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를 계기로 남북한의 판이한 선거제도가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탈북민이 출마해 한국의 첫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것처럼, 북한도 국가와 지역 지도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민들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녹취: 태구민(태영호) 후보 공식 로고송] “진정한 찐 후보. 든든한 찐 후보. 기호 2번 태구민이 여러분이 밝은 미래를 약속합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찐찐찐 태구민, 2번 태구민, 진짜가 나타났다…”
15일 실시된 한국 총선의 서울 강남갑 지역에서 압도적 표 차로 당선된 북한 외교관 출신 태구민(태영호) 후보의 공식 선거홍보 노래(로고송) 입니다.
이 홍보 영상에는 태 후보가 재래시장에서 시민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함께 사진촬영을 하거나 춤을 추는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출마 후보가 발품을 팔며 유권자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은 자유국가의 정치 유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북한군 출신으로 한국 건국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지성 씨는 16일 VOA에, 선거는 탈북민들에게 국민이 가진 선택권의 힘을 실제로 체험할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지성 씨] “한국은 국민에게 선택권이 있고 정권도 (투표로) 바꿀 수 있다는 개념이 있지만, 북한은 그런 개념이 없는 거죠. 왜냐하면 정부가 지정하는 구역의원, 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까지 정부가 지정해 주는 사람들인 거고, 당도 바꾼다는 개념이 없는 유일 당이니까 (국민이) 당도 바꿀 수 없는 거죠.”
한국 등 자유세계에서 선거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국민이면 누구든 후보로 나설 수 있고, 이들의 선출 여부는 오직 국민의 선택, 즉 투표에 달려있기 때문에 아주 떠들썩한 국가적 행사로 선거가 치러집니다.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 등 총 300석의 주인을 뽑은 이번 21대 총선에서 출마 후보는 253개 지역구에 1천 101명, 정당만 35개에 달합니다.
이 때문에 투표용지 길이만 48.1cm, 국가보조금을 포함해 이번 선거에 투입된 예산은 4천 102억원, 미화로 3억 3천만 달러,
투표용지는 8천 700만 장으로 투표지를 한 장씩 펼쳐 놓으면 평양의 두루섬을 거의 다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표는 강제가 아니기 때문에 28년 만에 가장 높았다는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66.2%에 머물렀습니다.
반면 북한 당국은 지난해 3월 실시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투표율이 99.99%였다고 발표하는 등 모든 선거 때마다 투표율은 거의 100%, 찬성률 100%,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도 자세히 공개하고 있습니다.
태영호 전 공사는 지난해 한 대학 강연에서 과거 평양에 부임한 외교관들에게 북한의 선거 제도를 설명할 때 많이 난감했었다고 말했습니다.
투표장 앞에 “모두 다 찬성 투표하자”, “일심단결의 위력을 시위하자”란 구호가 적힌 포스터, 경쟁이 전혀 없는 상황을 보며, 이게 투표냐고 자주 자신에게 물었다는 겁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너와 나의 (의견) 차이를 투표로 갈라내자는 게 선거인데, 갈라내지 말고 무조건 찬성 투표해라. 이게 무슨 선거냐. 외국인들이 이걸 이해 못 해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북한의 선거제도는 국제사회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평양의 외교관들이 깨닫는다는 겁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아 북한 사람들은 뭘 할 때 비교해 보고 선택 개념이 없이 아이 때부터 이렇게 하향식인 운영 방식이기 때문에, 선거라고 하면 무조건 가서 찬성 투표하는 게 선거구나.”
태 전 공사는 북한은 전 국민이 9살에 소년단에 들어가 분단장을 뽑을 때부터 위에서 지명한 후보를 100% 찬성하는 훈련을 하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 권리나 정치에 대한 비판적 사고 능력은 갖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탈북민 김지성 씨는 이 때문에 탈북민이 한국에서 처음 투표를 하면 많이 혼란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지성 씨] “(처음에는) 딱히 확신이 안 서니까. 그러나 곧 깨닫죠. 나한테 이익을 줄 수 있는 집단, 더해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공동체를 위해 진짜 일을 할 수 있는 후보를 뽑는 거죠. 북한은 정해 놓은 사람들. 정부가 정한 사람들을 짜고 치고 뽑는 거잖아요.”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최종보고서에서 북한의 이런 선거제도가 심각한 인권 침해라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지방과 중앙 차원의 의회 등을 포함”하는 “근본적인 정치적·제도적 개혁을 지체없이 실행하라”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앞서 VOA에, 북한 당국이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21조를 명백히 위반하기 때문에 유엔이 이런 우려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이 직접 또는 자유롭게 선출된 대표자를 통해 자국의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보장하고 있다”과 한 만큼 유엔 회원국인 북한 정부도 이를 준수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난해 5월 실시한 보편적 정례검토(UPR)에서 자신들은 주민의 의사 표시의 자유를 헌법적 권리로 보호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습니다.
이번에 한국 총선에서 당선된 태영호 전 공사는 지난 2월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런 문제 때문에 자신의 지역구 당선은 북한 엘리트와 주민들에게 대의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줄 중요한 기회라고 강조했었습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만약 제가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면 그것도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다면…대한민국에는 북한 인권과 북 핵 문제의 증인이었듯이 북한에는 자유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된 대표자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과 엘리트들이 확인하는 순간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성큼 한 걸음 더 다가올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태 전 공사는 15일 총선에서 승리하며 그 첫 약속을 지켰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