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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후계 구도 I] 폭풍 전야의 북한, 기로에 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서 셋째 아들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후계 구도 관련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런 중국 방문과 오는 9월 초 열릴 예정인 당 대표자회에가 모두 후계 구도 확립과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은 북한의 후계 구도와 관련한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후계 구도 확립에 분주한 북한의 현 상황을 전해드립니다.

해설 : 2008년 여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언론들은 앞다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한다. 한국과 미국, 중국 정부에도 비상이 걸렸지만..누구보다 당황하고 비상사태에 돌입한 건, 북한 당국이 아닐까…

우드로 윌슨 센터 방문연구원으로 있는 북한대학원 대학교 류길재 교수.

류길재 교수 (그렇습니다. 2008년도 8월에 건강 이상 징후가 나타났을 때 가장 놀란 건 북한 군부라고 볼 수 있겠죠. 북한 정치체제가 1인 독재체제기 때문에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된 그런 체제기 때문에 독재자의 건강, 독재자의 위상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국가체제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고 또 1인 독재체제기 때문에 후계구도에 대해서는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그것이 제도화도 돼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권력 엘리트들 입장에서 볼 때는 지도자의 건강 이상은 곧 체제의 명운과 정권의 안위가 좌우되는 그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아마 상당히 당황하지 않았을까.. 그러기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이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되고 나서부터 권력 구도가 급속도로 부상하게 됐던 것이고) 1’05”

해설 : 김정일 위원장이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면서 북한에서 후계 구도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다면 북한은 언제부터 후계 구도 작업에 들어갔을까..

한국통일연구원 박영호 박사의 얘기.

박영호 박사 (김정일 후계 구도를 생각하게 된 것은 2008년 여름 갑자기 건강상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죠. 만약 건강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현재와 같은 북한 체제 성격상 후계 구도를 빨리 진행시켜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았을 겁니다) 23”

해설 : 하지만 후계 구도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이보다 훨씬 이전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

정성장 (북한이 후계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인 것 같습니다. 탈북자들의 증언이라던가 여러 근거에 기초해 볼 때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차남 김정철을 후계자로 염두에 둔 그런 발언을 했다..그런 증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는 김정철이 상대적으로 유리했는데 2006년 경에 결정적으로 김정은으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33”

해설 : 실제로 지난 2000년에서 2004년 사이 당시 북한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간부사업을 받았던 탈북자 김민규의 말이다.

김민규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고영희를 평양어머니로 소개 선전하는 사업이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당시 중앙당사 내부에 새로운 구호가 내 걸리게 됐는데 구호 내용이 김정철 동지의 유일사상 체계를 확립할 때 대하여, 세울 때 대하여.. 라는 내용이었거든요..당시 김정일의 자식관계도 정확히 알지 못하던 상황에서 사람들은 김정철이가 맏아들일 것이다..맏아들을 후계자로 이제부터 준비시키는 거로 봤죠) 41”

해설 : 이렇게 2000년 초부터 중반까지는 차남 김정철이 두각을 나타냈는데, 과연 3남인 김정은은 언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까..

다시 정성장 박사의 얘기.

정성장 박사 (2006년 12월 김정은이 김일성 군사종합 대학을 졸업을 합니다. 그런데 이 시점을 북한 내부 문건이 상당히 중요하게 소개를 하고 있는데 졸업식 할 때, 김정은이 졸업 작품으로 인공위성 정보와 GPS 자료들을 이용한 새로운 군사작전 지도를 이제 발표를 합니다. 근데 일반 학생들로서는 그런 작전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데 김정일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정보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김정은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동원해서 아버지 김정일을 놀라게 할 만한 그리고 북한 군 지도부를 놀라게 할 만한 작품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것이 그 동안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정을 해 왔던 사람들이 결국 후계자는 김정은이 돼야 한다고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던 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1’00”

해설 : 김정일의 세 아들 중 3남, 김정은이 주목 받는 배경을 색다른 각도에서 해석한 것도 있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소 연구원 이승열 박사.

