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차 당 대회에서 자력갱생을 중심으로 한 5개년 경제정책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제재와 신종 코로나 봉쇄로 고립된 상황에서 자력갱생이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다만, 자력갱생으로는 경제난을 돌파할 수 없다며 과감한 개혁정책과 외부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앞으로 5년간 경제 운영의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핵심은 자력갱생이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의 지난 9일 보도입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기본종자, 주제는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입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한미경제연구소(KEI) 트로이 스탠거론 선임국장은 12일 VOA에 “제재에 직면하고 코로나 봉쇄정책을 취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경제 붕괴를 피하기 위해 내부적 노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고 말했습니다.
[스탠거론 국장] “With sanctions in place and North Korea’s own quarantine from COVID-19, Pyongyang is forced to rely on internal efforts to keep the economy afloat.”
필라델피아의 민간단체인 외교정책연구소의 벤자민 실버스타인 연구원도 “북한이 경제적으로 매우 고립된 상황에서 개혁을 동반한 핵 협상 양보를 원치 않는다면 자력갱생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실버스타인 연구원] “North Korea is incredibly isolated economically at this time, and self-sufficiency is the only option other than reforms and giving up more than the state thinks it can handle in negotiations over the nuclear program.”
“해법 제시 못해”... “석유, 천연가스 등 수입에 의존해야”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김 위원장이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산업 부문별 목표를 제시했지만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There’s absolutely nothing about how you can accomplish those things when you can’t import technology that you need, or you don’t have the finance in order to make the investments that are required and you go through that long list and there’s a lot of investment required here…”
뱁슨 고문은 12일 VOA와 전화통화에서 김 위원장이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떻게 기술력을 도입할 것인지, 투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재정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며 노동만 투입해서는 목표 달성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현행 경제정책을 넘어서는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경제 청사진 제시가 “매우 미시경제적이며, 경제 목표 달성과 재정 투입에 대한 거시경제적 이해와 방향 제시가 없다”고 거듭 지적했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이 모든 것을 자급자족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There are several other problems with their self-reliance. The things that they really can’t make themselves. The main thing that they don’t have by far is petroleum. The have zero petroleum and natural gas, so they have to import anything that uses petroleum and that’s including plastics and fertilizer.”
브라운 교수는 12일 VOA에 “북한 자력갱생의 문제는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점”이라며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가 전혀 나지 않고, 플라스틱과 비료 등 석유로 만드는 모든 제품도 수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의 사업총화 보고는 과거 70년간 계속돼 온 북한 정권의 정책을 답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주민들과 시장이 스스로 경제 목표를 세우도록 허락하지 않고, 평양의 당국자들이 이런저런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화된 국가통제 속에서 경제개혁 추진”
김 위원장이 새로운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서 경제개혁 조치를 이어갈지도 관심사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도입해 경제체제 운영 방법을 시장친화적으로 개선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통해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해 왔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이번 사업총화 보고에는 이런 언급이 없고, 오히려 국가통제가 강조됐습니다.
9일 조선중앙방송 보도입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보고에서는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를 실현하기 위한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가적인 일원화 통계체계를 강화하며 국가경제의 명맥을 추켜세우기 위한 사업을 올바로 전개하고 공장, 기업소들의 경영활동 조건을 개선할 데 대하여 언급되었습니다.”
미국 정부 북한정보 분석관을 지낸 이민영 연구원은 12일 VOA에 “시장통제라기 보다는 경제에 대한 국가통제의 강화, 규율 강화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며 “개혁은 계속 밀고 나가되 강화된 국가통제 속에서 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며, 2019년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보고와 같은 맥락이라고, 이 연구원은 말했습니다.
이 연구원은 또 이번 보고에서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와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내각중심제, 내각책임제 등 전통적으로 개혁을 주도했던 내각에 계속 힘을 실어줬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울러 “경제관리 개선, 공장, 기업소들의 경영활동 조건 개선 등이 언급돼 김정은식 개혁정책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보여진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개혁정책의 기조는 유지되고 있지만 2016년 당 대회 때보다 개혁의 색채가 옅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민영 연구원은 다만 “아무리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더라도 더 과감한 개혁정책과 외부환경의 개선 없이는 자력갱생 정책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도 김 위원장이 개혁의 주체로 내각을 앞세워 왔고, 그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He’s been emphasizing cabinet role as the lead from early on and taking it away from the party itself and putting the technocrats in charge of trying to make the economy work rather than the politicians. So it reinforces that theme which is not a new one.”
집권 초기부터 당의 권한을 내각으로 돌리고, 정치인들이 아닌 기술관료들이 경제를 주관하도록 하는 노력을 김 위원장이 기울여 왔다는 것입니다.
뱁슨 고문은 이번에 ‘경제사령부로서의 내각’이 강조된 것도 그러한 연장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뱁슨 고문은 이번 보고에 “시장에 대한 언급이 없고, 사기업과 국영기업간 상호작용에 대한 언급도 없다”며 “시장이 이미 북한에서 거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의 낙후된 금융체제 개혁이 시급하다며,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선 자본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분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What is needed is more financial reform, banking reform, pricing reform, exchange rate reform, all of that.”
브라운 교수도 현재 북한에 필요한 것은 은행, 외환, 예산 등을 망라하는 금융개혁이라고 밝혔습니다. 완전한 계획경제가 아니고 시장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식 경제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브라운 교수는 8차 당 대회 논의 내용이 아직 다 공개되지 않았다며, 이념적 민감성을 고려할 때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세부 내용에 시장개혁적인 요소가 들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노동당 8차 대회를 계속 이어가며 결정서 초안을 만들기 위해 경제, 농업, 군사 등 부문별 협의회를 진행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