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한국에서 불거진 ‘북한 원전 추진 의혹’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전 북 핵 사찰 총책임자가 한국 정부에 관련 계획의 전모를 밝힐 것을 재차 촉구했습니다. 향후 협상과 비확산체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관련 서류와 북한에 건넨 USB 내용이 모두 공개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을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 원전 추진 의혹이 투명하게 해명돼야 한다고 거듭 촉구하고 계신데요. 어떤 점이 미진하다고 보십니까?
하이노넨) 공개된 (6쪽 분량) 문건은 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배경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문건 외에도 산업부 컴퓨터에 수백 건의 문서가 더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어딘가에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다는 뜻입니다. 이 계획이 단순히 내부용이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실제 협상의 일부였다면 이미 어떤 절차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북한 원전 추진과 관련해선 사전에 준수해야 할 의무가 정말 많습니다. 6자회담 당사국들에 일일이 통보해야 하고, 또 북 핵 프로그램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금지돼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큰 영향을 끼칠 일을 어떤 나라가 독자적으로 결정해서 실행할 순 없습니다.
기자) 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초 공개한 문건에서 기술적으로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까?
하이노넨) 비무장지대(DMZ)라는 매우 좁은 지역에 원전을 건설하는 매우 이상한 시나리오가 담겼다는 점입니다. 서울에서 불과 40km 떨어져 있는 데다 냉각수를 구할 수도 없는 DMZ에 원전을 지을 수 있는 장소는 거의 없습니다. (남북 간) 협력과 휴전선 인근에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한다는 정치적 측면을 내세울 수도 있겠지만, 원전은 일단 건설되면 안전과 안보에 훨씬 광범위한 파장을 미치는 시설입니다.
기자) 백지화한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을 재개해 남한에서 북한으로 전력을 송전하는 세 번째 시나리오는 어떻습니까? 현실성이 있나요?
하이노넨) 이 방식은 북한이 참여해 남북한이 뭔가 공동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원전에서 나오는 전력을 일방적으로 북한에 보내는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전력망은 그 정도 규모의 전력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합니다. 따라서 송전에 앞서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전력망 업그레이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기자) 이렇게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비핵화를 전제로 그저 ‘상상’해 본 것이라는 게 한국 정부의 설명인데요.
하이노넨) 그래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밝혀야 한다는 겁니다. 공개된 문건에 여러 설명이 담겨 있습니다만, 과연 이게 원전 추진 계획의 전모를 보여준 것인지 말입니다. 가령 앞서 언급한 비무장지대(DMZ)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시나리오 중 하나로 제안했다면,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좁은 땅에 과연 안전한 장소가 있는지 누군가는 신중하게 연구했을 겁니다. 문건이 실제로 그저 내부용이었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건설 후보지를 들여다보고 동해나 서해 등 냉각수를 얻을 수 있는 안전한 곳들을 식별해 봤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은 바다나 매우 큰 강 인근에 원자로를 건설하니까요. 심지어 영변의 소규모 실험용 경수로도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충분한 물이 필요합니다. 영변 현지에 단순한 댐을 건설했지만, 최종 시설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이 원자로 가동을 시작할 때는 훨씬 강력한 (냉각수 공급) 시설을 갖출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전에 대한 우려가 생기니까요.
기자) 북한 원전 추진 의혹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더 명확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보시죠?
하이노넨)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건 공개된 문건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원전 추진에 관한 내부 문건이 분명히 더 있을 겁니다. 또 북한에 전달한 USB에 무엇이 담겼는지, 그리고 미국에도 줬다는 USB엔 어떤 내용이 포함됐는지도 밝혀야 합니다. 그 안에 북한과 이런 종류의 핵 협력 계획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어느 시점에 원전 추진과 같은 핵 협력을 하려면 사전에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긴 어렵습니다. 가령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채로 금호지구 등에 원자로를 건설할 순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전 건설은 관련국들의 동의도 얻어내기 매우 힘든 사안입니다.
