데요. 기술기업들이 몰려있는 ‘실리콘 밸리’ 근처입니다. 이 지역은 미국의 첨단 기술 산업을 이끌어나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일부 기업들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역량을 과장하거나, 허위 정보를 유통하는 일도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언론의 감시가 특별히 필요해요. 이 사건을 제가 발굴한 것은 감춰진 진실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고요, 거기에 돈을 넣을 피해자 발생을 막았다는 점에서 보람도 남달랐습니다.
기자) 사기 행위를 밝혀내는 취재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하신 건가요?
브로드윈) 그 회사에 몸담았다가 떠난, 전직 관계자를 한 서른 명 정도 인터뷰했어요. 물어물어 사람을 찾아다녔습니다. 기업 측이 홍보하는 내용을 실제로 구현할 원천 기술을 확보했는지 일일이 질문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만에, 진실을 실토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어요. 이 문제를 꼭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다 보니, 결실을 보게 되더라고요.
기자)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기억에 남는 보도 활동 한 가지만 더 소개해 주신다면 뭔가요?
브로드윈) 음… 얼마 전 인공지능(AI)에 관한 기사를 쓴 게 기억에 남습니다. ‘임상 의사 결정 지원 도구(clinical decision support tool)’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환자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의료진이 판단하는 과정을 돕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환자의 생체 신호를 분석한 뒤, 방대한 문헌 자료에 근거해 단 몇 초 만에 최적의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기기거든요. 그런데 이게 편리해서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대로’ 의료진이 환자를 처치하는 게 과연 옳은지, 이런 윤리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에요. 현행 법규상, 이런 기기를 사용하는 데 환자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거든요. 이 부분을 지적하는 기사를 동료와 함께 썼는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기자) 재미있는 소재를 많이 다루셨는데, 만일 브로드윈 기자가 태어나기 전,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하나 취재할 수 있다면 어떤 걸 하고 싶은가요?
브로드윈) ‘1918년 팬데믹’ 시점으로 가서 현장 취재해보고 싶습니다. 당시 ‘스페인 독감’이 발병해,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이 희생됐잖아요. 지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인종적ㆍ지역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현상에 저는 주목하고 있어요. 대응과 처치가 잘 되는 집단이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집단이 있잖아요. 1918년 당시에는 지금과 어떤 게 같았고, 어떤 게 달랐는지 짚어보면, 코로나 팬데믹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언론인으로서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자) 코로나 팬데믹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는 국제적 노력을 위해, 백신 지식재산권 유예를 지지한다고 미국 정부가 밝혔습니다. 보건기술 전문기자로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브로드윈) 일단, 미국 정부가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부터 추적 보도해온 사안인데요. 논란이 많았습니다. 개발사들이 애써 만들어 놓은 것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대의를 위해 미국이 지도국가로서 판단한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식재산권 유예가 실현되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을 거예요. 우선,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 영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반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국 제약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예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가 남는데요. 특허를 개방한다고 해서 당장 똑같은 백신을 만들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식재산권 보호 범위에 들어가지 않은 기술들을 백신 개발에 썼는데, 다른 업체들이 알아내기 어려운 내용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WTO 논의 과정에서 기술 공개 범위를 함께 다뤄야 하는데요. 공방이 끊이지 않을 겁니다.
기자) 그런데 백신 특허를 섣불리 풀면, 중국 업체들이 이득을 취할 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지식재산권 절취 행위를 여러 차례 지적한 바도 있고요. 어떻게 보십니까?
브로드윈) 흠…, 그 문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중국이 기술 분야 전반에서 중요한 경쟁자로 떠오른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부정행위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것도 분명하고요. 그런데 중국과의 관계를 다루는 것은 정치ㆍ외교 전문 기자의 영역이라, 제가 답변드릴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다만 기술 분야 전반의 경쟁에 관해서만 말씀드리자면, 흔히 ‘스템(STEM)’이라고 부르는 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에 투자를 늘리겠다고 바이든 행정부가 밝혔잖아요. 그런 방향으로 계속 노력하면, 첨단 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의 위치가 미래에도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겁니다.
