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뉴스 따라잡기] 자말 카쇼기 씨 피살 사건


터키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 앞에 자말 카쇼기 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촛불이 세워져 있다.
터키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 앞에 자말 카쇼기 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촛불이 세워져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지난 2018년 사망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쇼기 씨 피살 사건에 관한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제재 수준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자말 카쇼기 씨 사건 전개 과정과 미국 정부의 보고서, 논란 등을 짚어보겠습니다.

“자말 카쇼기 씨는 누구?”

자말 카쇼기 씨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저명한 언론인이었습니다.

사우디에서 자란 그는 미국으로 유학 와 인디애나주립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뒤 사우디 언론사에 들어가, 아프가니스탄과 알제리, 쿠웨이트 등 중동 각지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1980년대에는 나중에 9.11 테러 사건의 주범이 되는 오사마 빈 라덴 등 알카에다 지도급 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 비판적이었던 그는 2017년에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워싱턴포스트지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살만 국왕과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 등 사우디 왕실을 신랄히 비판했습니다.

카쇼기 씨는 또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내전에 개입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반대했는데요. 그러면서 더욱 사우디 왕실의 미움을 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쇼기 씨는 2018년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그는 당시 결혼 관련 서류가 필요해 사우디 영사관을 찾았는데요. 하지만 영사관에 들어간 후 나오지 않자 약혼녀가 실종 신고를 하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떠 올랐습니다. 카쇼기 씨의 시신은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혹한 피살”

사건 발생 얼마 후, 터키 당국은 카쇼기 씨가 사우디 영사관 안에서 엽기적으로 살해됐고, 시신도 훼손된 것 같다는 초동 수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일부 터키 언론은 사우디 왕실이 암살단을 보내 카쇼기 씨를 참혹하게 살해했고 이를 유추할 만한 음성파일과 동영상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사건 당일 새벽에 터키에 입국한 일단의 사우디 남성들이 사우디 왕실과 관련이 있다며 사건 배후로 사우디 왕실의 실세인 빈살만 왕세자를 지목했습니다.

국제 사회는 카쇼기 씨의 끔찍한 죽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하며 사건을 주목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카쇼기 씨가 자기 발로 영사관을 떠났다고 주장했는데요. 하지만 카쇼기 씨가 타살됐음을 암시하는 단서들이 속속 나오자, 뒤늦게 카쇼기 씨의 사망을 인정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그러나 카쇼기 씨가 사우디 왕실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살해됐을 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철저한 부인으로 일관했습니다. 빈살만 왕세자와는 절대로 무관하며, 왕세자 측근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는데요. 국제사 회의 거듭되는 비판 속에 사우디 검찰은 관련 책임자 10여 명을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혐의없음으로 풀려났고, 대부분은 징역 7년 형에서 20년 형이 선고됐습니다. .

“트럼프 행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

자말 카쇼기 씨 피살 사건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든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삼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선택하고 대규모 무기 판매를 성사시키는 등 중동의 전통적 맹방인 사우디와의 관계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우디 왕실이 사건의 배후라면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면서도, 빈살만 왕세자가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며 두둔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물론이고, 미국 정계에서도 카쇼기 씨 피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이끌던 지나 해스펠 국장이 비공개리에 터키를 급히 방문했습니다.

이후 CIA는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고, 해스펠 당시 CIA 국장은 상원에서 조사 내용을 보고했는데요. 하지만 모두 비공개였습니다.

미국 언론은 CIA가 중간에서 높은 수준의 확신으로, 카쇼기 씨 살인 사건에 빈살만 왕세자가 연루됐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는데요.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CIA가 그런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재임 기간 내내 카쇼기 씨 관련 보고서를 비밀로 덮어뒀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보고서 공개”

지난 2월 25일, 미국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카쇼기 씨 살해 사건에 관한 보고서를 전격 공개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두 달여 만의 일이었는데요. 국가정보국장실은 4쪽 자리의 이 보고서에서 빈살만 왕세자가 카쇼기 씨의 납치, 또는 살해를 승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국가정보국장실은 빈살만 왕세자가 2017년부터 사우디 정보기관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빈살만 왕세자의 허락 없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러면서 카쇼기 씨 살인 사건에 연루된 21명의 이름을 공개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제재와 논란”

미국 국무부는 국가정보국장실의 보고서가 공개된 다음 날(2월 26일) 카쇼기 씨 살해 사건에 연루됐거나 해외에서 사우디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탄압한 사우디인 76명에 대해 비자 제한 조처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빈살만 왕세자는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는데요. 그러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카쇼기 씨 살해 사건의 직접 책임자인 빈살만 왕세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백악관은 미국 정부가 동맹 관계인 국가의 지도자를 직접 제재한 전례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과거보다는 미래 관계에 집중하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사우디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무부도 사우디의 인권 상황을 매년 검토해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고, 사우디에 개혁을 요구했다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국무부는 또 카쇼기 씨 살해 등 반체제 인사 탄압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우디 왕실 정예 부대인 ‘신속개입군(RIF: Rapid Intervention Force)’의 해체도 촉구했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미국 정부의 보고서가 잘못된 정보와 결론을 내렸다며 일축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가 나서서 빈살만 왕세자를 제재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습니다.

민주당 소속의 톰 맬리나우스키 하원의원과 한국계 앤디 김 의원 등이 빈살만 왕세자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했고요.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도 빈살만 왕세자의 자산을 동결하고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는데요. 소속당인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이 거세지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 주지사입니다.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뒤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처 과정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장래 민주당 대통령 후보감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최근 성추행 의혹으로 낙마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쿠오모 지사는 1957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정치 명문가로 꼽힙니다. 지난 2015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 마리오 쿠오모 씨는 1983년부터 1994년까지 뉴욕 주지사를 지냈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 앤드루도 대를 이어 뉴욕 주지사가 되면서, 그의 집안은 민주당 안에서 케네디 가문 이후로 가장 주목받는 집안이 됐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 딸인 케리 케네디 여사와 15년간 결혼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의 동생인 크리스 쿠오모 씨는 뉴스 전문 방송인 ‘CNN 방송’의 진행자이기도 합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미국 뉴욕 올버니 법률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또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정치를 익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직업 정치인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법률적인 전문성을 살려, 저소득층 주거 지원을 위한 사회단체인 ‘헬프(HELPㆍHousing Enterprise for the Less Privileged) USA’를 설립해 이끌었습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쿠오모 주지사는 1990년 뉴욕시 노숙자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됐고, 3년간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의 행정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그는 1993년 연방 주택도시개발부 차관보가 됐고, 4년 뒤인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장관을 지냈습니다.

이어 그는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민주당 후보로 뉴욕주 법무장관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는데요. 곧이어 2010년에 뉴욕 주지사 선거에 나가 승리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그 뒤로 두 차례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지난해 뉴욕주를 휩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선보여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요양원 내 사망자 수를 주 의회에 모두 보고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최근에 나오면서 궁지에 몰렸습니다.

이에 관해 쿠오모 주지사는 관련 통계를 축소한 것이 아니라 집계한 자료를 통보하는 것이 지연됐던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 소속 주의원을 위협했다는 주장도 나오면서 다시 구설에 올랐습니다. 쿠오모 주지사가 이런 논란을 극복하고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자말 카쇼기 씨 피살 사건에 대해 짚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