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하노이 2차 정상회담 결렬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에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 담화 발표의 주체도 달리하고 있는데요, 지난 1년여 간 북한의 주요 대미 담화를 박형주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난 후, 북한 측에서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었습니다.
최 부상은 평양 주재 외교관과 외신을 상대로 연 회견에서 “미국과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며 ‘핵·미사일 실험 중단 유지 여부’ 등을 김정은 위원장이 곧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녹취:최선희 부상] “지금과 같은 미국의 강도적 입장은 사태를 분명 위험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 최고 지도부가 곧 자기 결심을 명백히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달 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미국의 기존 협상 방식을 비판하며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는다면 한 번 더 회담할 용의가 있다며 ‘연말 시한’을 제시했습니다.
또 ‘더 이상 제재 해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협상 의제 전환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녹취:조선중앙TV] “적대세력들의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입니다.”
6월 말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에 이어 10월초 스웨덴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도 진전이 없자 북한은 ‘협상 중단’을 시사하는 압박성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해 10월 6일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서, 미국이 자신들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 조처’를 하기 전에는 비핵화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언급한 생존권과 발전권은 체제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 모두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또 ‘실제적인 조치를 취해야 협상하겠다’는 것은 미국에 먼저 상응 조치에 나설 것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됐습니다.
즉 자신들은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실험 중단과 같은 선제적 조치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랑거리’를 안겨줬는데, 미국은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입니다.
북한은 11월~12월 사이 이런 주장을 담은 대미 담화를 10 차례 넘게 쏟아냈습니다.
특히 이 기간에는 과거 대미 협상을 담당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을 포함해 김명길 순회대사, 김성 유엔대사, 리태성 미국담당 부상 등 이른바 ‘대미 라인’, 박정천 군총참모장 등 군 인사, 김정은 위원장의 직속 기관인 국무위원회 대변인 등이 총동원됐습니다.
이들 담화에는 한결같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위한 조속한 결단과 ‘새로운 계산법’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연말 시한’은 사실상 무의미하게 지나갔고, 김정은 위원장은 당 중앙위 전체회의를 통해 대미협상 장기화와 대미 강경 노선을 예고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미국과의 장기적 대립을 예고하는 조성된 현 정세는 우리가 앞으로도 적대세력들의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미-북 협상이 여전히 장기 교착 상태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새로운 담화 발표 주체들도 등장했습니다.
먼저 지난 3월 30일에는 그동안 북한 주요 매체에서 한반도 거론된 적이 없는 외무성 신임 대미협상국장 명의의 성명이 발표됐습니다.
당시 성명은 폼페오 국무장관이 국제회의에서 ‘대북 외교, 경제적 압박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 것에 대한 비난 성격이었지만, 북한이 ‘대미협상국장’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공개하면서 간접적으로 대화 의지를 나타냈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지난 1월 외무성 수장으로 발탁된 군 출신의 리선권 외무상도 싱가포르 정상회담 2주년인 지난달 12일 외무상 임명 이후 처음으로 대미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담화에서 ‘다시는 아무 대가 없이 트럼프 대통령에 치적 보따리를 안 주겠다’며,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미 군사 위협을 관리할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담화에 대해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여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미국과‘더 나은 거래를 위한 압박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올해 가장 주목되는 담화 발표 주최는 최근 연이어 개인 명의의 대남, 대미 담화를 내고 있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입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3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코로나 협력’의사를 담은 친서를 보낸 사실을 공개하며, 지도자 간 친분보다 양국 관계 발전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최근에도 3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 등을 담은 담화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김정은 위원자의 ‘대미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