기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는 먼저 핵을 폐기해야 하는데, 그런 계획도 미리 세워놓았는지 밝혀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하이노넨) 그 과정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역할이 포함돼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NPT에서 탈퇴한 북한에 원전을 건설할 수 없습니다. 물론, 파키스탄과 인도도 NPT 회원국이 아니지만 두 나라 원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조처협정(세이프가드)에 따른 사찰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핵보유국에 핵 관련 시설을 추가로 지어주는 파키스탄, 인도 방식에 누군가 찬성한다면 그건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비확산 체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매우 중요한 정책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파키스탄과 인도는 되는데, 왜 북한은 안 되느냐는 논리에는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하이노넨) 인도와 파키스탄이 일종의 선례가 된 것은 맞습니다만, 두 나라와 북한의 핵 개발 방식은 엄연히 다릅니다. 북한은 두 나라와 달리 NPT에 가입한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NPT에서 탈퇴한 뒤 핵을 개발했습니다. 이건 엄청난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 어떤 나라든 안보를 이유로, 기존에 확보한 핵 역량은 그대로 유지한 채 NPT를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구실을 제공할 수 있는 겁니다. 이로 인해 비확산체제를 훼손하게 될 겁니다.
기자) 1994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금호지구에 건설을 시작했던 경수로도 핵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왜 현 정부의 원전 추진만 비난하느냐는 반발이 나왔고요.
하이노넨) 플루토늄을 생산하니까 분명히 그럴 수 있죠. 그래서 북한에 IAEA의 세이프가드를 받아들이도록 한 뒤 폐연료봉을 관리한 것이고요. 하지만 KEDO 프로젝트가 추진됐던 시기엔 북한이 NPT 가입국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시엔 북한이 NPT를 탈퇴할 이유가 없다고들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탈퇴하고야 말았지요. 당시 KEDO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북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금호지구에 건설 중이던 경수로의 안전 측면에 대한 지식과 핵 시설 부품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역설계를 통해 이런 지식을 현재의 실험용 경수로 건설에 적용했습니다. 1994년에는 경수로 건설이 평화적 목적이라고 느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겁니다. 따라서 북한 원전 건설이 추진된다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런 측면을 철저히 고려해야 합니다.
기자) 그런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이노넨) 그래서 원전을 지어줄 때 세이프가드 협정이 따라가는 것이죠. 가령 호주처럼 우라늄 수출국은 우라늄이 핵 개발에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을 합의안에 넣고, 의무 위반 시 수입국으로부터 관련 품목이나 심지어 원전 자체를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이런 조항을 넣는 건 흔한 일입니다. 게다가 북한의 경우엔 이런 절차를 핵무기 폐기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습니다.
기자) 한국에선 북한 원전 추진 의혹과 관련한 정치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북한 핵 문제라는 국제적 이슈 차원에서 어떤 제안을 하시겠습니까?
하이노넨) 한국 정부가 모든 서류를 공개해 이번 사안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쪽 자리 문건도 유용하긴 하지만 이면에서 뭔가 연구가 진행됐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어떤 속임수나 비밀도 있어선 안 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얼마나 깊게 논의된 것인지, 북한과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는지 등에 대해 관련 서류를 좀 더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미래의 협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이 문제에 대한 지나친 추측보다는 정확한 사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어떤 일이 진행됐고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봐야 합니다. 공개된 문건은 이번 일의 전모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6쪽 자리 문건만 접했을 뿐 근거 자료를 아직 다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 사안은 아직까진 한국 국내 문제이지만, 만약 (북한과의) 모종의 협상이 진행됐다면 유엔 안보리가 관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6자회담 당사국들에도 통보가 됐어야 하고요.
지금까지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으로부터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는 ‘북한 원전 건설 의혹’의 국제적 파장과 해결 방안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