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미국에서는 신문이나 방송 보도 하나가 중대한 정책 변화를 이끌어 내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언론이 특정 문제점을 지적하면, 여론 수렴 과정을 통해 정부 당국과 정치권에서 개선을 모색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정책상의 문제점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언론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텍사스주 유력 신문 ‘댈러스 모닝 뉴스’ 소속 로렌 맥가히 (Lauren McGaughy) 탐사 보도 전문기자를 초대했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맥가히) 네, 제 이름은 로렌 맥가히입니다. 탐사 보도 전문기자이고요. ‘댈러스 모닝 뉴스(The Dallas Morning News)’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885년에 창간해, 15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신문인데요. ‘휴스턴 크로니클(Houston Chronicle)’과 함께 텍사스주 양대 일간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가 요즘에 주로 탐사하는 분야는 총기 문제와 경찰 개혁, 인종 갈등에 관한 정책들입니다. 그래서 주 정부 산하기관들과 주 의회를 출입합니다.
기자) 탐사 전문기자로 전국적인 영향력을 갖고 계시잖아요. 최근에 쓴 기사 중에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소개해주시죠.
맥가히) 우선 칭찬 감사합니다, 하하하. ‘가장 중요한 기사’라…, 잘 모르겠어요. 기자들은 원래, 자기가 쓴 모든 기사를 소중하게 여기잖아요. 모두 제 자식들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각 지역의 경찰이 범죄 수사를 할 때 최면 기법을 활용하는 사안에 대해 대형 특집 보도를 진행한 게 기억에 남아요.
기자) ‘최면 수사’는 최근 한국에서도 높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강 변에서 의대생이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친구한테 최면 기법을 사용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고 해요. 미국에선 뭐가 문제였길래 특집 보도를 한 겁니까?
맥가히) 최면을 걸어서 얻은 진술은 증거로 채택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 때문입니다. 오래된 이야기인데요. 텍사스 주법에 명쾌하게 규정된 사항이 없습니다. 법적 근거가 부족한 채로 진행된 수사 관행이었던 거죠. 제가 조사해보니, 과거 40여 년 동안 1천800 차례 이상 최면 요법이 수사에 반영됐어요. 거기서 나온 진술 증거를 바탕으로 감옥에 간 사람이 50명이 넘었습니다.
기자) 그런데 그 진술이 법적 근거 없이 채택됐던 거라면, 감옥에 간 사람들은 억울할 수 있겠네요?
맥가히) 그렇습니다. 그 기사가 전국 매체에 잇따라 소개됐습니다. 텍사스처럼 최면 수사를 관행적으로 해온 주들이 또 있기 때문이에요. 보도 이후 미국 곳곳의 주요 경찰국에서 최면 수사를 중단했습니다. 텍사스주 경찰도 그중에 하나예요. 제가 쓴 기사가 제동을 건 셈이죠. 그 뒤로 이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텍사스주 의회는 주요 사안으로 다뤘어요. 근거 없는 최면 수사 관행을 멈추도록 하는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그레그 애벗 주지사도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겠다고 했어요. 극심한 논란 끝에 채택된 임신 중절 금지 법안과 함께, 텍사스주 정치권의 양대 현안이 됐습니다.
기자) 기자 생활하신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맥가히) 11년인가 12년인가, 아무튼 10여 년 됐네요. 2009년에 일본 ‘아사히 신문’의 워싱턴 D.C. 주재 기자로 본격적으로 언론계에 몸담았어요. 바락 오바마 정권 출범 직후였는데, 당시 미국과 북한 당국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투 트랙 접촉(track II meeting)’을 하는 현장을 직접 가서 취재했습니다. 그전에는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중국학’을 공부했고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동아시아 지역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기자)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현장에서 취재하셨군요?
맥가히) 네. 북한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도 북한과 한반도 문제, 그리고 관련 국제 정책 등을 연구하는 미국 내 여러 모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한국말도 할 줄 알아요.
기자) 그러다가 텍사스로 가서 지역 매체에 몸담게 된 계기는 뭔가요? 텍사스에 연고가 있었습니까?
맥가히) 지역 매체의 보도가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에서 국제 관계를 보도하더라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지역 신문은 독자층이 집중돼있어요. 또, 다루는 현안이 실생활과 가까운 내용이라, 한 번 기사가 나가면 반응이 바로바로 옵니다. 앞서 말씀드린 최면 수사 관행처럼, 문제점을 지적하면 정책에 반영되는 일도 빠르게 나타나고요. 그래서 언론인으로서의 보람이 커요.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쓰게 됩니다. 그 결과, 텍사스로 옮긴 뒤 제 기자 생활은 한 단계 도약했어요. 그 전의 익숙한 환경에 안주했다면 저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 거예요. 이전까지 텍사스에 연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기자) 그렇게 활동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됐는데, 처음 기자가 되자고 마음먹은 계기는 뭔가요?
맥가히) 음…, ‘하루도 지루할 날이 없다’는 점이 학창 시절에 바라본 언론계의 매력이었어요. 기자들의 생활이 정말 역동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살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사건 현장, 그리고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곳, 또 뉴스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하루 24시간을 가리지않고 기자들이 달려가니까요. 그런데, 막상 언론계에 들어와서 직접 겪어보니 기대 이상이에요. 그냥 역동적인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매일매일 야단법석(turmoil)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싫지 않아요. 이런 생활에 만족합니다.
기자) 역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언론계 생활이 좋다는 말씀인가요?
