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미국 주요 매체에서 한인과 아시아계 언론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아시아계 혐오 사건들에 대한 특집 보도를 주도하고, 여론 환기를 위한 간담회 등에도 나서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유력 신문 워싱턴포스트 소속 한인 기자를 초대했습니다.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일정을 빠짐없이 수행하고 있는 김승민 기자입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김) 네. 제 이름은 김승민입니다. 워싱턴포스트에서 백악관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이오와대학교를 졸업하고, 워싱턴 D.C.에 있는 아메리칸대학교에서 언론학 석사를 받았습니다. 학부 재학 중에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기 시작했고요. 워싱턴으로 온 뒤 USA투데이와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를 거쳐, 2018년 초부터 워싱턴포스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기자) 백악관 출입 기자로서 굉장히 바쁘실 텐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돌아갑니까?
김) (워싱턴포스트의) 백악관 팀에서 7명이 함께 일해요. 각자 전문 분야가 있습니다. 저는 ‘백악관과 의회의 관계’를 맡고 있어요. 간단히 말해, 저의 하루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의제, 이것들이 의회와의 관계 속에서 실현되거나 혹은 좌절되는 과정을 취재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장관들을 비롯한 주요 직책 인준, 그리고 경기 부양책 같은 게 최근에 있었죠. 그래서 백악관과 의사당 사이를 오가느라 쉴 틈 없이 지냅니다. 제 시간표는 백악관과 의회 일정에 달려있어요. 지금도 이메일이나 전화가 오면, 바로 기사 쓸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자) 얼마 전 큰 특종을 하셨죠? 니라 탠든 예산관리국(OMB) 국장 지명자가 바이든 행정부 요직 인사 중에 처음으로 낙마했습니다. 과거 공화당 주요 정치인들을 상대로 ‘막말’ 트윗을 한 게 원인이었는데, 김 기자를 통해 상원에 알려진 사실이었잖아요. 그래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김 기자에게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그러자 워싱턴포스트에서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공격을 멈추라며, 김 기자를 지지한다는 특별 성명을 지면에 실었습니다. 뉴욕타임스에서도 언론 자유를 위해 김 기자를 지지한다는 칼럼을 게재했고요. 보도 활동 중에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는데, 어떤 걸 느끼셨습니까?
김) 기자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저희 팀이 부지런히 취재해서 특종을 했어요. 제가 하는 일이 백악관과 의회를 오가는 일이다 보니까, 그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지명자가 인준을 위해 충분한 지지를 확보했는지, 의원들을 만나 일일이 찬ㆍ반 입장을 알아보는 일을 했습니다. 만일, 의회 내 여론이 나쁘다면 그 원인이 뭔지도 취재해야 했고요. 그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도 알아보는 건 기본입니다. 그러던 중에 탠든 지명자의 소셜미디어 활동을 파악했어요. 그 결과, 인준이 안 될 요인(막말 트윗)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백악관은 지명을 철회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 부분을 미리 알아놨기 때문에, 백악관이 공식 발표하기 전에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기자) 김 기자가 그렇게 특종 보도도 많이 하지만, 워낙 부지런하고 현안마다 맥을 잘 짚어서, 어지간하면 낙종을 안 하는 거로 워싱턴에 있는 기자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비결이 뭔가요?
김) 하하. 좋은 기사를 쓰려면, 출입처에 매몰되면 안 됩니다. 한 발짝 밖으로 나와서 봐야 해요. 무슨 말이냐 하면, 매일 만나는 당국자를 찾아서 ‘내가 이러이러한 기사를 쓰려는데, 정보를 좀 달라’, 이러면 안 됩니다. 밖으로 나와서, 그들이 교류하는 대상을 직접 찾아가야 해요. (백악관 출입 기자의 경우) 이익집단이나 의회, 그리고 정책 연구 기관 같은 곳들이죠. 거기서 진짜 중요한 기사들이 나옵니다. 당국자들이 직접 하는 말은 유리한 쪽만 공개하게 마련이니까요. 그 상대방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특종도 하고, 놓치는 기사도 없게 됩니다.
기자) 출입처에서 주는 것만 받아서 쓰면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군요?
김) 그렇습니다. 백악관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려면, 밖에서 봐야 해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1600번지(백악관 주소)’ 안에서는 그게 안 보입니다. 외부로 나와서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해요. 이건 저 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훌륭한 백악관 출입 기자 누구한테 물어봐도 이런 답을 얻을 겁니다. 현 정부 말고, 이전 정권에서도 꾸준하게 백악관을 제대로 취재하는 원칙은 한 가지, ‘밖에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자) 그동안 언론계에서 많은 일을 겪으셨을 텐데, 가장 좋았던 건 뭡니까?
김) 아…, 너무 많아서 딱 하나만 고르긴 어렵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 자체가 참 좋아요. 백악관과 미국 의회가 돌아가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 말입니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후세에 길이 남을 정책을 만들고 공표하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 그것들을 제 손으로 세상에 알리고 있는 사실이 참 즐겁습니다. 그리고 미합중국 대통령의 일정을 동행해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는 특권(privilege)을 누리고 있잖아요.
