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노고를 기리는 다양한 활동을 10년째 펼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이 있습니다.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홍보와 연례 오찬 행사, 학교 수업 등을 통해 참전용사들이 남긴 자유의 유산을 절대 잊지 말자는 캠페인을 펼치는 수전 기 씨가 주인공인데요, 기 씨의 활동은 최근 지역 언론에도 소개돼 주목을 받았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 세 명의 미군 참전용사가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전우들의 묘비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 중 두 명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한 명은 한쪽 다리를 잃은 채 목발에 의지하고 있고, 아예 두 다리를 잃은 또 다른 한 명은 휠체어에 앉아 있습니다.
이들은 1951년 한국전쟁 중 부상을 당해 미국 본토로 돌아온 존 헤치모비치 중사와 잭 맥도널드 상병입니다.
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기리다’(Honoring Korean War Veterans) 사이트(https://www.facebook.com/susankeewriter)를 운영하는 한국계 미국인 수전 기 씨는 최근 미국의 전몰 장병을 추모하는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이 사진을 올리며 한국전쟁 참전 영웅들의 ‘희생’을 강조했습니다.
사진 속 참전용사들이 전우들의 무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전우들을 그리면서 허공에 떠 있을 침묵의 두께는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의 희생으로 자신을 비롯해 많은 한국인이 자유를 얻었다는 겁니다.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주에 사는 기 씨는 2014년부터 최대 150명의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참전 증언과 영상,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녹취: 수전 기 씨] “I started interviewing them and videotaping them. And so I've interviewed over one hundred, probably about 150 war veterans across the U.S. and everything I post on my Facebook as a result of what I've learned from them and what I've researched, and that's the real story.
한국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1966년생인 기 씨가 참전용사들에게 관심을 가진 건 전쟁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던 가족 때문이었습니다.
과거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평양의 기독교 집안 출신인 아버지 가족은 해방 뒤 공산당의 탄압으로 땅과 재산을 잃고 한국 전쟁 발발 전 가까스로 남한으로 탈출했습니다.
기 씨는 1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서부터 이런 아버지 가족의 사연과 어머니가 피란길에서 미군의 도움으로 생존했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녹취: 수전 기 씨] “she does remember seeing American soldiers and seeing American planes and thinking, wow the good people came to save us…that is the same sentiment and the same simple but powerful sentiment that I feel today.”
어머니는 1·4 후퇴 때 중공군의 폭격으로 가족이 사지에 몰렸을 때 미군 장병들과 미군 군용기들을 보며 “선한 사람들이 우리를 구출하러 왔다”며 감격해 했고, 지금은 자신이 참전용사들을 만나며 어머니가 느꼈던 그런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는 겁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뒤 IBM 등 주요 기업의 임원으로 활동했던 기 씨는 지루한 회사 생활을 떠나 의미 있는 삶을 찾던 중 2012년에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를 방문했다가 제2의 인생 임무를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80대, 지금은 거의 90대가 된 백발의 노인들이 휠체어에 의지해 사는 모습을 보며, 지척에 살면서도 이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았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참전용사들에게 죄송했다는 겁니다.
[녹취: 수전 기 씨] I stood in front of a group of veterans and they were all in their 80s and now they're almost 90… I felt so embarrassed and so sorry that it took me so long to recognize this.
기 씨는 참전용사들이 모두 한국계인 자신을 크게 환대했고 그들이 전쟁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며, 전장에서 찍은 사진과 지도를 가져와 설명하는 등 역사의 산증인으로 자신에게 한국전쟁을 얘기해 줬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들의 희생 없이는 자신도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다’ 사이트뿐 아니라 연례 감사 오찬 행사를 개최하고 한국 정부와 연계한 메달 수여 행사를 진행하며 지역 중고등학교에 한국전쟁의 의미를 알리고 참전용사들의 강의를 주선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고 미국뿐 아니라 영국, 호주, 터키 등 세계 여러 나라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팔로우하며 연락을 취해와 다양한 전쟁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는 나눔 공간으로 진화했다고 기 씨는 설명합니다.
[녹취: 수전 기 씨] “I have veterans following me from a lot of different countries, not just the US but United Kingdom and Australia and some in Turkey, a lot of different places,”
기 씨는 최근엔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미군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이들에 대해 관심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전몰 장병 가족들의 모임인 ‘골드스타 패밀리’와 협력하며 관련 행사에서 만난 한국전쟁 미군 실종자 가족의 사연을 들으며 기 씨는 억장이 무너졌다고 말했습니다.
미군 실종자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실종됐을 때 대부분 어린아이거나 아기로, 한국의 전쟁고아들처럼 사실상 미국인 고아가 됐으며, 편모슬하에서 자라며 평생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살았다는 겁니다.
[녹취: 수전 기 씨] “they were just children or babies when their father went missing. And it just breaks my heart that they're American orphans you know, I mean, they have their mother but they were fatherless and they lived a whole life with a hole in their heart because of what happened in Korea.”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4월 12일 기준으로 아직 조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한국전쟁 미군 실종자는 7천 559명에 달합니다.
기 씨는 한국전쟁에 미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다 적의 공격으로 격추된 뒤 실종된 해리 무어 당시 대위의 유해 신원이 극적으로 확인돼 오는 7월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안장식이 열린다며, 가족의 초청을 받아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한국과 전 세계에 사는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남긴 자유의 유산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수전 기 씨] “The legacy of our war veterans is freedom for millions of Koreans that live in South Korea and all over the world. That's their legacy they gave us that. Without them saving us, we would be just like the people in North Korea today. We be prisoners to that tyrant”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구출하지 않았다면 한국인들은 자유가 없는 지금의 북한 주민들처럼 폭군의 포로가 됐을 것이란 겁니다.
기 씨는 이런 이유 때문에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업적을 계속 기려야 한다며, 이들의 유산인 자유가 북한으로도 흘러가 북한 주민들도 한국인들처럼 자유와 번영을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