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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태국의 민주화 시위와 정국 불안 사태


29일 태국 수도 방콕 도심에서 민주화 시위가 열렸다.
29일 태국 수도 방콕 도심에서 민주화 시위가 열렸다.

이번에는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태국의 정국 불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태국의 정치 상황과 당면 과제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박영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요동치는 정국”

10월 28일, 태국 정부는 각료회의를 통해 국가 비상 포고령을 다음 달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태국 정부 대변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조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태국은 코로나 확진자 약 3천760명, 사망자는 약 60명으로, 이번 조처는 수도 방콕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를 저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당 해산으로 촉발된 민주화 시위”

태국에서는 올해 초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태국 헌법재판소가 지난 2월 내린 ‘퓨처포워드당(Future Forward Party: FFP)’ 해산 결정이었습니다.

퓨처포워드당은 2018년 3월에 설립된 진보정당이었는데요. 지난해 3월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군부 정권을 강력히 비판하며 젊은 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퓨처포워드당은 당시 81석을 얻으며 제3당으로 약진했는데요. 하지만 지난해 11월, 태국 법원은 선거법 위반 이유를 들어, 타나톤 쯩룽르앙낏 당 대표의 의원직을 박탈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에는 퓨처포워드당까지 해산하게 된 건데요. 태국 헌법재판소는 정당법을 위반했다고 밝혔지만, 정치적 탄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며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3월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시위는 잠시 주춤해졌습니다. 이후 간간이 이어지던 시위는 9월부터 대규모 반정부 집회와 함께 다시 본격화됐습니다.

“저항의 상징 세 손가락”

시위대와 야권 인사들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과 태국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태국에서는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온 왕실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현재 태국에서는 세 손가락이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시위자들은 일제히 검지와 중지, 약지, 세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들며 정부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인 ‘헝거게임(The Hunger Games)’에 나왔던 이 세 손가락 인사법은 지난 2014년 태국의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처음 저항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당시 쁘라윳 짠오차 육군 참모총장은 세 손가락을 쳐드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리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태국 시위대는 이번에도 군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세 손가락을 높이 들고 반정부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입헌군주국, 태국”

태국은 일본, 부탄, 말레이시아 등과 더불어 아시아의 몇 안 되는 입헌군주국입니다. 입헌군주제란 헌법의 체계 아래 세습 군주를 인정하되, 실질적인 국정 운영은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총리가 맡는 정치 형태를 말합니다.

오랜 절대 왕정 국가였던 태국은 1932년, 군인들의 쿠데타로 입헌군주제로 전환했습니다. 군인들이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제 헌법을 제정하면서 자연스럽게 군의 정치 개입이 시작됐습니다.

입헌군주제가 처음 도입된 1932년부터 지금까지 약 90년간 태국에서는 무려 19번의 쿠데타가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성공한 쿠데타는 12번입니다. 그 사이 총선도 28번이나 실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태국에서 쿠데타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이미 권력 집단이 된 군부와 민간 정부의 무능 등을 요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태국에서 가장 최근 성공한 쿠데타는 현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지난 2014년에 일으킨 쿠데타입니다. 당시 쿠데타 세력은 잉락 친나왓 총리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 장악에 성공했는데요. 잉락 친나왓 총리는 지난 2006년 역시 쿠데타로 실각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이었습니다.

태국의 쿠데타는 왕실의 추인을 받아야 합법적으로 인정되는데요. 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할 때마다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이 나서 결단을 내리며 최악의 사태를 막는 구심점이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태국 정치계는 친탁신계와 반탁신계로 나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친탁신계는 빨간색, 반탁신계, 즉 친군부파는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색이 이들의 상징 색깔이 됐습니다.

“태국 왕실”

태국 왕실은 지금까지 4개 왕조로 이어져 왔는데 1782년부터는 ‘짜그리 왕조(Chakri Dynasty)’가 계승하고 있습니다.

짜그리 왕조 국왕의 정식 호칭은 ‘라마’입니다. 현재 태국의 국왕인 마하 와찌랄롱꼰 국왕은 라마 10세입니다. 지난 2016년 부친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서거하면서 태국의 군주로 즉위했습니다.

태국 국민으로부터 ‘살아있는 신’으로까지 추앙을 받았던 전임 푸미폰 국왕과는 달리 마하 와찌랄롱꼰 국왕은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 기이한 행동, 호화 생활, 왕실 가족 간의 갈등, 왕실 재산의 사유화 등으로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아직 태국에서 군주제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는 않은데요. 그러나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군주제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월턴 그레고리 대주교.
미국 워싱턴 D.C.의 월턴 그레고리 대주교.

뉴스 속 인물: 윌턴 그레고리 대주교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인공은 미국 역사상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추기경으로 임명된 윌턴 그레고리 대주교입니다.

지난 10월 25일, 로마 가톨릭교회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윌턴 그레고리 워싱턴 D.C. 대주교를 새 추기경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로써 미국의 6번째 추기경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추기경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공식 추기경 임명식은 11월 28일 열릴 예정입니다.

월턴 그레고리 대주교는 1947년생으로 올해 72살입니다.

미국 중부 대도시 시카고의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레고리 대주교가 어릴 때 부모는 이혼해 주로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가톨릭 집안은 아니었지만 6학년 때 가톨릭 학교에 입학해 6주 만에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73년 25세 때 시카고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93년 일리노이 주교를 거쳐, 2005년 애틀랜타 대주교, 그리고 지난해 워싱턴 D.C. 교구의 대주교가 됐습니다.

그레고리 대주교는 또 흑인 주교로서는 최초로 ‘미국 가톨릭주교회의(U.S. Conference of Bishop)’ 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레고리 대주교는 가톨릭 교계 내에서 진보적인 신부로 꼽히고 있습니다. 초기 사제 시절, 그는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의 한 명이자 진보적이었던 조셉 버나딘 추기경의 가르침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레고리 대주교는 인종차별과 이민자, 동성애자 권리 옹호 등 인권과 사회 문제에서 단호하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특히 지난 2002년 미국주교회의의 의장을 맡았을 때는, 사제들의 성폭력 의혹과 관련, 무관용 원칙을 담은 헌장 채택을 추진하는 등 가톨릭교 개혁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레고리 대주교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개 비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시위가 확산하는 와중에, 워싱턴 D.C.의 내셔널 대성당을 방문해 논란이 됐는데요. 당시 그레고리 대주교는 성명을 내고, 성당이 정치적으로 악용됐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달 공식 추기경으로 임명될 그레고리 대주교는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직분을 감당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태국의 민주화 시위와 정국 상황 알아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미국 역사상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추기경으로 임명된 윌턴 그레고리 대주교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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