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미국 학생들에게 북한문학을 가르치는 한국계 미국인 학자가 북한의 코미디 영화를 소개하는 책을 펴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해 4월, 워싱턴의 미 의회도서관에서 ‘나는 간첩을 염탐한다: 북한 코미디 영화의 불안과 익살’ 이란 제목의 강연이 열렸습니다.
소냐 리 미 의회도서관 한국관 수석사서의 기획으로 이뤄진 이 행사에서 리 사서는 청중에게 이런 말을 건냅니다.
[녹취: 소냐 리] “It’s a Sunny day but it’s raining. Something like that. So to me this was one..”
“만약에 햇살 쨍쨍한 날인데 동시에 비가 내린다면, 좀 이상합니다. 제게는 이런 일 중 하나였습니다.”
독재국가 북한에서 사는 주민들이 코미디 영화를 보며 웃는다는 말이 의아했고, 정말 그런지 궁금했다는 설명입니다.
리 사서는 자신과 같은 궁금증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습니다.
조지 워싱턴대학 임마누엘 김 교수는 2008년과 2015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백남룡 작가와 면담하고, 그의 대표작인 1988년작 소설 ‘벗’의 영문 번역본을 올 4월 출간했습니다.
김 교수의 의회도서관 강연은 최근 출간한 책 내용의 일부로, 북한 주민들을 웃게 하는 코미디에 대한 내용입니다.
김 교수가 북한 코디미 영화를 연구한 배경은 북한 코미디 영화 연구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녹취: 임마누엘 김]”‘꽃파는 처녀’ ‘피바다’ 등등 뭐 그렇게 되게 로맨틱한 영화들을 많이 다루거든요. 이런 게 다 ‘선전적이다, 역사를 찍는 거다. 식민지 시대를 그리고 6.25 전쟁을 그리고 또 당과 리더들을 잘 묘사하는 영화들이 있다’고 그렇게 결론을 내요. 그런데 그게 완벽한 그림이 아니죠. 왜냐하면 그 외에도 코미디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게 사실은 굉장히 많아요. 왜 코미디 영화는 항상 뭐랄까 변두리로 떨어지나 그게 항상 의문이었어요.”
무엇보다 북한의 코미디 자체에 대한 분석과 함께 코미디 영화를 통해 북한 주민들이 웃는 이유와 관점은 무엇인지, 또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지난 6월 출간된 김 교수의 책 ‘웃는 북한 사람들: 북한 코미디 영화들의 문화.’
140여쪽 분량의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됐고, 각 장마다 김 교수가 꼽은 북한의 코미디 영화 즉, 경희극과 북한 주민의 반응을 주 내용으로 다뤘습니다.
첫 장 ‘코미디언 코미디’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님에도 북한 코미디언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형식의 영화 ‘보람찬 생활’을 소개했습니다.
김 교수는 영화를 언급할 때 ‘배우 송강호의 기생충’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북한 주민들도 영화를 인식할 때 배우를 먼저 떠올린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장은 간첩을 소재로 한 코디미 영화인데, 누구를 봐도 의심부터 하고 보는 북한의 문화를 풍자한 내용이 주민들에게 웃음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김 교수는 북한에서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가 코미디 영화(경희극)의 황금기로 볼 수 있다며, 1970년대 영화 ‘우리집 문제’를 세 번째 장에서 다뤘습니다.
‘우리집 문제’에 대해 김 교수는 50대 이상 북한 사람이라면 100%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코디미 영화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집 문제’는 북한의 희극배우 고 김세영 씨가 주연으로 등장하며 우체국장과 아내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는데 꾀병을 부리며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부부의 일상과 부부가 간부로서 비판 받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김 교수는 이 영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좋아하지 않았으며 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교육적인 내용이 강조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출시됐을때 다른 선전영화와 다르게 부패한 간부에 대한 처벌을 강하게 담지 않은 내용도 특이하다고 설명합니다.
[녹취:임마누엘 김]“우편국장이 회개를 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 새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죠. 영화 끝에 그런데 우리집 문제는 그렇게 끝나지 잖아요.그냥 끝나버려 비판하고 그냥 끝나버려요. 더 중요한 인물은 아내에요. 아내가 인민반 회의에서 비판을 받았는데 보통 다른 영화들 같은 경우에는 와이프도 회개하고 미안하다고 그러고 그 다음에 자기 삶을 바꾸려는 그런 노력이 보여야 되거든요. 근데 영화에서는 그런 것을 안 보여줘요.”
