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지난주 정상회담에서 인권과 법치 등 민주적 가치를 강조한 것은 두 나라 관계의 정체성과 깊이를 나라 안팎에 재확인시켜준 것이라고 전직 고위 관리들이 말했습니다. 미국 의회가 초당적으로 이런 가치에 기반한 미국의 외교 지도력을 지지하는 만큼 한국에 대한 참여와 역할 증대 요구도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러시아와 한국 주재 대사를 지낸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차장은 25일 VOA에, 미한 정상이 지난주 공동성명에서 민주주의 가치의 중요성에 동의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버시바우 전 차장] “I think it's encouraging that's the two presidents were able to agree on the importance of democratic values because I think this is a strong basis for our alliance. And I think it's a strong basis on which to engage with other nations in the Indo Pacific region.”
민주주의 가치는 미한 동맹의 강력한 기반이자 인도태평양 지역 내 다른 국가들에 관여하는 강력한 기초로, 두 정상이 이를 강조한 것은 긍정적이란 겁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지난 21일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민주주의’를 5회, ‘가치’와 ‘인권’을 각각 4번씩 언급하며 “미국과 한국은 국내외 민주적 규범, 인권과 법치의 원칙이 지배하는 지역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심각한 인권 문제에 관해서는 “북한 내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협력에 동의한다”고 짤막하게 밝혔지만, 별도로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은 채 적어도 세 단락에 걸쳐 다원주의와 개인의 자유, 법치, 표현의 자유 등 민주적 가치의 중요성을 자세히 나열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국익과 남북 관계 개선을 이유로 민주적 가치에 대한 공개적 언급을 꺼렸던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공동성명 내용에 합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버시바우 전 차장은 이에 대해 “미한 양측이 서로의 우선순위를 모두 반영하며 통일된 기반 위에서 나아갈 수 있는 절충안을 찾은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버시바우 전 차장] “I think clearly there are sharp differences when it comes to North Korea, or China on values issues. But I think this is a way of reducing daylight between the two allies that could be exploited, either by Kim Jong Un or by Xi Jinping…so it's a compromise that I think, reflects both sides' priorities, and allows us to move forward on a unified basis.”
미국과 한국이 가치문제에 있어서 북한이나 중국에 접근할 때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이런 합의가 김정은이나 시진핑에 의해 이용당할 수 있는 미한 동맹 사이의 빛 샐 틈을 줄이는 길”이란 겁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은 우선순위인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를 받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가치 외교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버시바우 전 차장을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국무부에서 가진 외교 정책 연설에서 ‘미국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의 가치에 뿌리를 둔 외교’를 천명한 후 미국 고위관리들은 자유와 인권, 법치 등 모든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는 가치에 기반한 외교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번 미한 정상회담이 “매우 성공적”이었다며, 민주적 가치와 관련해서도 나라 안팎에 중요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평가했습니다.
[힐 전 차관보] “you're not just talking to the other side you're talking to your own people, and I think President Biden is making clear to the American people that his foreign policy, this is only the second summit that he's had at the White House. So I think some of these issues are related to broader goals that the administration has which is to make the American people understand that the Trump era is over and we have certain values,”
정상회담은 단지 상대방뿐 아니라 자국민에게도 보내는 메시지가 있으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백악관에서 갖는 두 번째 정상회담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트럼프 시대는 끝났으며 자신의 외교정책에 분명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로도 활용했다는 겁니다.
힐 전 차관보는 또 미한 관계가 단순한 공동의 적에 대응하는 편의적 관계 이상으로, 북한의 비핵화 요구뿐 아니라 민주적 가치에 기반해 많은 것을 공유하기 때문에 미한 동맹 사이에 북한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공동성명이 이런 미한 동맹의 깊이를 반영했기 때문에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겁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미한 정상회담을 전임 트럼프 행정부 때 손상된 가치에 기반한 관계 회복에 초점을 뒀다고 평가했습니다.
[킹 전 특사] “There have been a lot of strains on that relationship during the previous administration... I think the relationship needed to be put back on a solid foundation of what it was before the Trump administration came in.”
미한 관계가 전임 정부에서 주한미군에 대한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 문제 등으로 많이 손상됐기 때문에 두 정상 모두 양국 관계를 트럼프 행정부 이전의 굳건한 토대로 되돌릴 필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킹 전 특사는 관계 개선이란 우선 목표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는 부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런 개선된 관계를 토대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이견을 한국 정부와 논의하는 등 의제를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킹 전 특사] “The statements that have been made by the secretary of state in a hearing before the House Foreign Affairs Committee was asked whether the United States would appoint a special envoy for North Korea human rights, and he said yes. And other administration officials have said this is something that will happen.”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의회 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북한인권특사의 조속한 임명에 동의한다고 밝혔고, 다른 관리들도 이를 말하는 만큼, 출범 넉 달 밖에 되지 않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조셉 디트라니 전 국무부 대북협상 특사는 공동성명과 더불어 두 정상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린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 미국 국방장관과 함께 참석한 것 등은 모두 미한 동맹의 민주적 가치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디트라니 전 특사] “This is who we are and this is what we believe in and, you know, I think anyone can interpret that as they wish, but it's pretty clear that we have shared common values.”
두 정상이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법치와 표현의 자유 등 인권과 민주적 가치를 강조한 것이 바로 미한 동맹의 모습이고, 이는 두 나라가 믿고 공유하는 공통의 가치를 명백히 보여준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두 정상이 첫 회담에서 이견을 피했을 뿐 향후 북한과 중국에 대해 인권과 민주적 가치 언급을 기피하는 한국에 대해 미국의 요구와 압박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특히 미국 의회에서는 이런 기류가 초당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레고리 믹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25일 ‘이글 법안’으로 불리는 ‘미국의 국제 지도력 및 관여 보장’ 법안(Ensuring American Global Leadership and Engagement Act, EAGLE Act)을 발의하고 ‘아시아 소사이어티’ 행사 연설을 통해 “핵심 가치에 기반한 지도력 발휘”와 동맹과의 연대 강화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믹스 외교위원장] “We have to exercise leadership on the foundations of our core values…America's greatest superpower in the global arena is our alliances, and we must reinvigorate that system and reassure our alliances and partners, not just with words, but through action.”
믹스 위원장은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이런 점을 강조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이런 가치에 기반한 외교를 추구하는 것을 강력히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계인 영 김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도 25일 미국과 한국의 민간단체들(애틀랜틱 카운슬/동아시아재단)이 주최한 화상토론회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같은 핵심 가치들을 공유하고 국제법에 기초한 질서 보호를 모색한다”며 미한일 3각 공조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