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해를 넘겨 장기화하면서, 독서 인구가 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했기 때문인데요. 매주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에서는, 읽을 책을 고를 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과 비평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권위를 인정받는 기준이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그 책임자를 초대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신문의 도서 담당 에디터, 파멜라 폴 기자인데요. 지금 바로 이야기 듣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폴) 네, 저는 파멜라 폴(Pamela Paul)입니다.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나가는 도서 섹션 제작과 편집을 책임지고 있는 에디터인데요. 평일 신문에도 도서 관련 기삿거리가 있으면,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에 관한 모든 기사가 저를 거쳐서 나간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뉴욕타임스가 운영하는 도서 평론 팟캐스트(인터넷 방송)도 진행합니다. 직접 책을 낸 적도 몇 번 있고요.
기자) 미국에선 흔히 유명한 책을 꼽을 때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올랐다’, ‘뉴욕타임스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 모든 걸 책임지고 관장하시는 겁니까?
폴) 네. 도서 평론을 쓰거나, 출판ㆍ문화 산업 전반에 관한 뉴스가 있으면 저와 저희 팀 소속 기자 세 명, 총 네 사람이 책임지고 독자들께 전해드립니다. 말씀하신 대로 뉴욕타임스 지면에 반영된 내용이 도서 판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새로 나온 책들은 더 그렇죠. 그런데, 그중에 베스트셀러 목록은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건 아니고요. 저희 뉴스룸 전체와 사업국이 관여합니다. 왜냐면, 목록 선정에 관한 공정성, 효율성, 그리고 비밀 유지 같은 것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기자) 폴 기자가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뭡니까?
폴) 읽은 사람에게 ‘도전(challenge)’을 주는 책, 그게 좋은 책이라고 봅니다. 새로운 가치가 담겨있고 흥미로운 정보가 있다면 도전을 주게 되죠. 실용 서적뿐 아니라, 소설 같은 문학 작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학의 존재 가치는 ‘감동’인데, ‘감동’은 ‘도전’의 다른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좋은 책을 읽고 난 뒤에는 행동 양식이 바뀌거나, 세계관이 달라지거나 하는, 삶의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기자) 얼마 동안 이 일을 해오셨나요?
폴) 뉴욕타임스 기자가 된 지는 10년 정도 됐습니다. 그전에는 시사주간지 ‘타임(Time)’을 비롯한 매체에서 10여 년 동안 일했는데요. 뉴욕타임스 합류 이후, 어린이 서적 담당 기자를 하다가 2013년에 도서 평론 에디터가 됐고, 2017년에 책에 관한 모든 기사를 책임지는 지금의 위치로 승진했습니다.
기자) 그럼, 20여 년 전에 언론에 입문하신 계기는 뭔가요?
폴) 언제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브라운대학교에서 언론학을 전공했는데, 졸업 후 외국 생활을 하다 언론계에 입문한 뒤, 텔레비전 방송의 뉴스 다큐멘터리 원고를 썼어요. 처음엔 경제 분야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영국 런던에 있는 세계적인 경제 매체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소속으로 기사를 썼었는데요. 얼마 안 가서 경제에 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숫자 놀음이 반복되는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경제 보도의 중요성을 낮춰보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안 맞았을 뿐이에요.
기자) 그래서 전문 분야를 바꾸신 거군요, 책을 전문 분야로 선택하신 이유는 뭔가요?
폴) 전문분야라기보단, 기자로서 다룰 수 있는 가장 넓은 분야를 이 자리에서 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책에 담긴 소재와 주제는 무궁무진하니까요. 역사, 인물, 외교정책, 경제, 정치, 이런 모든 것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에 관한 기사를 쓰는 기자는, 그것들을 다 꿰뚫고 있어야 하는 거죠. 언론인으로서 책을 담당하는 사람은 진정한 만물박사(generalist)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자) 그럼, 다방면에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셨을 텐데, 지금까지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일은 뭔가요?
