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한국 통일부가 ‘제재 재검토’를 거듭 요구하는 데 대해 워싱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김정은 정권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된 만큼, 통일부 장관은 제재를 탓할 게 아니라 북한 정권에 문제를 제기하라는 촉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가 열악한 북한 민생을 대북제재와 결부시키며 해제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거론하는 데 대해 워싱턴에서는 미국과 엇박자를 내며 김정은 정권의 실정에 눈감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전면에 나서 남북 경협을 주장하며 미국의 기조와 다른 대북제재와 규제 완화를 연일 촉구하는 것은 미-한 간 이견을 부각시키고 북한만 이롭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해야 할 동맹국이 오히려 미국과 대북제재를 ‘악의 근원’으로 선전하는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면서, 이 장관에게 공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VOA에 “이인영 장관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제재를 해제하고 김정은 정권의 어떤 악의적 행동과 불법 행위를 공개적으로 용납하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FDD 선임연구원] “I would ask Minister Lee which sanctions he would like to lift and which malign behavior and illegal activities conducted by Kim Jong-un does he publicly want to condone?”
앞서 이인영 장관은 지난달 26일 공개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제재의 목적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삶이 어려워졌다면 이런 점들은 어떻게 개선하고 갈 것인가”라며 “분명히 평가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은 된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또 대북제재 장기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태풍 피해, 수해 등을 언급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해서 인도주의적인 위기, 그 가능성들이 점증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장관이 북한 주민을 어려움에 빠뜨린 원인으로 제재 등 여러 외부 요인만을 열거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정책 실패를 언급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맥스웰 연구원은 “이인영 장관은 북한인들에 미치는 제재의 영향을 재검토하는 대신, 김정은의 정책이 주민들의 고통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도록 주문해야 한다”며 “한반도의 모든 문제는 김씨 정권의 사악한 본질과 압제 시스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FDD 선임연구원] “Instead of Minister Lee's proposal to the impact of sanctions on the Korea people, he should demand a study of the impact of Kim Jong-un's policy decisions and the suffering of the people. It is the evil nature of the Kim family regime and the system it has designed to ensure survival through oppression that is the cause of all the problems on the Korean peninsula.”
이인영 장관은 이전에도 국제사회 공감대를 전제로 “비상업용 공공 인프라와 같은 분야로 제재 유연성이 확대되는 것도 바람직하다”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추진 의지를 피력했고, “국제사회가 (북한) 개별방문이 갖는 인도주의적 가치도 함께 고려해 제재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코로나19 확산세가 가라앉는 대로 금강산 개별관광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는 대북제재 이전부터 만성적인 식량난 등을 겪어온 북한의 극심한 인도주의 위기를 제재 탓으로 돌린 채, 문제의 근원인 김정은 정권의 실정에 대해선 언급을 꺼리는 한국 정부의 대북 ‘저자세’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어떤 제재도 인도적 지원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현 경제 위기는 제재 때문이 아니라 형편없는 경제 계획과 관리상의 무능함이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I am not aware of any sanctions that are preventing humanitarian assistance from reaching the people of North Korea. Much of the current economic crisis in North Korea today is caused by poor economic planning and managerial incompetence, the self-imposed isolation and lockdown the regime has implemented because of the coronavirus pandemic, crop failures and bad weather, and the collapse of China-North Korea trade caused by Pyongyang's closure of the border.”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자체적 고립과 봉쇄, 흉작과 악천후, 국경 차단에 따라 붕괴된 북-중 무역 등도 북한 주민을 어렵게 만들었다”며 “이 역시 모두 북한 정권이 자초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도 “주민들이 식량난을 겪는 와중에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등 군비 확충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북한”이라며 “북한인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한, 김정은의 정책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 “I think Kim Jong-un’s policies are what's directly responsible in terms of impacting the lives of ordinary North Korean people. North Korea is the one that spends billions of dollars in armaments, in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while people are experiencing food shortages.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국 담당 보좌관을 지낸 테리 연구원은 “과거에 한국 통일부는 북한이 국방비를 5%만 줄여도 식량난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며 “따라서 북한 스스로의 정책이 북한 주민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녹취: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 “I think South Korea's Ministry of Unification in the past has even noted that if North Korea just stopped or even just reduced their defense spending by 5%, they will take care of all of the food shortages in North Korea. So clearly, it's North Korea's own policies that's having an impact on the lives of North Korean people.”
실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 4월 ‘자강력 제일주의를 구현하여 주체적 국방공업의 위력을 다져나가야 한다’는 제목의 담화문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탕알(식량)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총알(무력)이 없이는 살 수 없다’며 귀중한 자금을 국방공업 발전에 돌리시였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북한 경제를 최악의 상황에 빠뜨리고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아사자를 발생시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건 대북제재가 아니라 바로 김정은의 이런 인식과 정책 실패라며, 김정은이 생각을 바꾸고 국가 운영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외부 지원이나 제재 해제도 북한의 인도주의 위기를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브루스 벡톨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통일부든 누구든 조사 결과 북한의 영양실조 실태를 파악했다면, 그런 상황은 5년 전, 15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992년 이래 지속된 북한의 영양실조 문제는 앞으로도 제재와 관계없이 계속될 것이며, 이는 군부와 엘리트들이 주민들을 차단한 채 모든 부를 독차지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녹취: 브루스 벡톨 앤젤로주립대 교수] “Let’s say, group from the Ministry of Unification decides to do a study on this and the result of this study is there are malnourished people in North Korea. Okay, there were malnourished people in North Korea five years ago, there were malnourished people in North Korea fifteen years ago, there were malnourished people in North Korea really starting in 1992. That's going to happen regardless of the sanctions because those people are cordoned off from the elite and from the military, which is always going to get the best stuff and the most money.”