기자) 대통령의 일정을 1년 내내, 매일 동행하십니까?
김) 네. 그런데 저 혼자서 하면 힘들어요. 백악관 팀에서 ‘주간 당직’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대통령 일정을 수행합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취재 원칙은 ‘소속 기자 중 누구라도 한 명은 언제나 대통령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백악관 출입 기자 가운데 한 명이 당직을 맡으면, 그 사람이 일주일 동안 거의 24시간 대통령의 스케줄과 동일하게 움직인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자) CNN에 정치평론가로도 출연하고 계시죠? 기자로서 취재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은데 왜 정치를 택하셨나요?
김) 학교 다닐 때부터 ‘정부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정치’잖아요. 그래서,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언론학을 함께 전공했습니다. 12살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요. 학창 시절 경험을 통해, 여러 보도 분야 중에서 정치에 가장 매력을 느꼈어요.
기자) 학창 시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정치에 매력을 느낀 겁니까?
김) 아이오와주 제 고향 마을에서 2004년 민주당 ‘코커스(caucusㆍ당원대회’)가 열렸어요. 아이오와는 대선 경선 초반 승부처로 유명하잖아요. 저는 그때 대학 신문 기자였습니다. 불과 열여덟 살이었어요. 그런데 운 좋게도 현장 취재 자격을 얻었습니다. 열여덟 먹은 학생이 어디서 그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그때 체험한 정치와 민주주의의 현장이 제 삶의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기자) 어린 나이에 아주 큰 정치 행사를 취재하셨네요?
김) 네. 그런데 현장에 가긴 했지만, 사실 ‘코커스’가 어떤 행사인지, 어떻게 운영되는지조차 잘 몰랐어요. 하하하. 저희 집이 정치에 크게 관심이 있는 집안도 아니었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현장에 갔는데, 거기 모여든 주류 언론의 취재 열기에 압도됐어요. 정말 멋있었습니다. 전국 매체의 내로라 하는 기자들이 저희 마을에 와서, 민주주의 현장을 세상에 전하는 모습을 본 거예요. ‘나도 반드시 저렇게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기자) 정치권에서 취재 대상은 아직 남성이 대다수일 텐데, 여성이라서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김) 제가 여성이자 유색인종(한국계)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더 관찰(scrutiny)의 대상이 되고, 희롱(harassment)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종적 편견에 바탕을 둔 발언을 듣기도 하고요. 분명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여성 언론인들은 약진했습니다. 제가 전에 일했던 폴리티코나, 지금 소속된 워싱턴포스트 모두 여성 종사자들의 지위가 높아졌어요. 매체마다 백악관 출입 기자단에 빠짐없이 여성이 들어있습니다. 60년대나 70년대에는 훨씬 안 좋은 상황이었잖아요. 그땐 남성 일색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이렇게 나아진 것처럼, 앞으로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모두가 계속 노력할 거예요.
기자) 백악관 출입 기자 중에 유일한 한인이시잖아요? 또 의회에서는 메릴린 스트릭랜드 하원의원이 연초에 한복을 입고 취임 선서하는 걸 김 기자가 트위터에 올리신 뒤, 한국 언론들이 잇따라 기사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바이든 행정부 각료급 인사 15명 인준이 끝났는데, 아시아계가 한 명도 없다고 지적하는 글도 쓰셨고요. 목적의식이 있는 겁니까? 미국 언론에서 아시아계나 한인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인 사회를 대표한다는 것은 좀 과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하하하.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에서 일하고, 백악관을 출입한다는 것은 미국 언론계 전체를 통틀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분명한 한인이고요. 그래서 더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프로 정신을 갖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기자)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뭡니까?
김) 음…, 일단 지금처럼 열심히 일할 겁니다. 그러고 나서, 제게 어떤 다른 기회가 올지는 지켜봐야겠어요. 일단, 정치나 정부 관련 보도 밖의 분야에서 일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워싱턴포스트의 정치 에디터가 됐으면 좋겠어요. 팀을 이끌어 나가는 위치에서, 보도 활동의 큰 방향을 정해나가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직접 기사를 쓰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는 일이 정말 좋습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김) 일단, 저처럼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큰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언론 자유’가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되는 곳에 있으니까요. 수정 헌법 1조에 그(언론 자유) 이야기를 넣은 이유가 있어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도록 만든 겁니다. 하지만 그 자유를 미국인들이 언제나 올바르게 행사하지는 않습니다. 실수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와 권력자들을 감시하고 책임을 묻는 수단이 ‘언론 자유’에 달려있으니까요. 그런데 미국인들이 당연하게 향유하고 있는 이 자유를 못 누리는 국가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그런 나라들을 향해 이(언론 자유) 문제를 더 강조해줘야 합니다. 음… 그리고 ‘양성평등’에 관해 말씀드리면, 이 사안은 미국에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받는 ‘양성평등’의 당위성을 언론이 꾸준히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뀝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김승민 워싱턴포스트 백악관 출입 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