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북한의 식량난을 공개하고, 코로나 방역 관련 `중대 사건'이 생겼다고 언급하는 등 연이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 주요 언론은 북한의 내부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 장마당 기능이 마비됐을 것으로 진단하며, 인도주의 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은 최근 ‘수해와 코로나 방역 조치가 북한의 식량난을 악화시키다’라는 보도를 했습니다.
이 방송은 “공식 발언을 가볍게 하지 않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언급해 국제사회가 놀랐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도 올해 북한의 ‘심각한 식량부족 상황’을 경고했다고 전했습니다.
`NPR'은 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이 고립에서 빠져나와 미국 등 국제사회와 다시 관여하기 위한 사전 작업일 수 있다는 진 리 윌슨센터 선임연구원의 분석을 소개했습니다.
리 연구원은 2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위원장이 외부 지원을 받기 위해 북한 주민들과 국제사회에 초기 신호를 보내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녹취: 리 연구원] “North Korea never likes to admit that they need the help because they’ve painted this picture that they can do everything on their own. So in order to set the stage for future engagement or acceptance of aid, in some ways they have to transition into acknowledging or painting a picture of why they might take this step.”
북한은 일반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대 밝히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에서 전환해 어려움을 인정한 것은 앞으로 외부 지원을 받고 국제사회와 관여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주요 언론 “북한 경제 계속 악화”... “내부 위기 심각”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도 2일 ‘북한의 코로나 위기’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국제 제재를 받고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코로나 위협에 직면해 있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도이체벨레'는 한국 정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 KDI가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이 130만t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며, 유엔 세계식량계획 WFP과 민간 구호단체들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이 ‘간고한 고난의 행군에 나설 것을 결심했다’고 밝힌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이 매체는 분석했습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최신호에 북한의 경제 현황과 시장화 수준에 대한 분석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잡지는 북한의 “경제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으며, 식량 가격은 심각하게 요동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배를 곯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6월에 김 위원장은 주민들의 고통에 이례적인 뉘우침을 표현하며, 식량 사정이 긴장됐다고 밝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코로나 방역 의무를 소홀히 한 고위 관리들을 문책하고 해임했다며, “이 모든 일이 김 위원장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북-중 국경 봉쇄 여파... 장마당 기능 마비”
미국의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북한 경제난이 김 위원장 집권 이래 최악의 수준이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2일 VOA에 쌀과 옥수수 등 북한의 생필품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며, 이는 “경제 전반에 가해진 압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뱁슨 전 고문은 평양에서도 물가가 불안정하다며, 장마당 기능의 마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 think they’re in a situation where the markets have limitations on their ability to moderate the impact of these things on the general population at this stage.”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는 북한 장마당이 기능이 현재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는 설명입니다.
워싱턴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올리비아 이노스 선임연구원도 북한 장마당 기능이 마비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이노스 연구원] “I would say that one of the challenges with a border closure is that the informal market economy of Jangmadang likely cannot function. People have reported basically seeing empty stalls through satellite imagery.”
이노스 연구원은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 장마당의 좌판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북-중 국경을 ‘밀봉’해 공식, 비공식 무역이 악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북-중 비공식 교역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북한 장마당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노스 연구원은 장마당이 마비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식량 불안정 상황이 엄청나게 악화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주의 위기 대비해야”... “지원 시 분배감시 중요”
이노스 연구원은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난이 어느 정도로 체제를 불안정하게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서 인도주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에 언제나 대비돼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도 현재 북한과 관련해 ‘인간안보’가 가장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t’s not just humanitarian aid in the sense of bringing in food and medicines. It’s getting the system functioning in a way that is sustainable both in the food production system and the health management system.”
뱁슨 전 고문은 국제사회가 식량과 의약품 전달 등 일회성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북한의 농업과 보건 분야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국제사회의 지원 제안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한도 “혼자서 고립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윌슨센터 진 리 선임연구원은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가 체면을 세우면서 외부 지원을 받아들일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대북 지원을 할 때는 분배감시 원칙에 입각해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리 연구원] “It’s not just about that aid itself but also setting the precedent right. If you start a precedent where you hand it over and you let the N Koreans do what they want with it and perhaps divert it to certain populations for specific political purposes then it’s very hard to get them to agree to the kind of conditions that are necessary.”
리 연구원은 “지원 자체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선례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며 북한 마음대로 지원품을 전용하도록 조건 없이 구호품을 넘기는 선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