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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리즈 6] 갈루치 전 국무부 차관보, “미국, 북 권력승계 참고 기다려야”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

저희 `미국의 소리’방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 상황에 대한 전직 미국 정부 고위 관리들과의 대담 시리즈를 보내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섯 번째, 마지막 순서로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입니다. 갈루치 전 차관보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 핵 협상대표를 맡았고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북한과 미-북 기본합의를 타결했습니다. 김연호 기자가 갈루치 전 차관보를 인터뷰했습니다.

문) 갈루치 전 차관보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국무부에서 북 핵 문제를 담당하면서 북한 측과 협상을 진행 중이셨던 것으로 압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당시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답) 현재 북한에서 누가 얼마나 권력을 잡고 있는지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말고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애도기간이 공식적으로 정해진 기간보다 더 길어질 수 있고, 그만큼 권력승계 작업도 늦게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과 계속 협상할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합니다. 대북 협상 때문에 흥분할 필요는 없지만, 북한과 언제든 핵 문제를 다시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걸 계속 알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정권을 교체하겠다거나 북한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얘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럴 경우 북한이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할 겁니다. 북한 정부가 국민의 뜻을 반영하고 경제 개방을 단행한다면 국민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미국의 믿음을 얘기하는 건 문제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그걸 이루기 위해 도발적인 방식으로 뭔가를 하겠다고 말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문) 핵 확산 문제도 미국이 북한에 대해 매우 우려하는 사안이지 않습니까? 지금 같은 민감한 시기에 이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십니까?

답) 적당한 때를 봐서 미국이 핵 확산 문제를 지적해야 합니다. 핵무기 기술이나 물자, 장비를 해외로 빼돌리는 걸 미국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북한의 새 정부가 확실히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 2007년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고 다시는 그런 일을 묵과하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문) 지난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 어디에 계셨습니까?

답) 스위스 제네바에 있었습니다. 북한과의 핵 회담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려는 상황이었는데, 아침 일찍 한승주 한국 외무장관의 전화를 받고 깼습니다. 그 때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핵 회담을 어떻게 이어갈지, 북한이 과연 핵 회담에 다시 나올지에 관해서 한 장관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럽을 순방 중이던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과도 간단하게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문)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핵 회담에 즉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협상이 얼마나 진행된 상태였습니까?

답) 6월까지는 아주 험난한 시기였습니다. 핵 협상이 파국 위기를 맞았던 때였죠. 하지만 결국 북한과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해서 7월 초에는 긴장이 급속히 완화 됐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겁니다. 그 당시 누구도 북한의 새 지도부와 어떤 일을 도모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핵 위기를 겪으면서 거둔 성과를 김정일이 존중하고 협상을 이어가기를 바랄 뿐이었죠. 김정일이 아버지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닌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분명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문) 지금과 상황이 아주 비슷했군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 핵 합의의 윤곽이 얼마나 나온 상태였습니까?

답) 핵 합의의 윤곽은 분명히 잡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과의 협상이 늘 그랬듯이 합의가 어려운 부분들은 모두 뒤로 미뤄놓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양보하는 대가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떤 조건으로 보상할지가 그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경수로를 한국형으로 할 것인지, 북한이 영변 핵 재처리 공장을 어느 시점에 포기할지, 이런 문제들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 그런 상태에서 북한 협상단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냥 평양으로 떠나버린 거군요.

답) 네. 그런데 놀랍게도 한 달만에 후속 핵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북한 측은 협상을 계속할 준비를 제대로 하고 왔습니다. 이걸 두고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을 때부터 이미 김정일이 핵 협상을 주도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미국이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에 과연 핵 협상의 연속성이 지켜질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거죠. 협상이 재개된 뒤 북한 측과 몇 번 더 만났고 결국 그 해 10월에 미-북 기본합의를 타결할 수 있었습니다.

문)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지 한 달만에 다시 만났을 때 북한 측의 협상 태도는 어땠습니까?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필요는 없었습니까?

답)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재개할 수 있을지조차 염려했었지만 협상은 재개됐고, 협상 내용도 김일성 주석 사망 직전에 중단됐던 데서 바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돌발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문) 김일성 주석의 사망 직후 미국의 상황 관리나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답) 미국에서 유일하게 논란이 됐던 문제는 북한에 조의를 표명하느냐 였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죠. 당시 미국 정부는 다른 나라의 독재자나 전체주의 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 역사적 사례를 연구했는데, 아무리 끔찍한 독재자였다 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조의를 표명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조의를 표명하더라도 북한 지도부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을 향해 표명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네바에 있는 북한 공관을 찾아가 조문을 했고 다른 나라에 주재하고 있던 미국 대사들도 북한 측에 조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밥 돌 상원의원은 조의 표명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올바른 행동이라도 국내 정치적으로는 올바르지 못한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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