‘교육적이면서 웃기고 가벼운 내용의 영화’라는 의미의 경희극인 ‘우리집 문제’는 지난 4월 의회도서관 강연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됩니다.
이 작품의 후속작이 10편이 넘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는 김 교수의 말에 청중은 크게 웃었습니다.
후속작이 “우리집 문제, 우리 옆집 문제, 우리 아랫집 문제, 우리 처가집 문제,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라는 제목으로 나왔다며, 북한의 재치와 유머를 읽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평양 요리사 출신 50대 탈북 남성 박명남 씨는 ‘우리집 문제’를 여러 번 돌려볼 만큼 재밌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박명남] “실제 생활을 풍자하는 ‘우리집 문제’라고 있어요 대표적인 게, 시리즈로 10여편 넘게 나왔는데, 간부들과 가족들의 부패한 생활을 풍자한 건데 굉장히 웃기고 사람들한테, 또 정치적인 내용이 없으니까 코미디에는. 그러니까 밤낮 정치물만 보다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웃고 그랬던 기억이 있고요 70-80년대 최고였어요. 김세영 씨라고 6.25때 월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굉장히 잘했어요.”
김 교수는 `우리집 문제’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배우 김세영 씨에 대해 한국의 이주일, 미국의 찰리 채플린과 같았다며 국민 코디미언으로 설명했습니다.
한국의 이주일 씨는 1980년대 큰 인기를 누렸던 코미디언입니다.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난 찰리 채플린은 희극배우의 대명사로 미국에서의 활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김 교수는 채플린이 북한에서도 유명했다면서, 그 이유를 들여다 보면 북한 주민이 선호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임마누엘 김] “거지처럼 하고 다니면서 그의 우위에 있는 주인이든지 무슨 지배인이든지 항상 놀리고 망신시키고 그렇게 하잖아요. 북한에서는 그 이유 때문”
영화 속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놀려먹는 등장인물을 북한 주민들이 선호했다는 점은 시사성이 큰데요, 김 교수는 코디미의 본질은 같다고 말합니다.
[녹취: 임마누엘 김] “일단은 코미디라는 장르는 항상 뭐를 비판하거든요. 뭔가를 좀 비꼬으면서 말을 하고 비꼬으면서 놀리고, 그게 코미디의 본질 아니겠어요? 그런 코미디를 보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다를 수가 있는데, 당을 비판하든지 뭐 리더들을 비판하든지 사회를 비판하는 그런 장면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김 교수는 이 책은 결국 북한 주민이 웃는 부분과 서구인들이 웃는 부분 즉, 웃음코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오히려 문화나 세대 차이가 웃음코드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는 설명입니다. 20대 학생들은 `우리집 문제’를 보고 전혀 웃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2세인 자신과 아버지는 많이 웃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북한의 코미디에서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면서 당과 국가원수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는 점, 그리고 관객을 웃기려고 말과 행동으로 상대 배우를 직접적으로 비하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김 교수는 교육적인 면을 강조하지 않았던 1950년대 이후 코미디가 1970년대 경희극 시대로 바뀌면서 북한 코디미의 소재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본과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주제가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밖에도 김 교수는 이 책에서 북한 주민의 놀이문화로 유원지가 배경이 된 코디미 영화,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사랑과 결혼’도 소개합니다.
이 영화는 서방에서 처럼 영화 속 주인공의 패션 등이 ‘유행’을 만들어내는 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웃고 즐기는 북한 코디미 영화와 그에 대한 영향을 연구한 책, `웃는 북한 사람들: 북한 코미디 영화들의 문화’는 북한 주민의 일상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김 교 수는 말합니다.
[녹취: 임마누엘 김]”북한에서도 이렇게 시민들이 그동안 웃고 살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영화가 재밌었고, 영화배우들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끌었기 때문에 그런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북한이 좋다, 정치가 지금 올바르게 진행하고 있다. 전혀 그거에 옹호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다들 고달픈 인생을 살아온 것은 물론 고달프고 충격적이지만 반면으로 웃고 산 적도 만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거죠.”
이 책은 미 의회도서관 한국관의 자료로 보관되는데요, 소냐 리 사서에 따르면 의회도서관이 북한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북한의 코미디 영화에 대한 자료는 그동안 없었습니다.
또 최근 몇 년 새 북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늘면서 연구 대상이 북한 주민들의 일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리 사서는 이런 배경에서 김 교수의 의회도서관 강의는 이전의 다른 강의와 비교할 수 없게 큰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소냐 리] ”북한 학자들의 이런 연구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무게가 훨씬 큽니다. 그런 점에서 매우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요.”
VOA뉴스 장양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