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최고 영웅에게 수여하는 무공훈장 수훈자들 가운데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의무병을 재조명했습니다. 김동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에서 `메달 오브 아너’는 미 의회 이름으로 대통령이 군인 유공자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입니다.
각 군 마다 문양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오각별 모양의 훈장을 토대로 하며, 미국이 영국과의 전쟁에서 독립을 쟁취한 초창기 13개 주의 별을 대표 기장과 깃발로 삼고 있습니다.
또 미군 소속으로 전투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직무 범위를 넘은 혁혁한 용맹을 입증한 군인에게만 수여되지만, 수훈자의 70% 이상이 전사한 용사들에게 수여되는 만큼 충족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미 국방부, 한국전 참전 의무병 드워트 하사 재조명
“중공군과 총격전 중 부상병 구하다가 전사”
지금까지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이 훈장을 수여받은 용사는 3천500여 명으로, 미 국방부는 매주 월요일 한 사람 씩 선정해 이들의 생전 공로를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는 5일 이번 주 인물로 한국전에 의무병으로 참전해 전사한 리처드 드워트 해군 하사의 일화를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미 국방부 선정 '메달오브 아너 금주의 인물' 바로가기
한국전쟁 발발 두 달 만에 19살 해군 의무병으로 참전한 드워트 하사는 미 제1해병사단 1 의무대대에 복무한 이듬해 해병대 전력 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7사단에 전속됐습니다.
1951년 4월 5일 미 해병대 7사단은 38선 이북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중공군 117사단과 고지쟁탈전을 벌였는데, 기관총 사격을 받아 선두에 있던 아군 4명이 총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맹렬한 기관총 사격을 피해 아군 전투병력이 흩어진 가운데 드워트 하사는 즉시 부상병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심각한 총상을 입은 해병의 몸을 끌어 당겼다고, 국방부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드워트 하사는 다리에 총상을 입었지만 멈추지 않았고, 부상병을 총격이 닿지 않는 장소까지 끌고 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어 곧바로 부상병들이 쓰러진 장소로 달려가 또다른 1명의 부상병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전우들은 드워트 하사의 다리 부상 때문에 다른 의무병의 지원을 요청하려 했지만 드와트 하사는 이를 거부했고, 나머지 2명의 부상병도 데리러 또다시 총격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세 번째로 달려간 해병은 어깨에 총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이내 전사한 사실을 인지한 드워트 하사는 곧바로 마지막 부상병의 절규를 듣자마자 해당 장소로 갔다가 총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미 국방부 “자신을 돌보지 않고 모든 것 바친 비범한 자”
미 국방부는 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 나아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비범한 사람들도 있다며, 드워트 하사는 후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금주의 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드워트 하사의 어머니는 아들을 대신해 이듬해인 1952년 5월 27일 최고무공훈장인 `메달 오브 아너’를 수여받았는데, 한국전쟁 참전 해군 장병 가운데 두 번째 수상자였습니다.
현재 미 동북부 로드 아일랜드주 뉴포트에 위치한 드워트 해군 외래진료센터는 그의 공로를 기려 명명됐습니다.
VOA 뉴스 김동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