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 실종된 뒤 전사 처리된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 실제로는 북한에 포로로 끌려갔다는 새로운 증언이 나왔습니다. 이후 중국을 거쳐 러시아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오택성 기자입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2년 4월 6일. 미 ‘뉴욕 타임즈’ 신문의 1면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건장한 군인의 사진과 함께 이 군인의 실종 소식이 실렸습니다.
실종된 군인은 바로 ‘제임스 밴 플리트 2세’, 한국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었습니다.
밴 플리트 2세는 한국전에 참전한 아버지를 따라 B-26 전투기 조종사로 지원해 1952년 3월 14일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1948년 6월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밴 플리트 2세는 1949년 10월에 끝난 그리스 내전에 공군으로 이미 한 차례 참전해 또다시 해외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령관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은 반드시 가야만 하는 또 다른 전장이었습니다.
한국전 참전 명령을 받은 직후 어머니에게 쓴 편지엔 한국전에 참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편지 중 일부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제가 어머님의 남편을 지원할 때가 되었습니다. 미국을 대표해 모든 인간에게 공포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투쟁하고 계신 아버님을 돕는 날이 가까웠습니다. 어머니, 부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와 함께 행동하는 승무원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한국 입국 후 닷새 후인 3월 19일, 아버지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환갑 잔치에 참여해 아버지와 어깨동무를 한 채 아버지의 생일 케익을 잘랐습니다. 하지만 부자의 짧았던 행복한 시간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1952년 4월 4일 새벽 1시 5분. 밴 플리트 2세는 승무원 존 맥칼리스터 중위와 기관병 랄프 펠프스 일방과 함께 B-26 폭격기에 올라탔습니다.
압록강 남쪽 50마일 지점에 있는 선천에 대한 ‘정찰 폭격’ 임무로, 그의 4번 째 작전 비행이자 첫 단독 투입 비행 임무였습니다.
하지만 밴 플리트 2세의 폭격기는 다시 기지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밴 플리트 장군 역시 아들의 실종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곧이어 수색 작업이 진행됐지만 밴 플리트 장군은 아들의 생존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수색 작업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 휴전 이후인 1954년 3월 밴 플리트 2세는 ‘전사’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실종된 뒤 전사한 줄로만 알았던 밴 플리트 2세가 사실은 북한에 포로로 끌려갔으며 이후 중국을 거쳐 러시아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는 새로운 증언이 최근 나왔습니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 조 맥크리스천 주니어는 지난 16일 로스앤젤레스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주최한 ‘한국전쟁 역사’ 온라인 세미나에 참석해, 외삼촌 밴 플리트 2세가 실제로는 살아남아 북한에 포로로 잡혀갔다는 새로운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밴 플리트 2세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6개월 뒤 중국군에 넘겨졌습니다.
중국군은 적군 사령관의 아들을 포로로 잡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밴 플리트 2세의 군 인식표를 공개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맥크리스천 주니어는 이어 밴 플리트 2세가 중국에서 다시 옛 소련으로 이송돼 강제수용소인 시베리아 ‘굴락’에 수용됐다고 증언하며 이같은 내용은 미국 육군 정보국 참모차장을 지냈던 자신의 아버지가 확인한 정보라고 소개했습니다.
맥크리스천 주니어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밴 플리트 장군이 개인적인 지도력을 통해 한국전쟁 기간뿐 아니라 이후 약 70년 간 미-한 협력과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맥크리스천 주니어 /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 외손자] "General James Van fleet through his personal leadership, had a major impact on us Korea Cooperation and Development during the Korean War and for nearly seven decades."
한편 이날 화상 세미나에는 밴 플리트 부자 후손 뿐 아니라 인천상륙작전 당시 상륙군을 지휘한 에드워드 알몬드 미국 10군단장, 장진호 전투의 영웅 에드워드 스미스 미국 해병 1사단장, 흥남 철수 작전의 주역 에드워드 포니 해병대 대령 등의 후손들 역시 함께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할아버지 세대가 목숨을 걸고 참전한 한국전쟁에 대해 회고하며 “한국은 번영하는 민주주의 국가이자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으며 한국전쟁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VOA뉴스 오택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