폴) 뉴욕타임스 기자가 됐던 때가 20여 년 경력의 하이라이트(최고점)라고 말씀드려야겠어요. 왜냐면 저는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타임스 가족’의 일원으로 자랐거든요. 저희 집은 모든 뉴스를 뉴욕타임스에 의존했어요. 그래서 저도 어린 시절부터 그 신문을 읽으면서 컸고요. 거기에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어릴 때 읽으면서 꿈을 키웠던 신문에 직접 기사를 쓰게 된 그때, 그때가 바로 ‘꿈이 현실로 이뤄진 순간'이었습니다.
기자) 가족들이 어떤 신문이나 방송보다 뉴욕타임스를 신뢰했던 거군요?
폴) 그렇죠. 그 영향력이 얼마냐 컸냐면, 저희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실 정도였어요. ‘파멜라, 네가 자라서 사회 활동에 관여하는 건전한 미국 시민이 되려면 뉴욕타임스를 읽어야 한다’라고요. 물론 미국에는 신뢰도 높고 공정한, 좋은 신문 방송 매체가 많지만, 저희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뉴욕타임스가 가장 컸던 겁니다.
기자) 꿈꾸던 신문사에서 도서 섹션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여성이라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폴) 사실 저는 언론계에서 20년 넘게 활동하는 동안 (성별에 관해)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도서 분야에서는 여성이라는 성별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섬세하게 행간을 읽어내고, 차분하게 분석하는 일들을 해야 하니까요. 또 여성들은 남성보다 잘 듣고, 공감 능력이 강하고, 호기심이 많다고 생각해요. 기자직에 적합한 성향이죠. 물론 제 경우를 일반화하진 않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처한 경우가 다 다르기 때문에, 저 만의 경험에 비춰서, 여성들이 겪는 불이익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폴) 한마디로 점수를 매기긴 좀 어렵습니다. ‘언론 자유’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하는데요. 넓은 범위에서 보면, 미국에서는 언론 자유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들여다보면, 사정이 좀 달라지는데요. 최근 경기 침체 여파로, 경영에 압박을 겪는 매체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정부나 권력이 탄압하는 요인은 없지만, 경제적인 요소 때문에 언론 자유가 도전받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기자)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뭡니까? 10년 뒤엔 어떤 모습일 거라고 기대하세요?
폴) 글쎄요.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어요. 살다 보면 예측하지 않은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니까요. 언론 생활 초창기에 태국과 홍콩에서 한동안 살았습니다. 제가 아시아에 가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었거든요. 앞으로도 예측 못한 일들이 벌어질 텐데요. 두 가지 기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해요. 하나는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즐기고 있나?’, 다른 하나는 ‘내가 좋은 가치를 대중에게 나누고 있나?’,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그에 따른 판단을 신뢰하고 행동하다 보면, 10년 뒤에 더 발전한 언론인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언론인 입장에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즐기고 있나’를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 사례는 어떤 겁니까?
폴) 예를 들어, 최근 미국 사회 쟁점 중 하나가 ‘총기 소유 제한’ 문제인데요. 이걸 지지하는 논조를 가진 신문ㆍ방송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소속 매체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면, 즐기면서 일할 수가 없겠죠. 하지만, 미국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시하고 토론할 수 있으니까, 기자의 소신에 맞는 매체를 찾아서 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기자의 담당 분야에서 흥미로운 뉴스가 계속해서 나오는지도 중요한데요. 도서 분야에서는 매일같이 수많은 책이 발간되니까, 저는 매우 만족합니다. 앞으로도 신나게 일할 수 있어요.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폴) ‘세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모두 편차가 심해요. 발전된 나라들은 아주 상황이 좋은 반면에,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심각할 정도로 안 좋습니다. 안 좋은 나라들의 상황을 개선하도록, 그곳에 계신 분들도 노력하고, 외부에서도 돕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파멜라 폴 뉴욕타임스 도서 에디터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