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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백악관 관리 “미국, 북한 급변사태 장기간 대비...쿠데타·핵무기 유출 등 여러 시나리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미국은 북한 급변사태 대응 계획을 오래 전부터 수립해 왔으며 한국과도 긴밀히 조율해 왔다고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이 밝혔습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국무부와 백악관에서 북 핵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던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23일 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 내 군사 작전에서 인도주의 지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비상계획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쿠데타와 핵무기 유출 등 다양한 시나리오로 구성돼 있지만, 불확실성이 너무 커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을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제네바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핵 문제를 놓고 한창 협상 중이셨던 것으로 아는데요.

세이모어 전 조정관) 맞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제네바에서 북한 관리들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공식 발표를 듣고서야 처음 알게 됐습니다. 당시 북한 협상단도 사전 통지를 전혀 받지 못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발표 하루 전날 그들과 만났을 때도 지도자 사망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요. 김일성 사망 발표 직후 북한 외교관 리용호(나중에 외무상)를 잠깐 만났는데 엄청나게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제네바에서 협상하던 미국과 북한 관리들 모두에게 완전히 뜻밖의 소식이었던 겁니다. 북한인들 모두 장례 절차를 위해 평양으로 돌아갔습니다.

기자) 그래서 협상이 갑자기 중단됐었죠?

세이모어 전 조정관) 그 기간 우리는 미-북 간 우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당시 미국 측 회담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 특사가 제네바주재 북한 대표부로 가서 조의문에 서명했습니다. 북한은 이를 존중의 신호로 받아들였고 이후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해 협상이 재개됐을 때 긍정적인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모두 생전에 신변 이상에 대한 소문이나 보도가 많았는데요. 그때마다 미국 정부도 사실 확인 노력을 기울였겠죠?

세이모어 전 조정관) 김일성보다 김정일에 대한 소문이 정말 많았었죠. 지나친 음주와 흡연으로 건강이 매우 안 좋다는 소문, 밤늦게까지 파티를 즐기는 등 생활 방식이 매우 건강하지 않다는 소문, 이런 온갖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기자) 그래도 지도자 신변에 대한 문제는 미국 정부가 정보 채널을 총동원해 알아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세이모어 전 조정관) 그런 시도를 계속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대북 첩보 역량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습니다. 북한 지도자의 건강에 관한 한 한국 정부의 정보 역량 역시 특별히 우수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워낙 폐쇄 사회인 데다 지도자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해 정확한 정보를 얻기 매우 어렵습니다.

기자) 가령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크게 불거졌을 때처럼, 북한 지도부의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면 밟아야 할 미국 정부의 사전 정책 지침 같은 게 있습니까?

세이모어 전 조정관)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는 김정일이 계승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김정일은 승계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정부 요직을 거쳤고요. 따라서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과도기 동안에는 불확실성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권력 이양이 순조롭게 이어진 거죠. 하지만 김정일이 죽었을 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그의 아들 김정은은 어린 나이였고 후계자 수업 기간도 길지 않았으니까요. 심지어 그의 고모부 장성택이 권력의 실세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었죠. 따라서 북한의 권력 구도나 정치가 어떻게 달라질지 미국도 알지 못해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김정은이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요.

기자) 그렇다 해도 미국 정부가 단순히 “지켜만 보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북한의 권력 구도 변화에 대비한 광범위한 논의를 하거나 이미 수립된 비상 지침을 꺼내보지 않았을까요?

세이모어 전 조정관) 미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긴급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가령 북한에서 소요가 발생한다든지, 평양에서 쿠데타가 발생한다든지, 이런 변화를 상정한 비상 계획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이 사망했을 당시에는 이런 계획을 실행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승계 과정이 순조로웠고 큰 혼란이 벌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기자) 그러니까 미국 정부가 정권 붕괴 등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한 구체적인 비상계획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이해하면 되는 겁니까?

세이모어 전 조정관) 그렇습니다.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은 한국과 협력해 북한 정권의 붕괴에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을 문서화 해놨습니다. 물론, 이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엄청난 불확실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평양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비무장지대(DMZ) 북쪽의 북한군이 미국과 한국군의 진입을 허용할지, 아니면 저항할지, 이처럼 정권 붕괴의 경우 수많은 불확실성이 따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비상계획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현실을 반영해 수정돼야 할 겁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오랫동안 고려해왔습니다. 1990년대 북한이 심한 기아에 시달릴 때 이미 그런 계획을 준비했습니다.