기자) 아까 1918년 팬데믹을 취재해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일어난 일은 ‘스페인 독감’이라고 부르는데, 이번 팬데믹은 특정 국가 이름을 붙이지 못하도록 합니다. 어떤 차이가 있나요?
브로드윈) 1918년 팬데믹은 근원지가 스페인으로 특정된 게 아니었어요. 언론 자유에 관련된 문제인데요. 당시 1차 세계대전 무렵이라,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관련 보도를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상대적으로 보도가 자유로웠어요. 그래서 스페인에서 관련 소식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은 겁니다. 어떤 감염병이 발발했을 때, 그 근원의 지역명을 갖다 붙이는 것은, 해당 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에서 옳지 않다고 판단한 지 오래됐습니다.
기자) 지금까지 언론 경력에서 ‘최고의 순간’, 가장 좋았던 일은 뭔가요?
브로드윈) 글쎄요, ‘최고의 순간’이라기 보다는, 최근 약 2년 동안이 기자 경력에서 가장 좋았어요. 지금처럼 성취감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바로 코로나 팬데믹 때문인데요. 보건기술 전문기자로서 언론계 이곳저곳에서 저를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 취재할 소재들도 많고요.
기자) 보건기술 전문기자로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오는 동안, 여성이라서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은 없었나요?
브로드윈) 정말 중요한 질문 해주셨습니다. 보건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나, 과학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 중에 여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그들이 원래는 의사가 되고 싶었거나, 과학자가 되길 원하다가 꿈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의료와 과학 현장에서 남성 지배적인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언저리로 밀려난 것이라고 할까요? 해당 분야에 뛰어들려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제 동료 여성 언론인 가운데서도 많습니다.
기자) 의료계와 과학계 내부에서 여성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인가요?
브로드윈) 그렇습니다. ‘2021년, 요즘 세상에 그게 무슨 이야기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는데요. 의료계와 과학계 모두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유명하거나 영향력 있는 의사, 또는 과학자 가운데 여성을 몇 명이나 떠올리실 수 있나요? 아무래도 남성이 쉽게 생각나죠? 아직도 해당 분야들이 남성 지배적이라는 증거입니다. 미국에서 역량 있는 여성 의료인과 과학자들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완전한 ‘양성평등’으로 가기는 멀었다고 생각해요.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브로드윈) 제 경험만으로 점수를 매기기는 좀 어렵네요. 음…, 제가 외국 생활을 좀 해봤는데요. 언론 자유도가 미국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미국의 사정이 나으니, 좋은 거네’ 이렇게 단정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역할과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 가운데 하나예요.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를 구축한 나라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더 높은 기준이 요구됩니다. 언론 자유에 관해 미흡한 점, 문제가 되는 점, 나아져야 할 점들을 끊임없이 찾아내 고쳐나가려고 노력하는 게 미국다운 모습입니다.
기자)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뭡니까?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 거라고 기대하세요?
브로드윈) 하하, 제가 원래는 계획을 치밀하게 짜고, 또 꼼꼼하게 실천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질문에 아주 잘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좀 다릅니다. 코로나 사태가 모든 걸 바꿔놨기 때문이에요. 이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려면, 보건기술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전에 세워놨던 계획들이 뭔지 다 잊어버렸을 정도로 지난 1년여 동안 관련 사안에 몰두해왔습니다. 취재에 집중하기 위해 이사까지 했거든요.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일할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 팬데믹 상황에서의 불평등 문제, 일단 이 일에 관한 보도에 힘을 기울일 겁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브로드윈) ‘언론 자유’는 모든 종류의 ‘평등’으로 향하는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사람이고, 백인과 유색인종이 같은 인격체라는 점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출신 배경이나 소속 정당, 가문의 이력, 또는 종교에 따라 차별받는 일이 옳지 않다고 언론이 두려움 없이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일 때, ‘언론 자유’와 모든 ‘평등’을 동시에 성취하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에린 브로드윈 보건기술 전문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