이처럼 과거 남북교류와 대북지원이 활발히 이뤄진 시기에도 북한 주민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제재가 대폭 강화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벡톨 교수는 “한국 정부로부터 많은 자금을 공여받은 유엔과 비정부기구의 대북지원이 최고조에 달했던 김대중, 노무현 행정부 시절에도 지원은 일반 주민이 아닌 군부와 엘리트, 평양의 고급 아파트 건설, 최신식 무기 시스템 구입에 사용됐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며 “제재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은 늘 그렇게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벡톨 앤젤로주립대 교수] “You and I both know, even at the peak of the aid that they were getting from NGOs and from the UN during the Kim Dae-jung administration, for example, and the Roh Moo-hyun administration that all this stuff they were getting from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nd NGOs, which were largely subsidized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at most of that was still not going to the average North Koreans. We know this but those were going to the army, they were going to the elite, they're going to build fancy apartment buildings in Pyongyang, and to buy bright and shiny new military systems. They were not going to do the simple basics of maintaining your populations’ well-being. They just were not, they never were and they won't be whether the sanctions are enforced or not.”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유엔 제재가 북한 경제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주민을 고통에 빠뜨린 장본인은 김정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의 자체 제재(self-sanctions), 국경 봉쇄, 무역 차단, 최근 당대회에서 자인한 끔찍한 경제 부실 운영, 희소한 재원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전용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UN Sanctions have had an impact on the DPRK economy. But Kim’s self-sanctions, closing borders, cutting off trade flows, horrific economic mismanagement, as he conceded at the recent Party Congress, and allocating scarce resources to his missile and nuclear weapons programs are the main cause. Kim is the main culprit.”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2500만 명의 북한인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고, 그들은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며 “김정은과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자연재해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제재 탓을 하고 싶겠지만, 이는 원인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민의 건강과 안녕보다 핵 개발과 군사 현대화를 우선시하는 김정은의 의도적인 정책 결정 때문에 북한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FDD 선임연구원] “There is tremendous suffering among the 25 million Koreans in the north. They are facing terrible conditions. While Kim Jong-un (and some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ant to blame the natural disasters, COVID 19, and sanctions, these are not the reason for the people suffering. The people are suffering because of Kim Jong-un's deliberate policy decisions to prioritize nuclear development and military modernization over the health and welfare of the Korean people.”
맥스웰 연구원은 “김정은은 자국민에 대해 염려하지 않고 더욱 압제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 위협을 이용하고 있다”며 “이는 김정은이 미국보다 북한인들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FDD 선임연구원] “Proper prioritization of resources in North Korea would reduce the suffering. Kim Jong-un has no concern for the people and has in fact used the COVID 19 threat to impose even greater repressive measures on the population because he fears the Korean people in the north more than he fears the U.S.”
미국 정부의 주도로 강화된 대북제재를 계속 문제 삼는 동맹국의 태도에 누구보다도 강하게 반발해온 인사는 미 의회 의원들과 함께 제재법 입안에 직접 참여했던 제재 전문가들입니다.
2016년 시행된 미국의 ‘대북제재와 정책강화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모든 중요한 정책 문제와 관련해, 심지어 유엔 제재와 자국민의 시민적 자유를 희생해가며 김정은의 이익을 옹호하는 문재인 행정부의 경향을 고려할 때, 미국이 한국을 동맹으로서, 그리고 수만 명의 미군과 미군 가족들의 안전한 주둔국으로서 신뢰할 수 있는지를 바이든 행정부는 현실적으로 재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 “The tendency of the Moon administration to advocate for Kim Jong-un's interests on every important policy question, even at the expense of compliance with U.N. sanctions and the civil liberties of its own citizens, should cause the Biden administration to realistically reassess whether the U.S. can rely on South Korea as an ally, and as a secure host for tens of thousands of our service members and their families.”
더 나아가“부유한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과 이들이 제공하는 안보 혜택이 한국의 잘못된 안전감과 진지하지 않고 비효율적인 대북정책 추진을 뒷받침하는 건 아닌지 질문해봐야 한다”며 “나는 여기에 비관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 “We must ask if our presence in a wealthy South Korea, in addition to the security benefits it offers, undergirds a false sense of security and the unserious, ineffective North Korea policy Seoul continues to pursue. I am a pessimist.”
앞서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26일 ‘제재로 북한 주민의 삶이 어려워졌다’는 이인영 한국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 동의하느냐는 VOA의 질문에 북한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제재 때문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정책 때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북한은 국제 항공과 운송에 대한 국경 폐쇄를 비롯해 극도로 엄격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조치를 시행해 왔다”며 “이런 엄중한 조치들은 1718 위원회로부터 제재 면제를 신속히 승인받은 뒤 도움이 가장 절실한 이들에게 지원을 제공하려는 인도주의 기관과 유엔 기구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노력을 크게 저해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