기자) 미국이 한국과 협력해 비상계획을 수립했다고 하셨는데, 일본이나 혹은 중국, 러시아와도 그런 논의를 한 적이 있습니까?

세이모어 전 조정관) 북한 관련 비상계획을 세우는데 중국이나 러시아를 참여시킨 적은 없습니다. 외교적 대화를 나눈 적은 있지만요. 하지만 한국과는 매우 구체적으로 계획을 함께 세웠습니다. 물론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함께 참여해야 하는 작전이기 때문에 양측이 매우 상세한 비상계획을 수립합니다. 일본과도 어느 정도 논의를 했는데 얼마나 깊이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위기 발생 시 주일미군을 사용할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정권 붕괴 시나리오와 관련해 난민 문제 등 인도주의 구호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오갔습니다. 북한의 군사 물자와 핵자산 등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기자) 과거 한국 정부가 비상계획 거론에 난감해 했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요. 미-한 간 조율은 원활하게 이뤄졌습니까?

세이모어 전 조정관) 한국은 걱정을 했고 그럴 만했습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유출될 경우 평양에서는 정권 교체 준비로 받아들일 테니까요. 사실이 알려지면 남북관계를 훼손할 것이라는 데 대해 한국 정부가 불안해한 것은 이해할 만합니다.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북한의 비상사태 발생으로 인한 잠재적 위협을 인식하고 있고 그런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선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똑같은 이유로 중국 정부도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상당히 꺼렸습니다. 그런 사실이 새나가면 북한이 이를 중국의 적대 행위로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자) 하지만 한국이 적어도 물밑에서는 그런 계획을 세우는 데 적극 협조했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세이모어 전 조정관) 현 한국 정부와는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전문 관리급에서 활발히 협력했습니다.

기자) 김정은 ‘위중설’의 사실 여부를 떠나 앞으로 벌어질지 모르는 북한 지도부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세이모어 전 조정관) 김정은이 정상적 기능을 못 하거나 사망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므로 현재로서는 지켜보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권력 승계와 관련해서도 알 수 없으니까요. 저는 여동생 김여정이 섭정하는 식으로 무난히 권력이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따라서 미국,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은 북한이 새 지도자를 발표할지, 고위층 권력은 어떻게 분할될지 지켜볼 겁니다. 상황을 주시한 뒤 이것이 위협이 될지 기회가 될지 결정해야 합니다.

기자)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데요. 중국의 개입이 가능할까요?

세이모어 전 조정관) 북한 정권이 붕괴될 때 중국이 질서 유지를 위해 남쪽으로 군대를 내려보내는 상황을 저는 반대합니다. 중국은 남북통일 의지가 없는 친중 정권을 세우려고 할 것이니까요. 따라서 중국의 개입은 긍정적인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하지만 북한도 그런 상황을 반기지 않을 것이고, 북한과 중국 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국 관점에서도 매우 위험한 작전이 될 것인 만큼 중국이 그런 결정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자) 가정적 상황이지만, 그렇게 중국이 선수를 치기 전에 미국과 한국이 새 북한 지도부에 먼저 접근해 북한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너무 섣부른 제안인가요?

세이모어 전 조정관) 만약 김정은이 죽고 누구든 권력을 계승한다면-저는 그의 여동생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새 지도부에 조의 서한을 보내고 조기 회동을 요청할 겁니다. 솔직히 저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일 것으로 우려하진 않습니다. 북한은 미국이나 중국, 한국 등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데 일치돼 있으니까요. 적어도 김정은 사망 직후에는 말이죠. 북한 엘리트층도 외부 세계에 대해 그런 식으로 공동 대처할 겁니다. 하지만 새 지도자는 김정은처럼 지배적인 입지를 누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권력 분점 구도가 될 수 있고 정책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일인 독주체제가 계속되지 않으면 그만큼 과단성 있는 행동을 하기 어려워지겠지만 정권 붕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봅니다.

기자) 김여정에 대한 정보를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세이모어 전 조정관) 김여정을 직접 만난 미국인에게서 그녀가 매우 영리하고 능력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이가 젊고 여성이지만 저는 현재로서는 김여정이 새 지도자로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데 걸겠습니다. 김정은의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적어도 섭정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조선 시대의 수렴청정이라는 전통이 재현될 수 있는 겁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조정관으로부터 북한의 전 지도자 사망 당시 상황과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한 과거 미국 정부의 정책대응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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