맥가히) 네. 저희 기자들이 이렇게 정신없이 생활하는 대가로, 독자들은 한결 여유롭게, 세상 돌아가는 소식들을 접하고 계시잖아요. 좋은 일이 분명하죠. 그리고 기자직이 좋은 이유가 또 하나 있어요. 개인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시시때때로 예고 없이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다루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해당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기사를 쓴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기자의 삶은 매일 매일이 ‘학생’ 같아요. 취재 현장이라는 ‘학교’에 가서 무언가를 배워옵니다. 이렇게 평생 학생으로 살 수 있어서 행운이에요.
기자) ‘학생’으로 살면서 배운 것을 대중에게 전달한다, 참 멋있는 생각이네요. 그렇게 쓴 기사 중에 가장 자랑스러운 것 하나만 꼽으면 뭔가요?
맥가히) 소외된 사람,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사연이 많습니다. 그런 사연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기자의 중요 임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딱 그 임무에 부합하는 기사를 한 5년 전에 썼습니다. 성전환 남성이 자신을 차별하는 법규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였어요. 오랫동안 외로운 싸움을 해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기사에서 사연을 다룬 뒤로, 관련 법규에 대한 재검토가 즉각 이뤄졌습니다. 보람이 가장 컸던 보도 활동이었어요.
기자) 그렇게 영향력 있는 언론사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취재 현장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면서 여성이라서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은 없었나요?
맥가히) 음, 언론사 내부에서 성별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경험은 없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합당한 취재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승진에서 제외되는 일은 겪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취재 현장에서는 좀 달라요. 특히 신참 기자 때 좀 어려웠습니다. 취재원들이 나이 어린 여성을 진지하게 대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엄연히 기자인데도, 마치 아이 대하듯 하는 일까지 있었거든요. 연배 높은 남자 기자와는 다른 대우를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저한테는 도전이자 기회였어요. 이를 악물고 더 실력을 키우게 하는 동기가 됐던 거죠. 그런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요, 앞으로 더 성장시킬 자산이 됐습니다.
기자) 최근 텍사스발 뉴스 몇 가지가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우선, 2020년 인구조사 결과를 근거로, 연방 하원에서 텍사스의 의석수가 늘어나게 된 이야기인데요. 텍사스는 흔히 공화당의 텃밭이라고 하니까, 앞으로 보수 진영이 유리하게 된 건가요?
맥가히)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요. 텍사스가 ‘공화당의 텃밭이다’, ‘보수의 안방이다’, 이런 건 다 옛날이야기입니다. 주 전체의 정치 지형이 최근 몇 년 사이 굉장히 다극화됐어요. 텍사스에서 인구가 늘어난 건 맞지만, 증가분의 대다수가 젊은 층입니다.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옮겨 온 사람들이 많아요. 젊은 층은 나이 든 세대보다 진보 성향이라는 건 우리 모두가 잘 알죠. 또 서부 출신 미국인들은 진보적인 편이고요. 그래서, 의석이 늘어난 게 반드시 보수 쪽에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당장 내년 중간 선거에서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테니, 조금 기다려 보죠.
기자) 멕시코와 접한 국경 지대에 이주자가 몰려드는 사안도 텍사스발 주요 뉴스입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초기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는데, 현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봅니까?
맥가히) 여론이 한쪽으로 쏠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특별히 이 문제를 잘못 다루고 있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잘하고 있다는 쪽으로 크게 기울지 않아요. 외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게, 텍사스가 굉장히 크다는 점입니다. 전체 인구가 3천만 명 가까이 돼요. 웬만한 국가보다 사람이 많고, 땅도 넓습니다. 그래서 지역별로 계층별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합니다. 이주자 문제를 놓고 보면, 국경에 가까운 지역과 내륙의 대도시 여론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그래서 ‘텍사스 전체의 여론은 이렇다’고 단정하기는 좀 어렵다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맥가히) 제가 언론 비평 전문가는 아니어서, 점수를 매기기는 어려운데요. 명확하게, 미국은 다른 여러 나라에 비해 큰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행운입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 거리낌 없이 기사를 쓸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요. 감춰진 진실을 밝혀낼 자유를 보장받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정직하게 언론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투옥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어요. 국가에서 통제하는 매체 외에는, 이렇다 할 언론 기관이 없는 나라도 있고요. 그런 국제적 현실에 비춰볼 때, 미국의 언론 자유는 월등하다고 봅니다.
기자) 탐사 보도는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깊이 연구하고 넓게 조사해서 진실을 규명하고 대안을 끌어내는 거잖아요? 탐사 전문기자로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하나 취재할 수 있다면 어떤 걸 하고 싶은가요?
맥가히) 하하하.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정말 다루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요. 음…, 16세기와 17세기에 (유럽에서) 횡행했던 ‘마녀사냥(witch hunt)’ 사건들을 보도해보고 싶습니다.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재판하고 처형하는 일들이 문명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졌잖아요. 정치적인 이유로, 또 종교적인 이유로 이런 일들이 계속됐는데요. 순종적이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독립심이 강한 여성들이 희생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런 관습의 영향이 근대 미국에까지 이어졌어요. 이런 일이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이 뭔지 밝혀내고 싶습니다. 그 당시에 제대로 된 언론 활동이 있었다면, 그렇게 잘못된 관행을 없앨 수 있었을 거예요. 그랬다면, 현대의 양성평등은 훨씬 진전된 상황에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그 시점으로 가서 취재하는 건 좀 위험할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 자신이 바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성이니까요. 하하하. 그래도 가치 있는 보도 활동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맥가히) 더 다양한 목소리가 언론에 보도될수록, 더 완전한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모두에 적용되는 원리예요. 같은 사안을 놓고 매체마다 사람마다, 각자 처한 조건에서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걸 획일적으로 보도록 강요하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에요.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는 ‘언론 자유’,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반응을 각기 받아들이는 ‘양성평등’이 필요한 겁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로렌 맥가히 탐사 보도 전문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