이승열 박사 (후계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령의 통치를 대신하는 것인데..물론 앞으로 물려받기도 하겠지만 후계자가 통치하는 유일지도 체계를 만든다는 것은 수령의 권한을 가져오는 거거든요. 수령이 권한을 나눠주는 거죠. 그런 논리로 보면 김정일 입장에서는 권력을 나눠주는 거라 권력의 약화를 의미한다고요.. 따라서 김정은은 누구도 후계자로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을 사유화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할 수 있거든요..김정일이 만들어주는 권력의 테두리 안에서 김정은의 후계 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요..그러면 그 과정에서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후계 체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김정은은 가장 안심할 수 있는 후계자이기 때문에 선정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58”

해설 : 3남인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 받은 배경이 무엇이건 간에..

지난 해 초부터 북한 언론에서 후계자를 암시하는 언급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설 : 북한 최고의 작곡가로 알려진 보천보전자악단의 리종오가 작사,작곡한 노래 ‘발걸음’이다.

발걸음은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을 지칭하는 ‘김대장’을 선전하는 내용의 김정은 찬양 노래로 이 무렵부터 북한은 이 노래를 북한 사회 내 각급 단위에 조직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북한 중학교에서 교사를 하다 작년 9월에 탈북한 장선영의 말이다.

장 선생 (2009년 2월 말이었는지, 3월 초였는지.. 그 때 교원들만 무슨 강연회 같은 걸 열어가지고 그 강연회에서 김정은의 이름은 밝히지 않고 청년대장 김 대장이다…이런 식으로 해서 그 때 강연회를 했었어요 그 때..그런데 그 내용이라는 것이 청년대장 김 대장 동지께서 이제 김정일의 사업을 무슨 뭐 보좌해준다.. 이런 식으로 그 때 강연회를 했었고요..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그 때 쫙 얘기가 시작됐던 건 5월 말이었나 6월 초였나.. 어쨌던 6월경이었던 거 같아요.. 그 때 저희들이 농촌 지원 끝나고 나와서 본격적으로 그 김정은에 대한 선전물이 나와가지고 A4용지 절반만한 종이에다가 필기하고 모든 교원들이 이것을 교시에 적용하라…이런 내용을 그 때 받았고 거기에 나온 내용이라는 게 그 때 김정은이 대동강변에서 불꽃 축전도 김정은의 지도 하에 열렸고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150일 전투도 김정은이 진두지휘 하에 벌이고 있고..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도 이름은 안 나왔었습니다) 1’10”

“150일 전투에로 부른 당의 호소를 받들어”

해설 : 북한의 올 2010년 신년공동사설에 보면 지난 해 북한에서 벌였던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 김일성 생일행사와 노동절 경축 야회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모두 김정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행사와 운동들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후계 구도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우드로 윌슨 센터 방문연구원으로 있는 북한대학원 대학교 류길재 교수.

류길재 (그동안 인민들과 북한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정은을 사회와 인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할 것인가..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정책적 성과가 필요할 것이고 특별히

북한의 국가적인 기념일이라던가 그런 행사가 있었을 때에 그런 것들을 김정은의 공적으로 돌리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는 것은 비단 북한에서 뿐아니라 어떤 나라에서든지 특히 독재국가일 경우에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후계자의 상징조작인데, 후계자의 이미지와 권위를 주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상징조작의 차원에서 이런 것들을 통해서 김정은의 공적을 높여서 주민들에게 김정은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인식시키려는 그런 시도였다고 보여집니다) 54”

해설 : 김정일 위원장의 불투명한 건강 문제로 북한의 후계 구도는 이제 발등의 불이 됐다. 북한 정치의 특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후계체제의 비밀주의로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지난 시기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2대 세습이 이루어지던 시기와 비교해 보면서 과연 북한의 3대 세습은 가능한지..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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